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알청춘일기]

당신의 과거는 안녕하십니까

요새 고3 한 명을 알게 되어 이런저런 인생 상담을 들어주고 있는데, 참 할 말이 막연하다. 나는 내가 어떻게 자라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교범이 될 만한 건덕지가, 도무지 내 스무 살 전의 역사에선 찾아지지 않는다.

사람은 어떻게 크고 자라는 걸까. 크고 자라온 사다리를 걷어차는 인간이 되고픈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정말로 모르겠다. 나는 고3 시절 또래에 비해 한참 덜 자란 인간이었고, 슬프게도 그걸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노트는 그런 수치스러움을 토로하는 낙서들로 가득하다.

물론 지금에 와선, 어느 한 시점에서 누가 더 잘나고 못난 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더란 걸 알겠다. 당시엔 그토록 부러워 뵈던 멀쩡함이 시간이 지나면 너절함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당시엔 참 비루해 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썩어져 어떤 절륜함을 낳을 토양이 되기도 하더란다. 하지만 그런 사후적인 사탕발림은 그 당시나 지금의 괴로움을 그다지 잘 위로해주지 못한다. 그러니 묘연하다. 사람은 대체 어떻게 자라오는 것일까. 또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그나마 좀 살만해진 걸까. 과연 그럴까.

ⓒ김대현

부럽고 낯선 청춘

나는 내가 자라온 공교육 환경이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다. 졸업한 이후론 고등학교 선생을 한 번도 찾아뵌 적이 없다. 학생 때부터 그네들은 이미 스승이 아니라 어떻게든 월급을 벌고 살아야 할 이들이었고, 그걸 이해해야만 갖가지 괴팍함을 용서받을 수 있던 생활인들이었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선생을 존경하기에 앞서 선생을 연민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더 나을 것 없었던 그 속의 나 또한, 거의 자폐증에 가까운 대인관계를 통해 그 선생들과 두릅으로 연민되기에 좋았다.

상경한 후 나는 훌륭한 고등학교에서 훌륭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아 훌륭하게 자란 아이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난 그네들이 부러웠다.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공교육 경험의 온도차는 계급의 격차만큼이나 엄청났다. 그랬거나 말거나, 부러움이란 원래가 그 대상과는 무관한, 자기중심적이고 비구체적인 무엇이었다.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러웠고, 따라서 진심으로 그네들을 겉핥았고 전력을 다해 이상해져갔다. 부러움에도 관성이 있어, 그네들이 부럽기 위해서는 원리적으로 나만 계속 이상한 사람이어야 했다. 외토라진 나는 내 마음을 그런 식으로 괴롭혀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가능성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치 있는 것들은 도처에 널려있었지만 그걸 고를 안목과 용기가 없었다. 처음부터 완전한 지식을 갖고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눈앞에 놓인 가능성을 감별하지 못하는 청춘의 풍요는 하루하루가 열패감이었다. 되는 대로 당장의 조직에서 이상스레 열심해져 보기도 하고, 우연한 사상을 목숨처럼 여겨보기도 하였고, 오늘 만난 사람이 갑자기 사랑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 모든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아름답게 정리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 시절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순간 식은땀 같은 후회가 밀려온다.

최근에 내가 가장 즐겨 뱉었던 말이 “젊음이란 본래가 거지같다”는 것이었다. 100가지의 가능성이 있다고 상찬되지만, 정작 그 100가지 중 99가지를 골라내 버려야 하는 게 그 잘난 젊음의 실체 아니냐고. 물론 내가 젊음 일반을 폄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내 젊음이 주로 구차했기 때문이지만, 저 말에 일말의 진실이 없을 건 또 무어겠나 싶다. 나는 내 과거가 마음 아프듯이, 어떻게든 자라야할 그네들이 마음 아프다. 그네들은 제 손을 스치는 가능성들을 과연 얼마나 후회 없이 거머쥘 수 있을까.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나름대로 건강하고 현명하게 젊음을 버텨올 것이다. 나는 그런 인생에 대해 털끝만큼도 알지 못한다. 건강하게 자라왔다고 지난날을 술회할 수 있는 건 대체 어떤 시간들을 거쳐야 가능한 것일까.

사람은 자기 힘으로 제 과거를 정리할 수 있을까

반대로 누군가 과거의 나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나는 그동안 성공적으로 군대를 제대하고 20대 초반의 후안무치를 비웃으며, 짐짓 나이든 행세를 꿰찰 수 있게 됐다. 속된 말로 20대 후반의 나는, 비로소 인간 구실을 갖춘 스스로의 변한 모습에 도취되는 낙으로 살았다. 그리고 최근에 나와 가장 비슷하게 고통 받고 아파하던 어린 친구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 지금 나는 그 아이의 고통스런 낙서가 잠겨 있는 SNS며 웹페이지의 문턱조차 클릭해보기 두렵다.

누구 하나 과거의 나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 째짐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는 현재의 사람과는 거의 전적으로 무관하다. 자기가 겪은 바라고 해서 그에 대해 좀 더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기가 겪은 것이기 때문에 더 이야기하기 막막하다. 따라서 그런 감정은 어떤 의미로 초년병의 부러움보다 차라리 몇 배 더 비구체적인 것이다. 나와 똑 닮은 그 아이의 고통스런 글귀를 대하기 어려운 건, 그 비윤리적인 ‘대책 없음’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짐짓 성공한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깨달음이 누구에게든 적용될 거라 믿고, 보는 사람마다 그것을 설교하며 남 인생을 걱정해주곤 한다. 나는 그런 그들이 신기할 때가 잦은데, 자신이 겪은 바를 온전히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그 ‘대책 없는’ 용기가 가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보다 현명한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대개 자기의 과거에 대해 입을 다문다. 그것이 그들 나름대로는 세상에 대한 모종의 ‘대책 없는’ 예의쯤일 것이다. 그렇다면 서른 줄이 된 나는? 10년 전 내가 몸소 부러워했던 이들에 관해 거의 아무 것도 알지 못했듯이, 나는 내 과거와 닮은 이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나는 내 과거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멀쩡히 나이 들어서 행복하냐고? 글쎄, 당장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나이 든다는 것은 곧 코끼리무덤 같은 내 과거의 허공망에 언제 발이 빠질지 모를 위험을 몰래 참아넘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걸 파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짐짓 점잔이라도 빼면서 말이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인 것은 없어집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1코린 13,8-12)


 
김대현 (베드로)
대학원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으며, 노래하고 사진찍고 잡지 표지디자인 만지는 일을 좋아한다. 각 세대의 상식을 다른 세대에 번역해주고 이해의 끈을 잇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편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