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엊그제 목요일에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앞에서 있었던
밀양할머니들 단식농성을 응원하는 문화제에 다녀왔다.
요즘 농성촌에는 송전탑 문제하고 전혀 상관 없는 강정이나 용산, 쌍용차 등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이슈로 농성하는 사람들이 연대해 지원해준다.
그것도 아주 뜨겁고 열렬하게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끼리 그 아픔과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어느 대학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동안 유행한 적이 있었다.
나는 아직 책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굳이 정의에 대해 정의내려야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억울한 자가 없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 되어야 한다면?
내가 소수이며 누군가 내게 자청하지 않은 희생을 강요한다면?
생각만 해도 무섭다.
한전 옆 마천루, 무역센터의 휘황한 불을 밝히기 위해
밀양의 노인네들은 원치 않는 송전탑 아래에서 살아야 할까?
그것은 아흔아홉 개를 가진 부자의 완성을 위해 가난한 자의 한 개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구부정한 허리로 송전탑 백지화하라는 피켓을 든 할머니와
일별조차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바삐 가는 도시의 사람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그대로 상징하는 이마쥬

쐐기를 박는다는 말이 있다.
거대한 바위를 조각낼 때,
조그만 구멍을 내고 거기에 V자형의 나무막대기를 박아 놓고 물을 부으면
그 나무가 팽창하면서 육중하고 단단한 바위가 쪼개진다고 한다.
할머니들을 보면서 언뜻 그런 쐐기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전기로 유지되는 문명
일견 화려해 보이지만 블랙아웃이 되는 순간 극심한 혼돈에 빠져버리는 허약한 문명
무성하게 번식하는 균류처럼 지칠 줄 모르고 번성하는 탐욕에
이제는 쐐기를 박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날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줄을 서서 할머니들을 안아드렸는데
덕촌댁 할머니라는 분을 안으면서 속으로만 말했다.
"덕촌댁할머니! 안으니까 참 좋아요"
그 시간이 마치 영원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고작 그뿐이지만
이 우주, 억겁의 시간에서 진화의 한 순간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그것은 생명을 지향하는 일이니까...

문화제에서 '지금여기'의 정현진 기자도 만났는데
행사가 끝나자 또 취재를 가야한다며 자리를 총총 떴다.
"정현진 기자님! 수고가 많으시네요. 언제 밥 한 번 먹어요."
 

   
 
윤병우(화가). 전공은 국문학이지만 20여년 동안 그림을 그려왔다 .
4대강답사를 처음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탈핵,송전탑, 비정규직,정신대할머니 등 사회적인 이슈가 있는 현장을 다니며 느낀 것과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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