[꼴베의 행복한 선물 - 16]

안녕하세요! 꼴베입니다.

본격적인 여름은 이제 시작인데 그동안도 꽤 더웠죠? 저는 요즘 협동조합을 준비하느라고 바쁜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협동조합 활동 중 하나로 연천 지역에 주말농장식의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조금 멀긴 하지만 다닐 때마다 달라지는 숲과 산, 꽃과 쑥쑥 자라는 작물들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지금은 산마다 밤꽃이 한창이더라고요. 얼마 전 아카시아가 만발일 때도 생각했는데, 양봉으로 꿀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내년엔 도시 양봉에 도전해볼까요? 하하, 꿀 생각하기 전에 일단 하던 텃밭이나 잘 해야 할 텐데요.

작물을 키울 땐 거름이 참 중요합니다. 베란다에서 스티로폼에 흙을 담아 쌈 채소를 길러 먹으려고 해도 맨흙에선 잘 자라지 않더라고요. 간단히 돈을 주고 살 수도 있지만, 집에서 만들어 쓰는 건 어떨까요? 매일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로 퇴비를 만든다면 일석이조! 모임이 많고 여러 명의 청년들이 함께 살고 있는 예수살이공동체 밀알의집은 음식물 쓰레기도 많을 테니 ‘음식물 퇴비통’이 있으면 참 좋겠네요. 그럼, 이번 꼴베의 행복한 선물 결정!

ⓒ조상민

준비물입니다. 일반 가정보다 음식물 양이 많을 테니 좀 큰 통에 PVC 파이프, 기존 뚜껑이 없어 나무판으로 새로 만들려고 합니다. 조금 거창한가요? 이 정도는 별거 아니죠? 퇴비통은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텃밭보급소’에서 나온 음식물 퇴비통을 참조했습니다.

ⓒ조상민

원래 드릴에 연결해 구멍을 뚫는 도구가 있는데, 새로 사기도 뭣하니 그냥 쇠톱을 사용했습니다. 동그랗게 자르도록 신경을 좀 쓰셔야겠지만 전반적으로 잘 잘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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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PVC 파이프 차례! 길이는 통 높이보다 좀 적게 잘라주고, 드릴로 구멍을 많이 내줍니다. 파이프가 단단해서 가장 힘든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구멍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습니다. 다 되었으면 통 밑바닥에도 작은 구멍을 뚫어주고 파이프를 통 가운데 세웁니다. 작은 구멍들은 퇴비가 발효될 때의 숨구멍입니다. 기본적으로 호기발효(공기를 좋아함^^)이기 때문에 공기와 접촉이 좋아야 한답니다.

ⓒ조상민

뚜껑만 있었어도 이 고생 안 하는 건데…… 어쩔 수 없죠. 직접 개성 있는 뚜껑을 만들어줄테다. 대략 크기를 가늠해 자른 다음 쉽게 벗겨지지 않도록 나무토막을 덧대고 손잡이도 만들어줍니다. 생각 외로 작업이 많아서 시간이 걸렸어요. 그대로도 나쁘지 않지만, 곧 장마인데 혹시 비를 자주 맞으면 썩을 수도 있으니까 물에 젖지 않는 아크릴물감으로 칠해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란색!

ⓒ조상민

뚜껑 완성! 어떻습니까? 쳐다만 봐도 막 저 손잡이를 잡고 싶죠? 전세계 퇴비통 뚜껑 중엔 니가 젤 멋쟁이일거야!

ⓒ조상민

완성된 통을 옥상에 배치했습니다. 아래에 공기가 잘 통하도록 반드시 벽돌 등으로 띄워주셔야 하고요. 저는 밀알집에 누가 주신 팔레트가 있어 밑을 받쳤습니다. 이중으로 띄웠으니 공기가 더욱 잘 통하겠죠? 옆의 통은 음식물과 섞을 톱밥입니다. 톱밥 대신 왕겨도 좋아요.

ⓒ조상민

퇴비통 안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음식물과 톱밥을 잘 섞어놓으시면 됩니다. 음식물과 톱밥이 켜켜이 쌓이면서 발효가 되고 발효 가스는 가운데 통으로 빠져나가고 3개월 정도 지나면 좋은 퇴비가 된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호기발효이니 중간 중간 작대기 같은 것으로 헤집어주시면 훨씬 좋습니다. 음식물을 넣으실 때 물기는 큰 상관없는데 너무 통째로 넣으시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요. 특히 여름엔 수박 등 과일을 많이 드실 텐데 버리실 때 잘게 잘라주시면 좋아요.

ⓒ조상민

발효 때 나오는 가스 등이 빠져나가고 공기도 잘 통하도록 구멍도 뚫고 뚜껑을 조금 띄웠습니다. 텃밭보급소 책자엔 뚜껑 가운데를 뚫어 파이프를 빼고 뚜껑은 벌레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꼭 닫으라고 되어 있는데, 파이프가 비싸기도 하고 나무판 뚫기도 힘들고, 다른 곳에서는 저렇게 해도 괜찮다고 하더군요. 제 말이 귀찮음에서 나오는 변명처럼 느껴지신다면 기분 탓입니다.

ⓒ조상민

최종 완성된 음식물 퇴비통의 모습입니다. 저 혼자 뿌듯하네요. 뚜껑과 팔레트의 깔맞춤으로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하하!

옆의 톱밥통도 비바람에 젖지 않도록 나무널판지 등으로 덮고 돌 등으로 눌러놓는 것이 좋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 퇴비통을 만든 지 보름 정도 지났는데요. 통에 머리를 가까이 대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발효되는 중이니까요. 음식물 쓰레기 봉지가 다 차기 전에 집안에 썩은 내가 나는 집들 많으시죠? 꼭 퇴비통을 만들지 않더라도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톱밥을 함께 넣어 섞어주시기만 해도 음식물 썩은 내는 나지 않을 겁니다. 자! 그럼 이것으로 꼴베의 행복한 선물, 끝!……이 아닙니다.

ⓒ조상민

보너스 트랙! 더 이상 장소가 좁아서 텃밭을 가꾸지 못한다는 변명을 허락하지 않겠다. 한 뼘이면 충분하다, 페트병으로 만드는 재활용 미니텃밭! 버리려고 내다놓은 재활용 쓰레기 중에서 큰 페트병을 골라 길게 잘라줍니다. 물이 빠지도록 바닥을 송곳으로 여러 군데 뚫어준 다음 흙이 많이 유실되지 않도록 거즈를 깔아줍니다. 그리고 그 위에 흙을 담고 모종을 사다가 심으면 끝!

이렇게 간단하다니, 깜짝 놀라셨죠? 일반 흙보다 배양토가 무겁지도 않고 작물도 더 잘 자랍니다. 그런데 왜 통에다 줄을 연결했냐고요?

ⓒ조상민

바로 공중 텃밭이기 때문입니다. 땅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집앞 골목길의 벽, 아파트 베란다 창 틀, 어디에나 매달 수 있습니다. 요즘 이렇게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인터넷에서 처음보고 너무 기발하고 신기했답니다. 여러분도 해보세요!

ⓒ조상민

계단이 있다면 이렇게 해보셔도 좋습니다. 귀엽죠? 계단을 오르내릴 때 기분이 좋아지실 거예요. 쌈 채소는 흙이 깊지 않아도 되니 옆으로 자른 페트병으로 충분하고, 세로로 세워 윗부분만 잘라내고 길게 두면 당근 등 뿌리채소도 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한 뿌리 정도겠지만요.

한 집에서만 무수히 나오는 페트병! 이젠 버리지 마세요! 멋진 텃밭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답니다. 음식물 쓰레기도 서울, 아니, 우리나라 전체를 따지면 어마어마한 양이겠죠? 그 쓰레기를 처리하느라 드는 비용도 어마어마할 거고요. 우리가 그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순 없겠지만 내 집에서 나온 작은 양은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언제나 중요한건 내가 있는 이 자리인 것 같아요. 행복도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거겠죠? 꼴베의 행복한 선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상민 (꼴베, 예수살이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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