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지원센터 · 지금여기 공동기획] 예수를 따르는 경제, 사회적기업 3
수도자 의복 · 병원 수술포 생산 업체, 비둘기집 장애인 보호작업장

서울 혜화동 주택가 골목에 위치한 ‘비둘기집 장애인 보호작업장’(이하 비둘기집)에 들어서자 스무 평 남짓한 공간을 채운 재봉틀 소리가 드르륵 드르륵 흥겹다. 작업장에서는 직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천을 잇고, 다림질을 하며 땀을 내고 있었다. 분명 장애인들이 일하는 공간으로 알고 왔는데, 재봉틀을 다루는 손길이나 천을 나르는 모양새에서는 직원들이 어떤 장애를 갖고 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비둘기집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수술포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 ⓒ한수진 기자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선 장애가 안 보여요.”

김대율 비둘기집 시설장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등록기관으로, 2012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비둘기집은 시설장과 공장장을 포함한 비장애인 5명과 장애인 12명이 일하는 소규모 봉제 공장이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에서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지정을 받았다.

그러나 일하는 이들이 지적장애 혹은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여느 봉제 공장 노동자와 똑같다. 비둘기집 직원 중에는 경력이 10년 이상 된 이들이 여럿이다. 다림질 완성 파트에서 일하는 임홍채 씨는 1985년 비둘기집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일한 경력 20년의 기술자다. 말을 조금 천천히 할 뿐, 다림질 판 앞에 서면 천의 주름과 함께 그의 지적장애도 사라진다. 임 씨는 “완성된 제품이 매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보람을 느끼고, 동료들이 가족처럼 느껴질 때 기쁘다”고 말했다.

“장애인은 청결하지 않다거나, 실력이 부족할 거라는 선입견이 바뀌면 좋겠어요. 실제로는 장애인들이 더 깨끗하고 꼼꼼해요. 집중력이 정말 뛰어나거든요. 저희 직원들 자랑을 하자면, 시중에서 만든 제품은 오버로크로 한 번 박으면 끝인데 여기 제품은 한 번 박고, 접어서 박고, 4~5번을 꼼꼼하게 박아요. 양쪽을 잡아당겨도 뜯어지지 않아요.”

김 시설장의 시설 소개는 어떤 말로 시작하든 직원 자랑으로 끝을 맺었다. 김 시설장은 비둘기집에서 만든 어린이집 교사용 앞치마를 내보이며 직원들의 꼼꼼한 바느질 솜씨를 확인시켰다. 비둘기집의 주요 생산품은 병원 수술포와 사제 · 수녀 의복이다. 얼마 전부터는 어린이집 아동복과 교사 앞치마 제작도 시작했다. 매달 직원 16명의 인건비를 마련하기에도 버거운 경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이다.

▲ 사회적기업 ‘비둘기집 장애인보호작업장’ 시설장 김대율 씨 ⓒ한수진 기자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일하는 속도가 느린 건 사실이에요. 수술포는 공정이 단순해 속도 차이가 거의 없지만, 옷은 비장애인보다 오래 걸리거든요. 그러다보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때가 있죠. 또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영업을 하러 가면 처음부터 거절해요. 10번은 찾아가야 품질을 보고 계약을 맺더라고요. 그러다보니 벌리는 돈이 뻔해 직원들 월급 주기도 벅차요. 그래도 월급이 우선이니까 세금이나 원단 값을 바로 못 내는 경우가 많아요.”

비둘기집은 지난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면서 직원들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4대 보험에 가입했다. 현재 임금은 법정최저임금을 겨우 지키는 상황이지만, 김 시설장은 “작업장이 발전하면 직원들을 비장애인 기술자 수준으로 대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보호’라는 명분으로 장애인은 가둬두고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게 안타까워요. 특히 지적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일은 인형 눈 붙이기나 딱지 접기 등 단순작업이죠. 하지만 공장장이나 높은 분들이 달리 대우하면 얼마든지 배우고 익혀서 재봉사도 할 수 있고, 사진사도 할 수 있어요.”

비둘기집에 오기 전에 사진사로 일했던 김 시설장은 “처음엔 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비둘기집의 시설장을 맡게 된 그는 관련 전공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사이버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다. 휴일에도 작업장에 나와 재봉 연습을 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변했고, 그들의 열정에 자신도 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한다.

“사회복지 공부를 안 했다면 초반에 그만두고 나갔을 거예요. 지금도 가끔 친구들이 다시 사진 일을 같이 하자고 불러요. 제 답은 ‘너희보다 이 사람들이 더 좋다’예요. 비장애인들은 계산적인게 다 보이잖아요. 장애인들은 달라요. 물론 사람이니 자기 계산을 안 할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죠. 재밌게 일하고 가족처럼 지내는 것도 좋고요. 나쁜 점은, 시설장인 저도 똑같이 솔직해져야 한다는 거예요. 원래 대표들은 좀 감추는 게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하하.”

▲ 사회적기업 ‘비둘기집 장애인보호작업장’ 다림질 완성 파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한수진 기자

김 시설장은 비둘기집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재봉틀’과 ‘공간 확장’, ‘매장 확보’를 꼽았다. 몇 해 전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지원으로 일부 노후한 재봉틀을 교체하기는 했지만, 15년째 사용하는 나머지 재봉틀들은 언제 멈출지 모르는 상태다. 안정적인 판로 유지를 위한 매장 운영도 꼭 필요한 계획이다. 김 시설장은 여유가 생겨 공장 규모와 직원 수를 늘릴 수 있다면, ‘장애인 보호작업장’보다 더 높은 근로조건 기준을 요구하는 대신 성장 기회가 있는 ‘장애인 근로사업장’으로 인증을 받을 생각이다.

비둘기집은 7월 1일부터 3일까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사회적기업 박람회에 참가한다. 여름 잠옷이나 앞치마 등 비둘기집 생산품을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할 예정이다. 품질은 김 시설장과 직원들이 보장한다. 비둘기집의 단골이 된 수도자들은 선교활동으로 외국에 파견이 되어서도 잊지 않고 다시 찾는다고 한다. 한 번 구입하면 4~5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이 너무 튼튼해 사제와 수도자들이 자주 구입하지 않는 것이 김 시설장에게는 애로사항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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