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우리집엔 책이 많다.
그동안 나름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나는 것이 없다.
누군가 어떤 책에 감명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말이 없다.

내가 책을 읽는 목적은 뭔가 궁금할 때다.
현실에서 뭔가 불편하거나 의문이 생길 때 책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인생에서 어떤 위험부담도 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길로 가고자 했지만
책에서 내가 찾는 안전한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실패하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실패가 과정이고 때로는 그 경험이 힘이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책만 뒤적이며 세상이라는 물에 뛰어들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예를 들어, 애들을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
책에서 가르침을 얻으려 했는데
너무도 많은 다른 의견들이 있었다.
‘자유방임적으로 키우라’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자유방임적 교육은 애들을 망친다’는 책도 있었다.

처세에 관해서도 ‘낙관적으로 살아라’ 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지나친 낙관은 일을 그르친다’는 책도 있어
갈피를 못 잡고 오히려 헷갈린 적이 많았다.
도대체 뭐 어쩌란 말이야?

한동안 우울한 기분에 빠져있을 때는
우울증에 대해 연구 분석한 책을 읽어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었다.
버킷 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적은 목록이라고 한다.
내게도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수영을 배우는 것이었다.
어릴 적, 물에 한 번 빠진 경험이 있어 물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었는데
굳게 마음을 먹고 수영반에 등록했다.

첫날 강습에서 머리까지 물에 들어가는 교육을 하는데
나는 조금 들어가다 죽을 것 같은 공포심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 일주일을 수영장 구석에서 우두커니 서서 남들 강습 받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집에서 세면대에 물을 받아 조금씩 얼굴을 담그는 연습을 해서
겨우 물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다음 과정으로 물에 몸이 떠야 하는데
계속 허우적대며 물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몸에 너무 힘을 주어서 그런다나?
물에만 들어가면 저절로 힘이 꽉 주어지는 것을 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느날 강사님에게 어떻게 하면 수영을 잘할 수 있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았더니
“뭐, 여기서 빠져봤자 죽기야 하겠습니까? 그냥 몸을 던지는 거죠.”

나는 어느 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 싶어 미친 척 하고 물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전신의 힘을 쭉 뺐는데 정말 기적처럼 몸이 물에 뜨는 것이 아닌가?
그 후로는 일취월장
이십여 명의 주부강습생 가운데 내가 맨 앞에 서게 되었다.
물론 접영, 평영을 할 때는 맨 꼴찌로 갔지만 말이다.
그 후로 강사님은 나를 보면 “인간승리”라고 가끔씩 놀리곤 했다.

이제는 안다.
전에는 책을 보며 연구했지만
수영을 잘 하기 위해서는 일단 물에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을.
우울할 때는 책을 보며 해결책을 찾을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 햇빛을 받으며 운동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삶이 던지는 질문에 정답은 없다는 것을.
그저 암중모색 하듯 어렵게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책을 보고 있다.
어떻게 살면 행복할까? 무엇이 행복일까?
행복에 관한 책을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다.

제 버릇 개 줄 수가 있나?
 

 
 

윤병우
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려 왔다. 4대강 답사를 시작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탈핵, 송전탑, 비정규직, 정신대 할머니 등 사회적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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