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평화재향군인회 활동가 더드 핸드릭 씨 강연

“깊은 오지에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정말 성스러운 곳이라서 미군이 결코 주둔할 수 없는 지역이 지구상에 과연 존재할까요? 지금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그런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활동가 더드 핸드릭 씨는 15일 서울에서 열린 강연에서 전세계 151개국에서 700개가 넘는 군부대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 군사정책의 실상을 알렸다. 이날 강연은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정의평화위원회와 여성국제연대행동네트워크가 공동주최했다.

▲ 미국 평화재향군인회 활동가 더드 핸드릭 ⓒ한수진 기자

더드 핸드릭 씨는 1960년대에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제대 후 미국에 돌아와 가족을 부양하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그는 1998년에 평화재향군인회가 마련한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해 다시 베트남을 방문하게 됐다.

“한 때 적이었던 사람들이 옆에 나란히 앉아 3주를 함께 보냈습니다. 제 동료들은 대부분 전쟁 중에 부상을 당해 장애를 얻은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매일 밤낮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지막에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때의 경험은 나를 변화시켰고 이를 계기로 평화운동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강정에서 벌어지는 일, 항상 미국이 취해온 방식

이후 더드 핸드릭 씨는 마셜제도와 디에고가르시아, 그린란드에서 미군기지 건설이나 군사훈련으로 강제 이주당한 피해자들을 만나고 평화재향군인회 활동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알려왔다. 태평양 중서부에 위치한 마셜제도에서 미국은 1945년부터 13년간 무려 67회에 걸쳐 핵실험을 벌였다. 아름다운 섬에서 자유로이 살던 주민들은 미국 아칸소 주로 강제 이주된 후 닭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신세가 됐고 섬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됐다.

인도양 차고스 제도의 디에고가르시아 섬에서는 미국이 공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1967년부터 주민들을 강제로 배에 태워 주변국으로 이주시켰다. 디에고가르시아는 미국이 중동을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되며 아프가니스탄과 두 번의 이라크 침공 당시 이곳에서 폭격기가 출격했다.

그린란드 툴레 미군기지 터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사연도 다르지 않다. 장교 시절 툴레 미군기지에 배치됐던 더드 핸드릭 씨는 2008년 툴레 미군기지 건설로 쫓겨났던 주민들을 만났던 이야기를 전했다.

“‘루시 쿠아키작’이라는 원주민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툴레 기지 건설로 강제이주가 벌어졌던 당시에 주민들에게 4일의 시간을 줬다고 합니다. 주민들은 가족들과 살던 오두막집, 개 썰매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야 했어요. 강제로 쫓겨난 후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살던 집이 보이는 곳에서 노숙을 했는데 모두 아무 말 없이 뒤를 돌아보며 울었다고 합니다.

미국이 마셜제도에서 핵실험을 하기 전에 방사능 피해를 고려했을까요? 디에고가르시아 주민들이 강제이주 후에 빈곤에 시달리게 될 것을 고려했을까요? 이누이트 원주민의 문화가 사라질 것을 고려했을까요? 평화의 섬으로 불리던 제주가 파괴될 것을 고려했을까요?”

더드 핸드릭 씨는 “제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항상 미국이 취해왔던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만난 주민과 지킴이들에게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전하며 그들에게서 미국의 소설가이자 인권활동가인 앨리스 워커의 글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우리의 희망만큼이나 큰, 아니 그보다 더 큰 슬픔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이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겪어보지 못하고, 그래서 그들의 충만함에 도달할 기회를 놓치는 것은 제게 전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앨리스 워커, <평화를 향한 활동에 관한 고찰> 중)

“미국의 베트남전쟁 피해 배상,
‘희망 있다’고 말하지 못해 가슴 아파”

강연을 마치고 질의 응답 시간에 베트남 출신의 한 학생은 “미국 정부가 베트남 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줄 가능성이 있는지” 물었다. 베트남에서는 전쟁 당시 미국이 사용한 고엽제로 인해 약 500만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베트남 신생아의 2%가 고엽제로 인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다.

더드 핸드릭 씨는 “나 역시도 베트남전쟁의 공모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미국과 베트남에서 민간 차원의 교류가 꾸준히 이뤄져왔고 미국의 몇몇 국회의원들이 고엽제 피해자 보상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희망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미국이 지금까지 완고한 입장을 고수해온 이유는 한 곳에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면 전세계에서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두 보상을 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고엽제 피해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더드 핸드릭씨는 몇 번이나 “우리가 저지른 일은 너무나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베트남, 마셜제도, 디에고 가르시아, 그린란드에서 벌어진 일이 더 이상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쟁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거나 군사기지가 들어선 이들 지역도 한 때 강정마을처럼 아름답고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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