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가로수들이 이파리를 흩뿌리면 막대그래프처럼 앙상한 나무에 휘감긴 바람이 하향곡선을 그리며 빙점 아래로 떨어진다. 헐벗은 겨울이 오면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처럼 붕어빵들이 우리 곁으로 회귀한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고 말하지만,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철에 붕어빵만큼 생의 기척을 일으키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공부방 아이들 중에서 영주는 겨울을 가장 기다리는 아이였다. 겨울이 오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 붕어빵 장수들이 거리에 나오기 시작하면 그 아이는 무척 좋아했다. 공부방에 올 때마다 붕어빵을 한 봉지 사 들고 왔다. 공부방 선생님들은 영주가 건네는 따끈따끈한 붕어빵 한 마리를 나눠 먹곤 했다. 쌍꺼풀이 예쁜 중학생 영주는 공부방에서 ‘농땡이’로 통했다. 매사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삐딱선을 타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조마조마한 소녀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실업계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기어코 가출을 해버렸다.

(사진출처 cafe.daum.net/dc9dc9)
거리에 붕어빵이 보이기 시작하면 소식이 끊긴 영주가 생각났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영주였다. 7년 만이었다. “선생님 저 다리가 너무 아파요. 꼼짝할 수가 없는데 좀 도와주세요.”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볼 틈도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기진맥진했다. 온몸이 아프다니 근골격근계 질환일 거라는 짐작으로 진통제와 파스를 챙겼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 길을 나섰다. 예감은 적중했다. 어두컴컴한 골목을 지나 검은 비닐로 선팅을 한 가게들 가운데서 영주가 일러준 가게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방이 거울로 장식된 거실을 지나서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서자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있는 젊은 여자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온몸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영주였다. 7년이 지났지만 굵고 깊은 쌍꺼풀이 틀림없는 그 아이였다.

붉은 조명아래 누운 그녀를 보자 앙가슴을 후벼내는 아픔이 심장을 짓눌렀다.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화가 나고 슬펐다. 그녀를 일으켜서 약을 먹이고 물수건으로 젖은 몸을 닦아주고 어깨와 다리를 풀어주고 파스를 붙여주었다. 푹 쉬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집을 나오는 나의 발에 큰 쇠붙이가 달린 듯했다.

영주의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느라 항상 집을 비웠다. 영주가 어떻게 사춘기를 지내는지 도통 무관심했다. 새엄마와의 갈등, 이복형제들과의 싸움이 영주를 밖으로 내몰았다. 이제 와서 과거를 탓한들 무슨 소용이랴. 힘들게 일을 한 날에는 여지없이 온몸의 관절이 전부 아프고 열이 심하게 난다고 해서 병원에 가서 본격적인 검사를 받고 제대로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젊은 애가 체력이 떨어져서 쉬는 날이 더 많아요.” 영주가 주방이모라고 부르는 아주머니가 옆에서 거든다.

내가 모르는 사이 영주의 병은 깊어 갔다. 건조하고 싸늘한 바람이 거리를 채우던 초겨울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달려가 보니 무릎은 엄청나게 부어 있었고 온 몸은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끙끙거리는 그녀를 잡아 일으켜 병원으로 갔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이었다. 난치병이지만 젊었으니 관리를 잘하면 회복된다고 했다. 의사는 무슨 일을 하기에 몸을 이렇게까지 망가지도록 방치했느냐고 나무라는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약물과 물리치료 덕분에 영주는 꾸준히 회복되어갔다. 병원에 다녀올 때마다 그녀는 붕어빵 한 봉지를 사서 내가 일하는 무료 진료소에 왔다. 정작 본인은 먹지도 않고 말이다. 어린 시절 새엄마가 밥을 주지 않아서 배가 고플 때마다 용돈을 쪼개서 붕어빵으로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냄새도 맡기 싫다고. 그래도 붕어빵 냄새만 나면 자신도 모르게 발이 끌린다고 했다.

어느 날 영주는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자기의 과거를 이해해주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해서 나도 기뻤다. 그날도 붕어빵 한 봉지를 사 들고. 나는 지금도 4년 전 그날 영주가 준 붕어빵 4마리를 은박지로 곱게 싸서 우리 집 냉장고의 냉동실에 보관하고 있다. 차가운 냉동실에서 붕어빵 가족이 서로 꽉 껴안고 추위를 견디는 것처럼 그녀도 가정을 이루고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그런지 영주는 아들딸 낳고 잘살고 있다.

올겨울도 제철을 만난 붕어빵들이 유유히 빙판길을 헤엄치고 있다. 사람들의 빈속을 채워주려고 있는 힘을 다해 지느러미를 놀린다. 천 원어치 한 봉지로 공복과 한기에 몰린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기 위해 붕어빵들은 혹한이 몰아치는 거리에 인적이 끊어져도 떼를 지어 거리를 헤엄친다. 동네 빵집이 널려 있지만 갓 구워낸 붕어빵의 달짝지근한 팥 앙금과 구수한 속살 때문에 요즘도 나는 영주처럼 공부방 아이들에게 붕어빵을 안겨준다. 가슴이 허전하고 삭막한 겨울에 선 이 아이들에게 붕어빵은 살가운 주전부리가 되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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