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 - 27]

둘째 아이를 낳고 얼마 동안은 둘째부터는 모든 게 쉽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 낳는 것부터 훨씬 수월했을 뿐더러 산후 몸 회복도 빠르고 젖몸살도 없이 지나갔다. 한밤중에 몇 번씩 깨어 아이에게 젖 먹이는 일이 고되기는 했지만 그 정도쯤이야. 첫째 키울 때에 비해 여유가 생기니 아이 예쁜 것도 알겠고, 그 맛에 어지간히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다만 커다란 시련이 하나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다울이의 시샘과 질투였다. 엄마를 빼앗기겠다 싶으니 온종일 내 옆에 붙어 앉아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면서 “젖 주지 마라”, “안아주지 마라” 사사건건 참견을 하며 미운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쉴 새 없이 엄마 엄마 부르며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떼를 쓰고 동생을 예뻐하는 듯하다가도 괴롭히고 성가시게 했다.

그게 다 사랑받고 싶어서 하는 몸부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젖을 먹이면서도 화를 내고 날마다 다울이와 전쟁을 벌였다. 이럴 때 신랑이 다울이를 전담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농번기라 신랑은 신랑대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다울이는 엄마 말고는 아무도 안 된다며 밀어내버리니 도무지 답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서 나중에는 다울이가 “엄마” 하고 부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 엄마가 된 것이 큰 벌을 받는 것과 같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그런데 말이다, 삼칠일까지 집안 살림을 돌봐주셨던 친정엄마가 다울이를 데리고 서울로 가시자 바로 첫날부터 다울이 얼굴이 아른거리며 참을 수 없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지긋지긋했는데 없으니까 왜 이렇게 허전한지 다울이 옷가지나 가지고 놀던 장난감만 봐도 눈물이 났다. 마치 내 몸뚱이 한 부분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날이 갈수록 다울이 없는 일상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둘째를 돌보는 일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 둘째 아이 이름은 다랑이다. 다랑이논처럼 제 모습 그대로 아름답게 살아갔으면 해서다. 다랑이는 다시 태어났고, 덕분에 엄마인 나도 새롭게 태어났다. ⓒ정청라

그러는 사이 둘째 아이가 갑작스레 검은 똥을 누기 시작했다. 그것도 많은 양을 하루에 네 번이나 말이다. 그래도 아이가 열이 나거나 보채지는 않아서 괜찮겠지 하고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 날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니 핏기도 없고 볼이 쏙 들어간 것이 낌새가 이상했다. 그동안 아이가 살이 안 찐다고만 느끼고 있었는데 혹시 살이 빠진 것은 아닐까? 혹시나 싶어 몸무게를 재봤더니 겨우 2킬로그램, 그렇다면 낳을 때보다 0.9킬로그램이 줄었다는 것일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밤중에 병원에 갈 수도 없고 잠든 아이를 안고 있는데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었다.

다음날, 병원에 가기에 앞서 자연건강법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선생님 댁에 먼저 찾아가 보기로 했다. 잔뜩 야위어 앙상한 아이를 이불에 돌돌 싸서 데리고 가니, 선생님은 버럭 화부터 내셨다. 아이를 돌돌 싸매서 키우면 아이가 죽는데 엄마가 그것도 모르냐면서 말이다. 그러고는 아이 몸 이곳저곳을 만져 보시더니 엄마 양수가 싱거운 탓에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장에 염증이 있었는데 그런 아이를 감싸 놓고 가둬 놓으니 염증이 출혈이 됐다고 하시며 생수랑 죽염을 부지런히 먹이라고 하셨다. 병원에는 안 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병원에 가면 원인도 못 찾을뿐더러 치료책도 없을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탈수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 아이는 눈을 뜨기도 힘들어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1시간 남짓 되는 시간에 벌써 온몸이 쫙 늘어지고 의식을 잃어가는데 이러다가 어렵게 만난 아이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피가 말랐다. 이럴 때 엄마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정말이지 이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내 피와 살이 다 녹아도, 뼈가 부스러져도 좋았고, 이제부터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겠다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뼈저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는 사이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고, 앙상한 아이를 본 의료진이 화들짝 놀라 달려와 주사바늘을 꽂아 수액을 놓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심장이나 여러 기관에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수가 이렇게 심한데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신생아가 태어날 때보다 1킬로그램 가까이 몸무게가 줄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놀라워하며 입원 후 그 원인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검사가 진행될 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소아과 병동에 입원하게 됐는데, 다행히 그날 밤부터 아이 똥 색깔이 점차 풀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낮 동안에 계속해서 죽염과 생수를 먹인 것이 그제서야 효과가 나타나는 듯했다. 게다가 밤중에는 젖 빠는 힘도 세졌고 온몸에 조금씩 기운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밤 사이 0.01킬로그램이 늘어나 2.06킬로그램이 되었다. 하지만 밤보다 기운이 없어 보여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저 쉬지 않고 기도하며 아이를 내 가슴 위에 얹어 놓고 쉬게 해주는 것, 틈틈이 생수와 죽염을 먹이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한 순간도 아이를 혼자 둘 수가 없어 신랑이 없을 때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아이와 함께했다.

그러면서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게 됐는데 하나같이 안타까운 사연을 안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감기 때문에 희귀병에 걸려 사지가 마비된 아이, 머리에 출혈이 있어서 백일을 병원에서 보내고 있는 아이, 백일도 안 됐는데 심장 수술을 한 아이까지 작고 여린 아이들이 갖가지 아픔을 안고 있었다. 내 아이가 아프니 다른 아이가 도무지 남 같지 않았다. 내 아이의 아픔도 아픔이지만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됐다. 맞은 편 침대에 있던 아기 엄마 역시 다랑이가 남 같이 느껴지지 않고 안쓰러웠는지 다가와서 안아주고 다랑이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그래서인지 다랑이는 점차 더 기운을 차리게 됐다. 똥 색깔도 점차 밝은 풀색으로 바뀌었고 말이다.

신랑과 나는 이제 퇴원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서 원인을 밝히는 것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기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가 찾아갔던 자연건강법 선생님으로부터 어서 퇴원하지 뭐하고 있느냐는 전화를 받고 우리는 퇴원을 결심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안 시켜준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입원해 있는 동안 워낙 이상한 사람들로 낙인이 찍혀서인지 다행히 쉽게 퇴원하게 됐다. 병원에서 특별한 조치를 취한 것이 없는데 다랑이 몸 상태가 나날이 나아지고 몸무게도 조금씩 늘어갔기에 억지로 퇴원을 막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 다울이와 다랑이. 이 아이들의 엄마라는 게 내 삶의 가장 큰 기쁨이고 힘이다. ⓒ정청라

물론 퇴원을 결심했을 땐 큰 각오를 했다. 설령 아이가 잘못되더라도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로 말이다. 우리는 이 아이와 우리의 인연이 길든 짧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온갖 검사를 한다고 아이를 시달리게 하며 생명 연장을 하는 것을 아이가 바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면 맑은 바람과 햇볕이 아이를 도와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또한 온 가족이 모여 있어야 다랑이가 큰 힘을 받겠다 싶어서 조금 힘들더라도 다울이도 서울에서 데려오기로 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행히 다랑이는 날마다 조금씩 얼굴색도 좋아지고 울음소리도 커지고 몸무게도 늘고 있다. 퇴원할 때 2.11킬로그램이었는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2.5킬로그램이 되었다. 똥 색깔도 황금빛으로 바뀌었고 말이다. 이 얼마나 고맙고 고마운 일인지……. 게다가 심술꾸러기가 되었던 다울이도 어느새 다랑이를 가족으로 품어 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가도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듯 심통을 부리고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고마운 일임을 안다. 그저 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번에 제대로 배웠으니 말이다.

그동안은 내가 아이를 기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이는 엄마를 진짜 엄마다운 엄마로 기르기 위해 세상에 오는 것 같다. 엄마를 사람으로 낳기 위해서 말이다.
 

정청라
귀농 7년차, 결혼 5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두 해 전에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날마다 파워레인저로 변신하는 큰 아들 다울이, 삶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작은 아들 다랑이, 이렇게 네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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