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호스피스 요리사 용서해 씨

용서해 씨는 조금 특별한 요리사다. 그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음식을 만든다. 우리 땅에서 나는 자연 식재료들을 연구하기 위해 3년째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지낸다. 전기도, 불도 없다. 밤에는 초를 켜서 불을 밝히고 아궁이에 불을 때서 요리한다. 그는 “자연에서 그저 좋은 것만 가져가겠다는 마음으로는 안된다”고 말한다.

“산속에서 살다 보니 제 존재 자체가 쓰레기더라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가 계속 나와요. 내가 살겠다고 자연 속에서 가져만 가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치유될 수 없죠. 땅과 소통해야죠. 근본이 없으면 얻은 게 아니에요. 저는 요리를 통해 근본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근본이 변하지 않으면 삶의 모든 문제는 새 길로 연결되지 못해요.”

▲ 용서해 씨 ⓒ문양효숙 기자

15년 전 지인의 손에 이끌려 방문한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어가는 이을 위한 마지막 연주

강활, 당귀, 딸기, 찔레, 겨우살이, 산초, 생강나무 등의 맛과 향을 줄줄 꾀는 용서해 씨는 사실 오랜 시간 음악가로 살아왔다. 플루트 공부를 위해 열일곱 살에 프랑스에 갔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24년을 연주했다. 그런 그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15년 전 지인 손에 이끌려 방문했던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말기 암 환자들과의 만남이었다.

“따뜻한 봄날이었어요. 아는 분이 ‘가볼 데가 있으니 플루트 들고 빨리 나와 보라’고 했죠. 주섬주섬 악기 챙겨 따라간 곳이 작은 호스피스 병원이었어요. 음악가가 왔다고 모두 너무 좋아하셨어요. 신청곡을 받아 연주해 드렸죠.”

그날 임종하는 이를 위해 연주하면서 용서해 씨는 음악이 주는 힘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음악이 연말이 되면 당연한 듯 예술의 전당에 올리는 베토벤 심포니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에게라도 기억되고 위로가 되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날 이후 용서해 씨는 음악봉사자로 매주 호스피스 병동을 방문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을 위해 준비한 '삶의 마지막 축제'

그는 죽음을 앞둔 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 때론 음악을 선물하고 때론 식사를 돕고 때론 그저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과의 인연이 계속되면서 환자의 남겨진 아이들이 눈에 보였다. 부암동에 작은 카페를 열어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돕기 위한 후원 공연을 열고 환자와 가족들을 초대해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일명 ‘삶의 마지막 축제’였다.

“호스피스 봉사자로 나가다가 한 부부를 만났어요. 남편은 오십 대 중반의 안암 환자였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부인이 찾아오면 ‘나 죽으면 내 돈 가져가려고 그러냐?’며 저주를 퍼부었어요. 가시는 날까지 화해하지 못하셨죠. 그분들을 보면서 서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소통의 밥상을 차리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 용서해 씨가 친구와 나눈 밥상 (사진제공 / 샨티출판사)
그간 용서해 씨가 준비한 마지막 축제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 울고 웃었다. 그는 얼마 전 잔치를 열어 준 한 남성의 이야기를 전했다.

“58세 남성분이셨어요. 열 살 때 집을 나간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하셨대요. 결혼 후에 기적적으로 어머니를 찾았는데 엄마 정을 너무 그리워한 탓에 엄마한테만 가 있었던 거죠. 잠도 엄마 방에서 자고 매일 엄마만 찾으면서. 견디지 못한 부인이 ‘엄마하고 살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그분을 떠났어요. 2년 전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이제 이 분 곁에는 아무도 없었죠. 어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고요.”

그를 위한 축제를 준비하며 아껴놨던 천연 머루주를 꺼냈다. 그런데 축제 전날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들은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실에서 열린 잔치에서 아들은 아버지 손을 잡고 술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틀 후 아버지는 ‘떠났다’. 아들은 편지를 써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좋은 시간을 가져서 이제는 다 떨쳐버리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용서해 씨는 “사실 이 축제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남은 사람들은 그 모든 사랑과 미움을 다 기억하면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살아갈 이들에게는 정말 마지막인 거예요.” 떠나는 이들도 ‘마지막’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가오는 생의 마지막은 피해 갈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길이었다. 용서해 씨는 ‘마지막’을 ‘시작하는’으로 바꿨다.

“축제의 주인공은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인 거예요. 긴 여행을 떠날 때 가족, 친구들 불러서 ‘나 여행가기 전에 밥 한번 먹자!’ 하잖아요. 그것처럼 좋고 새로운 곳으로 길을 떠나는 사람인 거죠.”

환자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산으로
자연이라는 큰 스승 만나


▲ <삶의 마지막 축제>(샨티출판사, 2012)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은 음식 이야기를 나눌 때 유난히 행복해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 음식은 ‘추억’이고 ‘그리움’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육체적 고통 속에 있는 환자들은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어려웠다. 용서해 씨는 환자들이 몸에서 곡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면 그다음에는 결국 ‘굶어 죽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축제를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에서 한 걸음 나아가 몸이 아픈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음식을 만들고 싶어졌다. 20년 넘게 걸어온 플루트 연주자의 길을 미련 없이 접고 요리학교에 들어갔다. 5년 동안 이탈리아 요리와 프랑스 요리를 배운 그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레시피’보다 재료를 다루는 근원적인 방법이 알고 싶어졌다. 향을 어떻게 추출하는지, 소스는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었다. 재래식 요리법을 배우며 음식의 재료에 접근했다. 치유의 음식을 위해서는 수입품과 가공식품이 아닌 ‘우리 것’이 필요했다. 그는 자연스러운 순서인 듯 산을 향했다. 산에서 지내면서 좋은 재료를 찾아 그곳에서 환자들과 함께 지내려던 처음 계획을 포기했다.

“‘내가 들어가서 그 땅에는 뭐가 좋아졌지? 나는 계속 내가 원하는 것만 얻고자 했는데?’하고 묻게 되었어요. 왜, 기도 할 때에도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다가 문득 ‘나는 하느님을 위해 뭘 했지?’ 하고 물을 때가 있잖아요.”

그 물음 이후 삶의 자세가 바뀌었다. 물음을 품은 그에게 자연은 스승이 되어주었다.

“마을 할아버지와 산행을 하면서 두릅을 땄거든요.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두릅을 따면 가지를 잘라줘야 한다는 거예요. 안 그러면 나무 자체가 죽는다고. 모르는 사람들은 따기만 하잖아요. 잘 따는 사람은 따고 나서 가지를 베요. 왜 그럴까 궁금했어요. ‘살아야 할 의미가 없어져서’가 아닐까 해요. 새순의 의미는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 순을 따버리니까 살 의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 나무 자체가 죽어버리는 거죠. 완전히 새로 시작할 수 있게 가지를 베어주어야 하는 거지요. 두릅을 보면서 저 역시 살아야 할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게 돼요”

삶은 결국 숙제, 숙제를 풀고 보다 가볍게 떠나야

축제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싶었다. 맛있는 음식인 줄 알았는데 중요한 건 재료였다. 계속 찾다 보니 자연을 만났고 결국 삶의 근본을 묻게 됐다. 용서해 씨는 그저 길을 만나며 가고 있다.

작년 12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이들과 나눈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 <삶의 마지막 축제>(샨티출판사, 2012)를 펴낸 그는 4월부터 산모종에 들어갈 계획이다. 야생의 나물과 새순들을 뿌리째로 옮겨 심거나 씨를 뿌리니 산에서 농사를 짓는 셈이다.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이지만 근처 호스피스 병동에서 연락을 주면 또 그들을 위한 축제를 준비할 것이다. 긴 시간 말기 암 환자들과 마지막을 함께 한 용서해 씨에게 “그럼에도  삶은 축제냐?”고 물었다.

“글쎄요...‘숙제’같아요. 그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삶이 축제라고 하겠어요.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건 누구나 떠난다는 거잖아요. 그럼 어떡해요. 숙제를 풀어야죠. 숙제 다 풀면 얼마나 개운해요. 그럼 축제가 될 수 있겠지요.”

끝나는 때를 알 수 없는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이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일까. 많은 이가 나를 보내신 이가 내준 숙제를 잊은 채 오늘을 살아간다. 때론 엉뚱한 숙제를 하며 열심히 달리다 마지막 때에 가서야 그 숙제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용서해 씨는 말한다. “가볍게 떠나기 위해, 그 숙제를 풀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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