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의 주말영화] <스토커> 박찬욱 감독, 2월 28일 개봉

 
<올드 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비, 전지현, 이병헌, 배두나 같은 한국배우들이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연급 역할을 맡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면서, 그들에게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1980년대 초반에 강수연이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에서 깜짝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그녀의 이름 앞에는 의례적으로 ‘월드스타’란 타이틀이 닉네임처럼 따라다녔다. 그 후, 칸 영화제에서도 여우주연상을 타고,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모두 받고, <괴물> 같은 영화는 아시아를 넘어서 북미권과 유럽에서 흥행 성적도 좋았다. 그렇지만 늘 변방에서 노는 느낌은 지워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 중국권 출신인 이안, 오우삼, 왕가위, 성룡 등이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영화를 연출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우리는 주변부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식 때문이었다.

김지운,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
그들은 과연 어떤 평가를 받을까


그러나 2013년 올해에는 대표적인 한국 감독들이 할리우드에서 스타 배우들과 작업한 영화가 차례로 공개된다.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스토커>의 박찬욱에 이어 <설국열차>의 봉준호가 기다리고 있다.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1990년대에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미국으로 망명 후 할리우드에서 <닌자 키드>라는 영화 한 편을 찍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데니스 리, 아이작 정, 이지호와 같은 재미교포 감독들에 의해 꽤 많은 저예산 영화들이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한국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작가적 가치를 세계영화계에서 인정받은 감독들이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내로라 하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만들어낸 영화가 미국 주류시장에서 상영된다는 점이다.

김지운은 아시아 감독들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진출기를 따라가고 있다. 오우삼이나 서극처럼 홍콩에서 흥행적으로나 비평적으로 인정받은 대중적 코드의 감독들이 한때의 전성기가 지난 액션 스타와 함께 비백인계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액션물로 시작하는 방식이다. LA 주지사에서 액션배우로 컴백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캐스팅한 <라스트 스탠드>는 미국 내 흥행성적은 아쉽지만, 비평적으로는 김지운의 할리우드 차기작을 기대할 정도의 잘 만들어진 장르영화로 보고 있는 것이 중평이다.

그 다음 타자는 박찬욱의 <스토커>다. 올해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되어 “매혹적이고 소름 끼친다”와 “느슨하고 공허하다”는 양가적인 평 속에서도 대체적으로는 박찬욱의 할리우드 입성기를 성공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자, 그렇다면 이 영화를 한국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먼저 결론을 말하자면 박찬욱은 그다운 색깔과 개성으로 할리우드 스타들과 영화현장을 주도했다. <에이리언>, <델마와 루이스>, <글래디에이터>를 만든 명장 리들리 스콧 제작에 <프리즌 브레이크> 시리즈로 명성이 자자한 웬트워스 밀러의 각본, 니콜 키드만 주연, 박찬욱 연출, 환상적 조합이다. 장르는 박찬욱의 장기인 미스터리 스릴러. 이야기의 기본 토대는 앨프리드 히치콕의 <의혹의 그림자>(1943)와 닮았다. <의혹의 그림자>는 ‘찰리’라는 어린 숙녀가 평소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던 댄디맨 찰리 삼촌이 집에 함께 머물자, 점점 호감과 애정이 의혹으로 바뀌어가는 이야기다. 한집에 살게 된 연쇄살인범 모티프를 통해 영화는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가족이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는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스토커>는 히치콕에게 바치는 오마주다. 18세 생일을 맞은 소녀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브스카)는 갑작스런 사고로 아빠를 잃고, 이어서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매튜 구드)가 찾아온다. 인디아의 엄마 이블린 스토커(니콜 키드먼)와 인디아는 찰리의 등장으로 서로 묘한 긴장과 갈등을 겪고, 이러는 가운데 인디아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히치콕 감독에 바치는 오마주, <스토커>

이 영화는 플롯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던 박찬욱의 스토리텔링에서 보면 다소 느슨하고 심심하다. 뭔가 허전하게 비어있는 느낌이 들지만, 영화는 그 여백을 통해 미세하게 전달되는 무드를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긴다.

오프닝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전달된다.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건너는 인디아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은 매우 시적(詩的)이어서 노래를 듣는 것 같은 감각으로 전달된다. 쇼트들은 NG커트처럼 갑작스레 중단되었다가 다음 시간대로 점프하곤 한다. 쉬크하고 나른한 소녀의 정신 상태에 한 발짝 다가서서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과 사건들을 관찰하게 된다.

여기에는 온갖 흥미로운 메타포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찰리 삼촌과 인디아, 그리고 엄마 이블린의 관계는 근친상간적이어서 <햄릿>의 여성버전으로 읽히기도 하며, 또한 인디아와 찰리의 유사성에 기초한 도플갱어 호러로 보이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색깔은 미장센에 섬세하게 공을 들이는 데서 확연히 드러난다. 신발이나 벨트, 총, 혹은 피아노로 성적 코드가 표현되고, 음침하고 우화적인 분위기로 장식된 세트를 통해 진정한 안식처는 없는 현대 자본주의 가정의 위기를 나타낸다.

히치콕이 <싸이코>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평범한 사람의 끔찍한 내면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영화적 장치들을 통해 보여줬듯이, <스토커>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이 벌어질 듯 말 듯 한 분위기에서 밀도 높은 긴장감을 편집 기법이나 사운드, 그리고 소품의 배치들을 통해 계속해서 유지해나간다. 터질 듯한 성적 긴장감과 함께 살인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악마는 이웃집 혹은 우리 집안에도 살고 있다는 비관이 영화적인 방식을 통해 전체에 흘러내린다.

꽤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박찬욱 감독의 비관적이고 폭력적 표현이 불편하신 독자들 많으실 거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이 이런 류의 영화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영화 대사 한마디에서 포착되었다. 인디아는 죽은 아빠가 왜 자신에게 사냥을 가르쳤는지 회상한다. “더 나쁜 일을 벌이지 않기 위해 조금 덜 나쁜 일을 할 뿐이다.” 더 나쁜 세상과 맞서 살아야 할 우리 현대인은 피가 튀는 영화를 보는 것으로 나쁜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박찬욱을 좋아하거나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 영화를 좋아하는 애호가에게 이 영화는 소소한 즐거움을 잔뜩 안겨준다. 어린 배두나 같은 미아 바시코브스카를 보자면, 서양인이 동양인을 흉내 내는 연기를 구경하는 것이 재밌는 경험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히치콕에 대한 경애 장면은 영화 여기저기 많이 퍼져있다. 그가 애용했던 오싹한 경찰 이미지를 비틀고, 동물 박제를 통해 연쇄살인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패러디하며, 금발 미인에 대한 콤플렉스가 천연덕스럽게 사용된다.

무엇보다도 배우와 현장을 장악하여 자신의 개성있는 스타일로 영화를 완성해나갔다는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성공으로 보인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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