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판 신부의 아시아 신학 나머지 이야기(2)

피터판 신부가 가톨릭포럼에서 강의하고 있다.


피터 판 신부는 10월 15일에 있었던 열린 토론회에 앞서 우리신학연구소에서 “미국교회와 평신도”에 관한 간담회를 했다.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미국교회의 소식을 전하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하고 또 그의 얘기 가운데 아시아 교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 있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가톨릭신자는 미국 전체 인구의 약 20-25퍼센트를 차지하며, 타 종파에 비해 단일종파로는 가장 크고 또 신자 수도 가장 많다고 했다. 전체 인구를 3억여 명으로 잡으면 가톨릭신자만 6,000-7,500만 명이나 된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대로 성직자의 아동성추행으로 내홍을 겪는 미국 가톨릭교회는 연이어 불거지는 성추행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자못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생겨났다. 성직자, 특히 주교의 지도력 및 도덕성 부재에서 오는 신뢰상실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반대급부랄까 평신도, 특히 여성평신도의 부상이다.

2002년 12월 미국 가톨릭의 상징인 보스턴대교구의 수장 버나드 로(Bernard Law) 추기경은 그동안 사제의 어린이 성추행 문제를 적극 대처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임했지만, 그 뒤에도 주교들이 성추문에 연루된 성직자를 정직 또는 파면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인사발령을 내는 등 이들을 옹호하기에 급급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여러 교구에서 성추행 피해자 및 가족, 평신도 일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조직적 대응을 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갔다.

판 신부는 신자들이 성추행자체도 큰 문제지만 이 문제를 처리하는 주교들의 태도에서 크게 낙담하고 실망하여 이제는 주교들이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문제에 곧잘 발언해온 미국주교회의가 이라크전쟁 문제에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거나 부시 대통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신자들이 이들의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미국교회의 내부문제 때문이다.

2006년 현재, 미국 전체로 본다면 4명의 주교를 포함한 약 250명의 사제들이 성문제 스캔들로 사임했거나 정직상태에 있다. 성추행 피해자들은 소송을 내고 교구들에 피해보상을 요구하자 보상액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여러 교구에서는 정부에 파산신청을 하는 경우가 속출했다고 한다. 미국교회는 참으로 어려운 인고의 시기를 보내는 셈이다.

한편, 성추행문제를 계기로 평신도의 의식이 한층 고양되어 이 문제가 있기 전에도 사제성소가 줄어들어서 평신도, 특히 여성이 본당이나 교구청에서 주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어떤 교구에는 여성평신도가 사무처장을 맡을 정도로 이들의 활동이 미국교회 내에서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고 판 신부는 설명했다. 본당에서 최소한 4명의 여성이 유급직원으로 고용되어 활동하는데, 이들은 본당의 교리교육, 행정, 전례, 청년 및 아동교육 등의 분야에서 신학 및 성서학 석사학위 이상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한다. “왜 반드시 여성이냐, 남성들은 뭐하냐”는 질문에, 판 신부는 남성들은 ‘돈이 안 되는’ 신학이나 성서학을 전공할 돈이면 대신 금융이나 법, 비즈니스를 전공해 돈을 번다고 했다.

분위기가 이렇기 때문에, 사제나 성직자는 ‘사목자’나 영적 지도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고 신학이나 성서학은 능력 있는 평신도가 공부하는 것이 미국교회의 현주소라고 했다. 더욱이 신자수에 비해 사제성소도 급격히 감소해 미국에 있는 10여 개 신학교 가운데 두 곳 정도만 신학생이 200명을 넘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여성이 미국교회를 이끌어가는 데 큰 구실을 할 것이 틀림없다. 판 신부는 이런 현실을 직시할 때 미국교회에서 “여성사제 문제는 더 이상 피하기 어렵다”면서 여성사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필리핀이나 동티모르를 빼고 그리스도교는 소수이고 사제가 늘 부족한 데도, 그 어느 교구에서 평신도, 그것도 여성평신도가 사무처장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해당 교구의 주교가 혜안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조치를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평신도 양성에서도 역시 교회지도자, 곧 지도력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판 신부의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서품된 주교 대부분이 신학적,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인사들이다. 아시아도 예외가 아니라 앞으로 몇십 년 동안 교회 내 지도력의 문제가 크게 대두될 것이고, 이 문제가 아시아 교회의 현실을 어둡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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