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 - 백동흠]

ⓒ백동흠
연휴를 맞아 거리가 늦가을 단풍 날리듯 한산하다. 제법 비가 내리는 아침이다. 구름 뒤로 무지개도 살짝 얼굴을 내밀다 들어간다. 와이퍼를 움직여가며 운전하니 개운한 느낌이다. 젖어 가는 창밖 세상을 보니 마음도 촉촉해진다. 줄곧 내리는 가을비에 들판의 초지가 부쩍 생기를 띠고 있다. 집에서 40여 분 거리의 헬렌스빌 노천 온천이 또 하나의 쉼터가 되고부터 자연스레 그리로 발길이 향한다. 우뚝 선 팜트리가 온천 앞뜰에서 반긴다. 집 앞뜰에도 팜트리가 시골 느티나무처럼 서있어 편안한 느낌인데 이곳 온천도 비슷한 분위기라서 좋다.

팜(Palm)이 갖는 의미가 한몫해서 더욱 자연스럽다.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군중들이 길가에 깔아놓았던 게 종려나무 가지였다. 승리를 상징하는 가지이기도 하지만, 손바닥이란 뜻으로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우리네 인생사도 보이지 않은 큰 손의 손바닥 위에서 쉬었다 가는 것이려니 싶다. 오늘 그 손바닥 위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대자연 하늘, 바다, 산, 땅도 모두 큰 손바닥이다. 오늘은 온천물에 몸 담그고 푸욱 쉬는 날이다.

평일 일상에 묻혀 생활하다가 가끔씩 이런 휴식을 갖다보면 새로운 충전, 회복이란 말이 머리에 맴돌곤 한다. 다시 회복이란 말이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부활이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돌을 치우는 것이란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가장 먼저 하신 일이다. 당신을 가둔 무덤의 돌을 치우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최근 회복과 부활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마음의 입구를 막아놓은 고민 덩어리를 치우는 것이었다. 나를 가두는 장벽을 허물지 못해 빛을 볼 수가 없었다. 혼자 속으로 끙끙거리느라 내 속에 갇혀 지냈다.

오랫동안 내 마음을 짓눌렀던 바위 덩어리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줄 알았다. 체면과 자존심의 바위 덩어리를 떨쳐내지 않고서는 헤어날 수가 없었다. 어렵사리 떨쳐내고 보니 알량한 세속적 자기 욕심 덮개였다. 그게 나를 그렇게 옭맬 줄이야. 큰 손바닥에 놓인 것을 잊으니 스스로 합리화, 고집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남의 말 많은 세상에 부족한 모습으로 내가 판단되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바로 큰 바위 덩어리였다.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 덩어리를 겨우 한 뼘 밀어내니 내 옆에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들이 있었다. 내 편이었다. 마음이 하나씩 모아지니 방법이 나오고 그 무거운 바위 덩어리가 통째로 들려졌다. 버렸다. 빛이 들어왔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돌이 치워졌다. 부활의 빛이었다.

세상이 보는 겉옷을 벗어야 온천에 들어올 수 있다. 수영복 하나 걸친 채 들어선 온천 물속이다. 세상이 다시 열린다. 내리던 비가 멎고 햇살이 빛난다. 하늘이 눈부시다. 물속에서 욕심을 부리면 얼마나 부리겠는가. 지금 있는 그대로 집착을 내려놓고 자족하는 마음이다. 어깨와 뒷목에 뻣뻣했던 힘이 빠지고 있다. 말랑말랑해지고 있다. 앞으로의 전진만이 성공과 행복은 아니다. 때론 머무름도 기다림도 쉼도 필요하다. 이번 연휴엔 나를 되돌아보는 휴식을 하면서 회복과 부활의 의미를 느끼고 있다.

“당신이 누군가의 동료라면 평가하지 말고, 그의 편이 되어 주어라”(앙드레 말로). 이번 연휴를 맞으면서 가슴에 새겨진 글귀다. 이런 동료의 마음이 없다면 나를 가로막고 있는 바위 덩어리는 결코 떨쳐낼 수가 없다. 상대에게도 결코 도움이 못 된다. 먼저 상대편 마음과 입장이 되어 문제 해결과 도움을 찾으면 그에 맞는 눈높이 해결책이 반드시 나오게 마련이다. 세상에서는 나와는 동떨어진 율법적이면서도 교과서적인 판단들이 무수히 나를 질타하기도 한다. 배려와 깊이가 없이 휑하니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만 남는다.

최근 들어 이민 생활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다. 이럴 때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기도 한다. 돈벌이만 생각하면 지금 당장 내 입장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공항 가는 손님을 태우러 갔다가 타이어 펑크로 손님을 못 태웠다. 좁은 길 뙤약볕 아래서 스페어타이어로 바꿔 끼우느라 땀투성이에 유니폼도 엉망이 되었다.

나중에 타이어숍에 들러 제대로 서비스를 받는데 몹시 인상적이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참 정성스레 일 처리를 해주었다. 타이어를 바꾸고 스페어타이어도 수리를 잘 마쳤다. 추가로 스페어타이어 휠 안에 낀 까만 숯검정 같은 때 덩어리를 쇠 브러시로 갈아내고 물로 씻어 닦아내고 말려 기름칠까지 해주었다. 다음번에 혹시라도 일 있을 때 손과 옷에 까맣게 묻지 말라고 새 타이어처럼 말끔히, 그야말로 때 빼고 광내 주었다. 내 입장에서 일해 줘서 속이 시원했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문제고……’ 식의 앵무새 같은 얘기다. 다 남의 얘기다. 내 일이 아니라는 투다. 일이 생기면 먼저 내 입장에서 일을 봐주고 ‘이건 앞으로 이렇게 하면 좋아요’라고 말하면 모두 자기편이 되어주기 마련이다.

진정한 프로는 살아남는다. 프로는 뭐가 달라도 다른 사람이다. 남이 다 못 한다 해도 다른 제2의 방법을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자기보다 잘 아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 일을 해결해주는 사람이다. 프로란 어쩌면 자기 분야에서 부활한 사람이다. 진정성이 바탕에 깔린 사람에게서만 우러나오는 기질이다. 이번 연휴에 만난 프로들이 참 고맙다.

온천욕을 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떠 본다. 부활의 노래 소리가 한층 가볍고 맑게 들린다. 구름이 새하얗고 하늘이 푸르다.
 

백동흠 (프란치스코)
뉴질랜드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