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자 부활 팔일 축제의 마지막 날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0년 4월 30일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불렸던 복자 마리아 파우스티나를 시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도록 당부하였고, 이에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사도 토마스를 만납니다. 우리가 흔히 ‘불신앙의 사도’라고 부르는 그 토마스 사도 말입니다. 이런 별칭이 그에게 붙게 된 계기는 단연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다는 다른 사도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그 못 자국과 그분의 옆구리에 자신의 손가락을 직접 넣어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하겠다(요한 20,25 참조)고 버텼기 때문입니다.

토마스는 자신이 직접 ‘보고 확인’을 해야 스승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과연 토마스만 ‘불신앙의 사도’라는 애꿎은 별명을 지녀야 했을까요?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토마스가 제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불신앙의 사도’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제자들 또한 토마스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토마스처럼 예수를 직접 ‘보고’ 나서야 그분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자, 그제야 스승을 알아 뵙고 기뻐했다(요한 20,20 참조)고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그들 역시 토마스처럼 ‘보고 확인’한 후에야 예수의 부활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화로, 기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인 말씀으로 당신의 고통스러운 수난과 영광스런 부활에 대해 그토록 강조했지만, 이를 제대로 알아들었던 제자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토마스처럼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심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행동에서는 토마스와 같은 의심을 가졌습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리라는 말씀을 이해하는 제자도, 그 말씀에 확신을 두는 제자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승이 잡히자 지레 겁을 먹고, 붙잡히신 예수만을 남겨 둔 채로 모두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시자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칼릴 지브란은 <사람의 아들 예수>에서 “의심은 믿음의 쌍둥이 형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한결같이 부활에 대한 의심을 믿음의 동기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스승의 죽음에 대한 절망, 그리고 포기와 의심에 빠진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은 ‘보고 확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와의 ‘만남’ 즉 ‘대면’이 제자들의 믿음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결코 교리나 교의에 의해 굳건해지지 않습니다. 교과서적인 신학이나 신앙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공식이나 이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체험하는 신앙만이 믿음을 굳건히, 그리고 올바르게 우리를 인도합니다. 예수의 부활이 신화가 아니듯, 우리의 부활 신앙도 결코 이론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체험하는 신앙, 체험하는 부활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부활 신앙입니다.

 
 

김홍락 신부 (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교부학과 전례학을 전공했고, 현재 필리핀 나보타스(Navotas)시 빈민촌에서 도시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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