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오늘을 말한다 - 3]

우리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편찬 2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의 해’를 보내고 있다. 교황 요한 23세가 1959년 공의회 개최를 밝히고 3년 반의 준비기간을 거쳐 1962년부터 65년까지 열렸던 이 공의회에 대한 해석을 두고 아직까지 교회에서는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공의회를 요한 23세 교황의 표현대로 ‘제2의 성령강림’으로 보아 교회 전반에 걸친 변화와 쇄신을 꾀하려는 흐름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공의회, 특히 공의회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16개의 문헌을 통해 교회 전통의 지속성을 주장하는 경향도 분명히 있다. 이를 흔히 교회 ‘전통의 지속성’과 교회 ‘변화’의 이슈라고 한다.

▲ “신앙의 해다. 우리가 성전에서 성경을 통해 선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여겨들으며 신앙의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거리에서 들리는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슬픔과 고뇌의 절규에도 귀를 기울이고 함께 아파해야 한다.” 사진은 4월 11일 콜트 콜텍 노동자와 함께하는 ‘기운 팍팍’ 미사에서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 ⓒ한수진 기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달랐다

이단을 배격하고 새로운 도그마와 교회구조와 교회생활규율을 확인했던 이전의 다른 20번의 공의회와는 달리 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달리 말하면 세상과 교회 안에서 무엇을 단죄하고 꾸짖을까를 찾는 자리가 아니라, 삶의 자리인 ‘세상’과 ‘인류 역사’ 속에서 교회는 무엇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무려 4년에 걸쳐(매년 10주가량 전체 회의가 있었으나, 회기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도 문헌 작업은 계속되었다) 전세계의 2천 5백여 명 가까운 교부들이 모여 묻고 토의하고 성찰하며 뜻을 모은 자리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다.

공의회는 16개의 문헌을 내놓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문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회헌장>이다. 교회의 정체성을 다룬 문헌이기 때문이다. 이 교회헌장에서 또 논란이 되고, 그래서 두고두고 그 의미와 정신을 새롭게 찾아내야 할 대목을 꼽으라면 필자는 제2장 ‘하느님의 백성’을 꼽는다. 지상의 역사 여정에서 제도를 갖출 수밖에 없는 교회지만, 공의회는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정의하였다. 그 가운데 당연히 우리 가톨릭교회 신자가 자리하고 있지만, 다른 종교(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에 몸담은 이들 뿐만 아니라, 선의의 모든 사람까지 하느님 백성이라고 선언하였다. ‘교회 밖에도 구원은 있는가’라는 전통적 물음은 물론 ‘다른 종교는 하느님의 구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신학적 물음까지 다루며 그 답을 찾으려 한 셈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다른 종교, 혹은 비가톨릭 그리스도교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정복하려는 태도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협력함으로써 보편적 인류 구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이렇게 이전 공의회와 다른 태도를 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다른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인류가 직면한 상황(“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사목헌장> 1항) 때문이었음은 분명하다. 몇 십 년 만에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렀으며, 그 과정에서 홀로코스트를 목도했고,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많은 나라들이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절대 다수의 시민이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경제적 격차는 평화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계대전에서는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전쟁 후 각각 양축으로 군사력,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살벌하게 경쟁했으며, 마침내 ‘쿠바 미사일 위기’라 불리지만 ‘인류의 전멸’을 뜻하는 3차 세계대전의 위협을 체험했다. 물론 그 사이 우리는 한국전쟁을 겪었다.

구원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정말 어려울지 몰라도, 적어도 무엇이 구원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말하기 쉽다. 앞에 열거한 사건들로 채워진 시대 상황을 구원의 징후라고 진단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시대적 배경(사목헌장은 이를 “심각한 불균형”이라고 규정했다)을 갖고 있으며, 이는 ‘세상 안의’ 교회(ecclesia ad extra)로서는 당연히 응답해야 할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다. 공의회가 교회 안의(ecclesia ad intra) 문제만을 다룰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교회의 이 같은 이중의 방향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교회는 세상이 겪는 심각한 불균형을 외면하며 천상의 축복을 노래할 수만은 없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인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성사이기 때문에, 역사의 여정을 걷는 하느님 백성의 기쁨과 희망뿐만 아니라 슬픔과 고뇌까지도 자기 것으로 삼는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그것이다.”(<사목헌장> 1항)

문명만큼 끈질긴 게 야만

곧 부활 제4주일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전례에서 요한 복음의 말씀을 듣는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29-30)

또 사도행전은 전한다.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사도 13,49-50)

척박한 땅에서 양은 목자를 잃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 그 양과 같은 처지의 지극히 나약한 이들을 예수님께서는 벗으로 여기고 섬기려 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처형하고, 그 예수님처럼 살려 했던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한 이들이, 다른 누구도 아니라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었으며, 그 도시의 유지들이었으며, 백성을 보호해야 할 권력자들(로마 제국에 부역한 이들에 불과했지만)이었다는 것은 지독한 역설이다.

예수님 때 그랬고, 그리고 사도 시대에 그랬다고 해서, 오늘날 그런 일이 없으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문명’만큼 지독히 끈질긴 것은 ‘야만’이다. 야만은 호시탐탐 지극히 나약한 이들을 “내(그리스도의) 손에서, 내 아버지(하느님) 손에서 빼앗아” 갈 기회를 노린다. 문명의 탈을 쓴 후기자본주의적 물질주의가 지구 곳곳에서, 그리고 이 땅에서 지극히 나약한 이들을 빈곤으로 내몰고, 그것도 모자라 그리스도의 자리, 하느님의 자리마저 빼앗아 절대자로 군림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앙의 해다. 우리가 성전에서 성경을 통해 선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여겨들으며 신앙의 열매를 맺고자 한다면, 거리에서 들리는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 특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슬픔과 고뇌의 절규에도 귀를 기울이고 함께 아파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그들을 내(그리스도의) 손에서 (…) 내 아버지(하느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박동호 신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신정동성당 주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