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정일우 신부가 기틀 잡아.. 가치를 추구하는 생산자공동체

귀농공동체를 소개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시골구석이나 산골짜기에 숨어 살며 여간해서는 자신들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설립자가 이름난 분이라면 모를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공동체를 찾아내기 힘들다. 취재 일정을 줄이려고 되도록 영남에 있는 공동체를 수소문해보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솔뫼농장이 내 레이더망에 걸린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용산사태 해결,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 해결을 기치로 내건 생명평화대행진단이 문경새재를 넘어 괴산으로 가는 하루 일정에 참가했다. 그때 일정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데 젊은 여성 예닐곱이 몸뻬바지 차림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웠는데, 괴산 솔뫼농장 아낙들이라고 했다. 보는 순간 아주 생기 있고 발랄한, 그야말로 느낌 있는 귀농 공동체란 인상을 받았다.

사진 제공 / 이수용 수사

속도는 사유를 증발시킨다

원래 일정은 하룻밤을 묵으며 공동체를 자연스럽게 염탐하듯 취재하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공동체 사정이 있다고 해서 숙박은 포기해야 했다. 심심치 않게 ‘대학찰옥수수’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던 그 옥수수의 원산이 괴산일 것 같았다. 또한 군청이 내걸었음직한 ‘2015년 세계유기농엑스포 개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어느새 유기농도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사용되는구나. 아무튼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길은 속리산으로 이어졌고 차를 멈추고 싶을 마음이 생길 정도로 수려한 산천경관이 펼쳐졌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평온한 들녘이 나타난다.

사진 제공 / 이수용 수사
‘솔뫼농장’ 입간판이 보이고 길가에 건물 몇 채가 보였다. 여긴가 싶어 내려서 ‘솔뫼 사랑방’, ‘하늘지기 꿈터’라는 나무 간판을 따라가 보니 인적이 없었다. 건물에 그려진 그림하며 나무에 달려 있는 그네를 보면 아이들이 사용하는 장소 같았다. 혹시 누가 있을까 싶어 여기저기 샅샅이 둘러보고, 유리창으로도 건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자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붙은 나무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속도는 사유를 증발시킨다.”

우리 시대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상기시키면서 또한 해결점을 제시하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이 글귀 하나 얻은 것만으로도 솔뫼농장을 찾은 보람은 충분했다.

솔뫼농장이 있기까지

사람을 찾지 못해 솔뫼농장 총무 김의열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기는 공동체 아이들의 공부방이고 길 건너편에 있는 큰 건물들이 있는 쪽으로 오라고 했다. 규모가 상당했다. 솔뫼어울림터, 농장 사무실, 솔멩이 배움터, 솔멩이 도서관, 국선도 수련원, 저온 저장창고가 자리잡고 있었다. 엄마들은 도서관에서 모임을 하는 중이었고 아이들은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기거할 만한 건물이 없었다. 회원들이 다 같이 생활하고 농사짓는 공동체를 상상했는데, 솔뫼농장은 농촌의 유기농산물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를 이어주는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에 연계된 생산자조합이었다. ‘솔뫼유기농업영농조합법인’이란 법률적 효력을 갖는 이름도 있었다.

솔뫼농장은 1994년 3월 5일, 무농약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한 토박이 네 가구와 귀농가족 두 가구가 만든 친목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가톨릭 농민회와 인연이 있거나, 농약중독으로 고생한 뒤 관행농법의 폐해를 깨닫고 생명을 살리는 농사법을 찾고 있었다. 여기에 인접한 경북 상주의 농민 몇 가구가 동참했다.

공동체가 기틀을 잡는 데는 예수회 정일우 신부의 공이 지대했다. 1994년 마을에 정착한 정 신부는 전국적인 인맥으로 유기농산물의 판로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2002년 서울로 떠날 때까지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시흥 보금자리에서 정일우 신부와 인연을 맺었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배숙희 루시아 수녀도 마을에서 소년 예수의 작은 집을 운영하며 공동체를 도왔다. 가톨릭 농민회의 원로인 임봉재 회장도 2년 정도 공동체에 머물며 영향을 끼쳤고, 예수회 김정욱 신부는 공동체에 문화활동을 도입하고 회의문화를 정착시켰다.

2001년 솔뫼농장은 ‘한살림서울’ 도봉지부와 자매결연하여 본격적인 도농 교류에 들어갔다. 대외적인 관계가 넓어지고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회원들은 농장 운영의 전망에 대해 고민하였다. 그 결과 2006년에 식품가공사업을 시작하였고, 2008년에는 교류활동의 터전인 솔뫼어울림터를 완공했다. 솔뫼농장은 내실 있고 활발한 생명살림 실천 활동을 인정받아 2006년 한살림 20주년 기념행사와 2010년 한살림청주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우수 생산공동체상’을 받았다.

사진 제공 / 이수용 수사

대화와 소통을 통한 살림

솔뫼어울림터에서 김의열 씨는 공동체의 역사를 과장 없는 말투로 서술했다. 이루어 놓은 업적에 비해 수사(修辭)가 너무 빈약했다. 미래의 비전만을 바라보고 대책 없는 낙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솔뫼농장은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기보다 실생활에서 부딪치는 일상의 문제들에 대하여 회원들과 함께 고민하며 살아간다.

사실 솔뫼농장을 지금까지 이끌고 온 동력은 한 달에 한번 열리는 월례회의다. 월례회의는 초기부터 지금껏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회의가 길어져서 이틀씩 하기도 했다. 매월 15일에 회원들이 모여 농장의 모든 대소사를 이야기하고 결정한다. 회원들 모두가 특별히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한두 사람의 주도로 회의가 끌려가지 않는다. 월례회의에서 모든 얘기들을 해왔기 때문에 따로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없다.

솔뫼농장은 가구당 1표가 아니라 여성들도 1인 1표의 의결권을 가진 회원으로 자격을 갖는 개별 회원제를 운영하고 있다. 회장도 초기부터 2년씩 돌아가면서 한다. 회원전체가 동등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활동하자는 취지다. 회원들은 농산물 판매금액의 5%를 농장 운영비로 납부한다. 그리고 운영비의 10%는 북한 동포 돕기, 아이티 지진 구호, 지역 불우이웃 돕기 같이 공공 목적을 위해 쓰인다.

솔뫼를 사랑하는 사람들

솔뫼농장이 ‘한살림’ 혹은 지역사회와 연계해서 벌이는 활동은 실로 다양하다. 단오축제, 농활, 캠프, 생명학교, 한살림 수습실무자연수, 귀농학교, 솔뫼농장 추수감사제, 논살림활동, 솔멩이 배움터, 솔멩이 도서관, 강좌, 이웃돕기, 국선도 수련, 솔멩이 문화교실, 야생초 모임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이런 활동들은 솔뫼농장이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임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중 솔멩이 배움터는 농활을 오던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2001년에 시작됐다. 1월과 8월 방학 때 2주 동안 진행하는데 대학생들이 지역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프로그램이다. 10년 넘게 진행하며 인연 맺은 솔멩이 배움터 선후배들과 자라난 지역의 아이들이 솔사모(솔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하였고 2004년부터는 솔멩이 배움터를 솔사모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수용 수사

다시 살아나는 땅

공동체의 다양한 활동과 행사들은 지역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회원들은 지역 사람들이 아직 ‘친(親)솔뫼’까지는 아니지만 ‘반(反)솔뫼’는 넘어섰다고 느낀다. 농약도 비료도 쓰지 않고 농사를 짓는 회원들을 보고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너희들이 앞을 내다 봤구나!’ 하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지난 15년의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다. 다시 살아나는 땅을 보고 실감한다. 회원들이 농사짓는 논에 멸종했던 투구새우가 다시 나타나 농촌진흥청에서 조사하러 오기도 했다.

최근 솔뫼농장은 ‘제철꾸러미’ 사업을 벌이고 있다. 회원들이 초봄부터 늦가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충주, 제천, 청주의 소비자 70여 가구에 제철 농산물을 배송하는 것이다. 계산해보면 소비자들은 일 년에 대략 150가지 정도의 싱싱한 유기농산물을 제공받는 셈이다. 상당히 일손도 많이 가고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이웃들에게 보약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

그다지 자랑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솔뫼농장 구석구석 생태적인 실천들로 가득했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가공공장 지붕에는 햇빛발전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살림서울’에서 성금과 출자금을 모아 설치한 10kW급 태양광발전기는 공장 사용전력의 70%를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솔뫼어울림터를 지을 때도 귀틀집에 황토로 마감하고 구들과 진공관튜브식 태양열온수시설을 갖추어 연료비를 절감하고 있다. 또한 환경단체 활동을 했던 회원이 ‘에너지 농부학교’를 운영하여 회원들이 에너지에 대한 공부와 실습에 참여하기도 했다.

솔뫼농장은 벽을 허물어 가고 있다. 회원들 사이의 벽,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벽, 농장과 지역사회와의 벽, 물질(생산, 생계)과 정신(심신수양, 생활양식)의 경계를 허물어 가며 그들은 새로운 삶의 그릇을 만들어 가고 있다. 열려 있으면서도 통합성을 가진 공동체가 그 완성된 그릇의 모습이다.

반나절의 취재라 현장감이 떨어진다. 아쉽다. 몸뻬바지 아낙들과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흥겨운 이야기꽃을 피우기를 기대하고 떠났는데. 속리산 자락에 숨어 있는 생명의 보금자리, 솔뫼농장. 다시 찾을 날을 기약한다.

고진석 신부 (이사악, <분도> 편집장,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소장)

* 이 기사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계간지 <분도> 2013년 봄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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