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도시에서 살다 살다 일이 영 안 풀리면 하는 소리들이 있다.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그렇게 말하는 이들 중 실제로 내려가는 사람은 거의 못 봤다. 농사는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며 농촌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대단히 철저한 준비와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누구나 맨손으로도 할 수 있는 일처럼 ‘쉽게’ 생각하곤 한다. 더 문제는 농촌을 현실적인 거주지로서가 아니라, 일종의 이상향(理想鄕)으로 막연하게 꿈꾸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른바 ‘전원 드라마’가 명맥을 유지하는 게 방송 현실이다.

일요일 아침 9시 KBS 1TV에서 방영하는 <산 너머 남촌에는 2>는 이런 목적에 부합하는 ‘전원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2007년 10월부터 2012년 2월까지 211회 방영된 <산 너머 남촌에는>의 시즌 2다. 애초 이 제목의 드라마가 보여주려던 기획의도는 “농촌의 꿈과 현실/ 농촌의 사계절/ 도시에서 농촌으로 온 사람들, 외국에서 농촌으로 온 사람들... 그들이 하나 되는 이야기” 였다. 사실 이렇게만 된다면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의도 자체가 관념적이다. 마치 모든 이야기가 가능할 듯이 보이지만, 실상 제작진 입장에서는 매회 마땅한 소재를 찾느라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폭 자체가 한정돼 있다. 보여줄 수 있는 것,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서 <산 너머 남촌에는 1>은 ‘반농 반샐러리’ 형태로 절충을 시도했다. 기존 농촌드라마와의 차별성이다. 한국 농촌 드라마의 전범인 <전원일기>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식의 포맷을 따르지 않았다. 도시와 유리된 독립적이고 자생적인 세계가 아니고, 도시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 등장인물들을 그리고 있다. 처음부터 그 마을에 뿌리박고 산 사람들이 아니라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공동체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배경 또한 농촌이지만 벼농사가 아니라 과수원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 아니다. 타지에서 모여들었지만 서로 이웃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도, 소도시와 과히 다르지 않다. 전통 장맛을 지키며 상품화에도 성공한 한길선 여사(반효정 분) 댁 종갓집이 마을의 ‘어른’ 명맥을 유지하긴 하지만, <전원일기>의 김 회장 댁처럼 대표성을 띠진 않았다.

전원드라마, 사상누각(沙上樓閣)인가?

그런데 이젠 장르가 돼버리다시피 한 ‘전원’이라는 개념부터가 우리나라 농촌이 아니고, 서구 문물 유입의 결과다. ‘분재’처럼 인공 정원처럼 인위적인 개념이다. 도시인들이 꿈에 그리는 ‘휴양지’ 개념이다. 어쨌든 <산 너머 남촌에는>은 그런 식의 ‘전원’ 개념에는 잘 맞아떨어졌다. 21세기에도 가능한 농촌드라마의 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어차피 현실에 존재할 법한 마을이 아니며, ‘전원’에 대해 도시 시청자가 기대하는 상상과 부합하면 된다.

문제는 이런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향수’지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의 고단함과 실제 농촌의 고민이나 팍팍함을 다루면 다들 고개를 돌릴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향수’에 기대면 비현실적이라고 외면하기 일쑤다. 포맷 자체가 딜레마다.

실상 <산 너머 남촌에는>은 시즌 1이나 시즌 2나, 이제는 농촌에 살거나 농촌에 기반을 전혀 두지 않으면서도 농촌적인 정서를 가끔 맛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을 위한 드라마다. 김동환의 시와 박재란의 노래 ‘산 너머 남촌에는’ 을 접하며 자란 세대를 위한 작품이다. 도시의 삶은 각박하지만, ‘남촌’에서는 왠지 동구 밖까지 나와 반겨주는 이들이 막연히 존재할 것 같은 환상의 대리물로서다. 한정된 공간과 인물과 소재 빈곤 속에서도 휴먼 드라마를 이끌어온 제작진의 고충도, ‘과거 정서’를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농촌의 현실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이중의 딜레마에 있다. 대체 ‘전원드라마’는 어떻게 써야 하는 장르인가? 어차피 ‘전원’ 자체가 환상이고, 이 드라마의 마을 또한 환상인 것을!

예를 들어 시즌1에서 봉순호(배도환 분)와 베트남에서 온 신부 하이옌이 사는 모습은 보기에는 아름다웠다. 소소한 개연성도 있었다. 문제는 하이옌에 대한 우리 식의 일방적 관점이다. 리얼리티로 따지자면 <러브 인 아시아>만도 못했다. 어쨌든 베트남 며느리를 한국인 입장에서만 들여다보아서는 곤란하다. 그들끼리의 연대나 속내는 없고, 한국인에게 관찰당하는 입장이 많다.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남자 순호가 무골호인이기만 한 것도 현실적이진 못했다. 이런 부부관계는 시즌2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시즌2의 중심 역할인 철수(김찬우 분)와 영희(우희진 분) 부부의 관계에서 철수는 그저 사람 좋은 무골호인, 영희는 악착같고 일복만 터진 또순이다. 남편은 그저 허허거리고, 아내는 친정과 시댁 챙기는 고단한 일상도 모자라 (부족한 생활비를 위해)읍내에서 편의점 알바까지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람이나, 가족공동체 속에서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장남’이라는 도식을 되풀이한다.

농촌은 여전히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공동체?

그런데 2012년 5월부터 방영된 <산 너머 남촌에는 2>는 설정이 여태까지의 농촌드라마와는 달랐다. 첫 회부터가 '니들이 시골을 알아?'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했다. 사실 드라마 속의 시골은 셋 중 하나다. 시골의 실제 모습을 담거나, 시골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상향, 혹은 시골은 이럴 것이라는 우리가 익히 드라마 속에서 봐왔던 모습의 재현이다. <산 너머 남촌에는 2>는 첫 번째 길을 가기로 독하게 마음먹은 듯했다.

만날 시댁으로 친정으로 정신없이 오가는 영희를 드라마의 축으로 삼아 삶의 고단함을 최대한 보여주었다. 친정, 시댁, 제집, 편의점 알바, 친정 우사도 청소하고 소들 여물도 주고... 대체 사람이 저렇게 살 수는 있는 건가 싶은 빠듯함이었다. 영희는 바빠도 너무 바쁘다. 시골에서는 ‘좀 여유 있게 좀 사람답게 오순도순’ 살 수 있을 것이란 바람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도시 주부들보다 열 배는 더 바빠 보인다. 잠잘 시간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시청자는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무도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사는 데 지친 영희는 낙향하겠다는 오빠에게도 직격탄을 날린다. "오빠 미쳤구나. 시골의 ‘시’자도 모르는 사람이 이런 시골에서 뭐해서 먹고 살려고?"

영희는 이런 노고에도 보람이라곤 전혀 못 느낀다. ‘딸’로 태어난 것도 죄, “김철수한테 누가 시집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제 발로 들어와 맏며느리 된 것도 죄, 그저 다  팔자소관인 것만 같다. 보고 있노라면 반문하고 싶어진다. 농촌은 결국 낙후된 ‘관계’의 문제라는 게 제작진의 의도인가? 정말 그렇다면 <전원일기> 때보다도 못한 퇴보가 아닌가? (세상에 다시없을) 남존여비에 찌들어 딸보다 아들, 친정보다 시댁 우선으로 돌아가는 어떤 가부장적 상상의 공동체가 ‘남촌’이란 말인가?

게다가 도시인의 낙향 방식도 심각했다. 원래 터 잡고 살던 이들을 내쫓고 자본력으로 잠식해 들어와 마을 공동체를 깨는 생활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사돈댁이 이미 세탁소를 하고 있는데 거기다 세탁소 차릴 생각을 한 친정 오빠, 결국 접긴 했지만 애초 이런 갈등을 창조한 것 자체가 너무나 답답하다. 게다가 농촌을 잠식해 들어오는 자본력의 실체는 가린 채, 소시민들의 생계수단 정도로 ‘동네 상권’ 정도로 표현한 것도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몇몇 사람의 먹고 살겠다는 이기심이 ‘남촌’을 피폐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정말?

농촌의 진짜 현실 - 자본의 무차별 잠식

물론 안다. 이런 세상에서 전원 드라마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대다수의 삶이 도시화되고 자본에 휘둘리고 파편화됐는데, 그것을 모두 극복한 어떤 마을공동체가 있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드라마는 얼마나 SF에 가까운 상상력을 요구하는지 안다. 그것도 이웃끼리의 정(情) 하나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니!

우리가 그리워하는 세상과 실제로 사는 세상이 조화롭게 이어져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산 너머 남촌에는2>는 맡았다. 기대와 괴리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구조다. 젊은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사는 게 힘들고, 어른들은 어른 대접에 조금만 소홀해도 (비현실적으로)노여워하신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기보다는 역할놀이 수행하느라 바쁘다.

도시와 농촌이라는 이분법이 엄존하는 한, 이런 (익숙한)설정의 드라마 밖에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도시의 현실과 농촌의 현실 모두에 대해 명확한 인식 없이는, 극단적인 갈등과 푸닥거리의 에피소드만 매회 반복될 것이다. 어차피 전원 드라마가 가상현실이라면, 존재하지는 않더라도 대안적으로 지향할 수 있는 농촌의 모습을 보고 싶다. 도시와의 끈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면서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는 그런 농촌의 모습 말이다.

두물머리에서 그런 살아있는 농촌을 보았다고 생각했으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농사보다 공사’가 더 돈이 된다고 믿는 어쩌면 ‘농사혐오증’에 걸린 듯한 정부가 이끄는 곳이다. 서글픈 일이다. 기댈 ‘고향’ 하나 없어서 드라마 속에서라도 마음의 고향을 만들고 싶은 시청자들은 그래서 더욱 <산 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이름의 드라마가 정겹다. 공존공생에 대한 아주 작은 방향성이라도 제시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장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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