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44세의 젊은 아빠스가 선출됐다. 지난 5월 7일 총회에서 선출된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다. 젊은 아빠스의 선출은 수도원 쇄신과 관련해 많은 이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게다가 이번 아빠스는 종신제를 채택했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한 기간 박현동 아빠스의 입장이 중요해질 것이다. 10일 박현동 아빠스를 왜관수도원에서 만났다.

- 얼마 전에 교황 선출 선거인 콘클라베도 있었는데, 새 교황이 이전 교황에 비해 좀 더 혁신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관수도원에서도 이번에 아빠스 선출이 있었고, 상당히 젊은 사제가 아빠스가 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황처럼 종신제라고 하던데요.

▲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
박현동 아빠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소속된 오틸리아연합회는 전통적으로 아빠스 종신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세계총회에서 왜관수도원이 종신제가 변화가 빠른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12년 임기제를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10년 넘게 너무 오래 직무를 수행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장상 본인의 열정도 소진될 수 있다는 뜻에서였죠. 그래서 수도원 회원들의 대다수가 동의할 경우에 제한적으로 12년 임기제를 채택할 수 있도록 결정했습니다. 그 후 유럽과 아프리카의 일부 수도원에서는 12년 임기제를 시행한 공동체가 있었는데, 임기제가 아빠스 레임덕 현상을 낳고, 임기 만료 2~3년 전부터 중요한 결정을 자꾸 다음으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정작 왜관수도원에서는 지난 2001년 이형우 아빠스 선출 시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종신제를 채택했습니다.
 

- 아빠스로 선출되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본 선거에 앞서 지난 6일 예비 선거가 있었는데, 이날 회원들이 종신제를 채택하고 후보 선출을 했는데, 제 표가 많이 나와서 놀랐습니다. 본 선거가 있었던 7일 아침 기도를 하는데, 첫 독서로 읽은 시편 37편에서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 주시리라”라는 후렴구를 묵상하고 ‘하느님께서 몸소 해 주신다’는 표현을 들으며 약간의 위로와 희망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 투표에서 아빠스로 선출되었는데, 당일 낮 기도 시간에 착좌식을 하면서 첫 소감을 밝힐 때도 이 시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 수도원 형제들뿐 아니라 수도원과 관계를 맺고 있는 바깥에 계신 분들과도 함께 새로운 노래를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가도록 노력하자고 말했습니다.
 

- 수도원이 젊어진다면,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성 베네딕도 오틸리아연합회는 정주생활만 하는 베네딕도회 전통과 좀 달라서 ‘선교 베네딕도회’라고도 부릅니다. 이런 선교 정신이 없었다면 100년 전에 베네딕도회가 한국에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덕원수도원에 있다가, 한국전쟁 이후 왜관에 수도원을 세우고 살아온 게 6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 수도원은 교구 본당사목을 지원해 왔는데, 연세가 많으신 신부님들은 대부분 본당사제를 역임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당사목은 현재 교구 사제들로 충분하고, 지금 6개 본당 정도에 수도사제가 파견되어 있기는 하지만, 젊은 사제들 중에는 본당 경험이 없는 사제들이 많아졌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는 것이지요.

1985년에 아빠스가 되셨던 이덕근 아빠스도 이미 수도승적 삶을 강조하시면서 본당사제의 역할을 축소하고 수도원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그리고 우리가 본래 ‘선교’ 베네딕도회로서 중국과 북한 선교에 관심이 많았는데, 공동체 차원에서 ‘선교’에 대한 개념 정리가 먼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현재 아시아 지역은 대륙이 크고 인구가 많은데 가톨릭 신자들은 3퍼센트 정도입니다. 필리핀과 인도 등지에 같은 오틸리아연합회 소속 수도원들이 있지만, 아시아에서 제일 큰 수도원인 왜관수도원은 직접 선교사를 파견하지 않더라도 아시아 선교의 지원기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도 활기 있게 일하고 성소자들도 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탈리아의 카말돌리 수도원의 경우에 봉쇄수도원이지만, 중국인 신부님이 계셔서 그분 중심으로 중국 청년들이 이 수도원에 와서 3~4년 씩 수련을 받고 가기도 합니다. 이들이 이 수도원에서 관상생활을 체득하고 중국 현지에 돌아가 이런 공동체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성당 앞, 베네딕토 성인상 ⓒ한상봉 기자

- 왜관수도원은 몇 년 전 미군기지 고엽제 관련 문제로 시위에 공식적으로 나선 적이 있습니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수도원으로서 왜관수도원은 그동안 주로 분도출판사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회적 관심을 표명하고 영성적 신학적 뒷받침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간접지원’ 방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도원의 사회 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수도원은 공동기도를 중시하기 때문에 종이 울리면 일하러 가고, 종이 울리면 기도하러 가고, 종이 울리면 성서 읽으러 가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회문제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도자들이 이러한 부분에 투신하려고 해도 소임이 자주 바뀌다보니, 지속성 문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전과 다르게 요즘 수도원에서는 고진석 신부처럼 정의평화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더라도 제지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는 이들도 별로 없는 현실입니다. 가능하다면, 이런 부분마저도 수도원 차원에서 공동식별해서, 많은 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는 없더라도 기도를 통해서라도 지지 · 지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더 공동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동안 저희 수도원에서 해 온 일들이 아직도 유용한지 식별하는 작업이 요청됩니다. 회원들도 점점 고령화되고, 젊은 수도자들이 너무 과중한 일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줄곧 해온 일이지만, 이미 다른 곳에서 충분히 감당하고 있는 일이라면 조정하거나 정리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공동식별을 통해 한국 사회 안에서 저희 수도원이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편 이 문제와 상관없이 최근 들어 많은 이들이 수도원을 방문하고 있는데, 이들은 수도원에서 공동기도에 참여하면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싶어 합니다. 신자들의 이런 영적 갈증을 수도원에서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네딕토 성인의 수도규칙서에서 말하듯이, 우리가 이들을 얼마나 제대로 환대하고 있는지도 먼저 성찰해 봐야 합니다.

ⓒ한상봉 기자

- 아빠스가 되시면서, 특히 마음 쓰고 계신 게 있는지요?

저는 평소 사진을 찍는 게 취미의 하나인데요. 사람보다는 풍경을 주로 찍었습니다. 풍경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게 참 좋더군요. 세세한 것보다는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것이 마음이 더 와 닿은 것이지요.

그런데 2011년부터 유기서원자 수련장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도자마다 사는 방법도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하느님 체험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전체적 아름다움도 지향해야 하지만, 회원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도 수시로 변하는 미묘함조차도 공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야 공동체도 변화될 수 있겠지요.

카메라를 가까이 대고 사람 얼굴의 일부를 찍어도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빠스 직분은 전체를 보아야 하지만, 구체적인 삶과 형제들의 고유한 영적 여정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즘 수도원을 찾아오는 평신도 젊은이들도 자기 고민거리에 귀를 기울여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가 너무 개인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있지만, 구체적인 개인들의 요구에 응답하면서 접근하는 게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 수도원 입구에는 ‘주님만을 섬기는 학원’이라고 적혀 있다. ⓒ한상봉 기자

- 마지막으로 아빠스께서 베네딕도 수도원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도 잠깐 듣고 싶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을릉도에 살았습니다. 어려서 왜관수도원 수사님들이 을릉도에 여름 휴가를 오셨는데, 그분들이 돌아가시고 선물로 보내 준 것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꽃들에게 희망을> 등의 책이었지요. 그 책 뒤에 ‘경북 칠곡군 왜관읍’이라는 주소가 나오는데, 그게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그 후 고등학교와 대학을 대구에서 다녔는데, 경북대 다니던 때 수도원 신학원이 붙어 있는 대명동성당 교리교사를 하면서 늘 베네딕도회 신부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진 토마스 신부님과 허창수 신부님은 자주 학생 미사 주례도 보셨거든요, 그래서 교구 성소자 모임 한 번 기웃거리지 않고, 왜관에 와 보고는 바로 ‘여기가 내 살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로마에서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 다니실 때 교회론을 전공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신학교 시절부터 ‘친교’에 관심이 많이 갔습니다. 교회론을 공부하다 보니, ‘친교 교회론’이 있더군요. 삼위일체의 하느님에서 비롯된 공동체적 교회론이기도 하겠지요. 이걸 좀 더 알아보자고 해서 교회론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이걸 달리 말하면 ‘연대’라고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교회론의 핵심을 ‘친교의 공동체, 세상과 연대하는 교회’라고 말해도 좋겠네요. 친교의 사회적 확장이 곧 연대니까요. 한 시간 남짓 좋은 시간을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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