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니라의 주말영화] <7번방의 선물>,이환경 감독, 현재 상영 중

 
바야흐로 부성의 시대인가 보다. 예능에서 <아빠! 어디가?>의 다섯 아버지와 아이들이 주말 저녁을 쥐락펴락하더니 이번에는 <7번방의 선물>이 영화계의 흥행기록을 새로 써나가고 있다. <7번방의 선물>은 지능지수가 여섯 살에 머문 아버지 이용구(류승룡 분)의 부성애를 다룬 영화이다. 그는 예쁘고 똑똑한 딸 예승(갈소원 분)과 단둘이 살고 있는데 우연한 사고로 유괴 및 강간․살인 혐의를 쓰고 교도소 7번방에 수감된다. 아직 어린 예승과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용구는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같은 방 동료들의 도움으로 예승을 감방으로 밀반입(?)하면서 <7번방의 선물>의 서사는 본격화된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흥행 돌풍

지난 9일, <7번방의 선물>은 개봉 46일 만에 관객수 1200만 명을 돌파했다. 역대 흥행 1위인 <괴물>을 100만 스코어 차로 뒤쫓고 있는 형국이다. 영화계는 이 놀라운 선전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타깃으로 했다가 설날로 미뤄진 흥행시기의 행운과 입소문, 배우 류승룡에 대한 호감도와 아역 배우의 호연, 극장을 찾는 관객 연령대의 변화와 그들의 티켓 파워, 가족영화의 흥행 계보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거론되는 장르의 힘 등 이를 둘러싼 담론이 줄기차게 생성되고 있는 것이다.

호들갑 섞인 분석의 배경에 영화에 대한 개봉 전 매체의 주목도가 현저하게 낮았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셨을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베를린>, <남쪽으로 튀어> 등이 개봉 전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빈도수를 떠올려 보시길. 어쨌든 흥행과 관련한 분석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에서 이미 비중 있게 다루었던 터. 이 글에서는 <7번방의 선물>의 아버지들에 대해 언급해 볼까 한다.

출세, 성공,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이라는 명제

<7번방의 선물>의 아버지는 아이를 지킨 아버지와 잃은 아버지, 두 종류로 대별된다. 영화의 전제는 모든 아버지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아이를 지킨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무능하거나 규범에서 일탈한 존재이고, 잃은 아버지는 출세가도를 달리는 사람이거나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

이용구는 말 그대로 ‘모자라지만 착한’ 예승의 아버지이고 그의 동료는 7번방에서 신봉선이라는 이름의 딸을 얻는다. 이들은 아이를 끝까지 지키고 성장한 모습을 스크린의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반면 사회적으로 가장 성공한 인물로 나오는 경찰청장 지영부(조덕현 분)는 이용구가 얽힌 사고로 딸을 잃고, 아이에 대한 애정을 용구에 대한 복수심으로 치환한다.

 
출세는 오해의 씨앗인가요

용구가 머무는 교도소 중간관리자인 민환(정진영 분)은 아이를 잃은 과거 때문에 처음에는 이용구를 멀리하지만, 그의 진심을 알게 되고 예승을 자신의 딸처럼 아끼게 된다. 거칠게 요약하면 착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건 그렇지 않건 아버지가 될 수 있으나 악한 사람은 그 자격을 박탈당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그동안 대중영화가 보여주었던 아버지는 어떠했던가.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들은 무뚝뚝하고 애정 표현이 서툴렀던 같다. 그래서 오해가 빚어지고 그것이 풀리는 과정이 서사의 중심을 이루는 해피엔딩 영화였다. 또는 무자비한 방식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들 역시 자신처럼 강해질 것을 요구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대부>류의 아버지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상하고 평범한 아버지지만 초인적 힘을 발휘해 가족을 지켜내는 영웅적 아버지. 또 자상함,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괴팍함과 비범함을 무기로 가족을 지켜내는 아버지 등등. 아버지들은 항상 무언가를 지키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이용구는 어디에 위치하는 걸까.

평범 이하임에도 비범해야 하는 슬픈 존재

일단 이용구는 비범하다. 자신이 거한 공간의 실권자가 위험에 처할 때면 언제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그들을 구해낸다. 정말로 6세 지능의 존재라면 불가능할 민첩한 상황판단 능력과 순발력을 소유하고 있다. 모두가 노라고 말할 때 예스라 말할 수 있는 용감함과 무(無)매너를 갖춘 괴팍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비범하고 괴팍한 6세로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비행기구에 올라 예승과 죽음을 예감한 인사를 나눌 때 그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된다. 이용구라는 바보 가면과 목소리을 벗고, 우리가 아는 배우 류승룡의 매력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요소요소에서 <7번방의 선물>은 매우 영리하게 바보 행세를 한 영화로 보인다. 사형 직전 이용구는 관객(카메라)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굽혀 살려달라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사과를 한다. 판타지 속의 아버지가 아무리 비범하게 빛나도 사회에서는 갑(甲)에게 생명줄을 저당 잡힌, 한낱 을(乙)에 불과한 존재라는 사실. 그것이 세일러문 식(式)의 정의가 실현되는 법정드라마에 담겨도, 이용구가 보여주는 부성이 실은 사회적으로 경제력이 없었던 여성이 전유했던 모성애의 변형이더라도 관객들을 울린다. 그래서 천이백만의 아버지 혹은 그의 자식들이 자신의 지갑을 기꺼이 열었던 것이 아닐까.
 


 
 

진수미(카타리나)
시인, 한국문학과 영화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 <시와 회화의 현대적 만남>을 썼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출신. 작은형제회 <평화의 사도>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가톨리시즘이 담긴 시를 같은 지면에 소개했다. 덧붙여, 시는 영혼이고 영화는 삶이다. 펄프 향 풍기는 ‘거기’서 먼지와 정전기 날리는 ‘여기’로 경로 이동 중. 덕분에 머리는 산발이지만 약간 더 명랑해지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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