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선교 일기 - 이윤주 수녀]

다른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곳의 고유한 음식일 것이다. 어디를 가든 가는 곳마다 다양한 음식을 쉽게 만나게 되는데, 낯설면서도 새로운 현지 음식들을 맛보고 즐기는 것이 여행의 큰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눈과 입, 마음까지 즐겁게해주는 여행지의 음식

그러나 정작 새로운 음식들을 맛보면서도 그 음식들이 어떤 문화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이야기들을 가진 음식들인지 그것까지 알지는 못하는 때가 많다. 특히나 우리가 그 곳에 터를 잡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여행자일 뿐이라면, 그 음식 안에 살아 있는 역사와 문화를 보지 못하고 그저 새로운 음식을 한 번 맛보는데서 끝나게 된다. 마치, 한국 문화에서 김치가 가지는 의미와 역사를 우리들은 이해하지만, 그저 한국을 잠시 들렀다 지나는 외국인들은 매운맛이 나는 저린 배추인 김치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풍요로운 한국 역사 안에 살아있는 김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곳 볼리비아에서 선교사로 살면서 볼리비아의 문화와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다양한 음식들을 즐기며 그 안에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배운다. 한국과는 지구 정 반대편에 있는 나라, 거리가 먼만큼 문화가 다르니 음식도 다르다. 색다르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한 음식들이 나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해 줄 뿐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있는 문화와 역사를 듣고 배우며 나의 마음까지 풍요로워짐을 느낀다.

▲ 키누아(왼쪽) ⓒ이윤주, 키누아로 만든 음식(사진= 미, 위키미디어 커먼스)

볼리비아의 고유한 음식을 소개하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키누아(Quinua 또는Quinoa)와 추뇨(Chuño)를 꼽겠다. 키누아는 볼리비아의 여러 가지 요리에 다양하게 이용되는 곡물 재료인데, 이 키누아가 역사적 ·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고대 잉카인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래로 그들의 문명 안에서 신성한 음식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곡물의 독특한 특질 때문이기도 하다. 남미 서부의 대산맥인 안데스 산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발 5천 미터 이상의 높은 고도에서 살고 있는데 강추위와 가뭄이 계속되는 혹독한 날씨 탓에 여느 농작물의 재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잘 자라주는 거의 유일한 곡물인 키누아가 안데스 산지인들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들에게 질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주식이라는 점에서도 키누아의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안데스 산맥의 삶이 묻어나는 키누아와 추뇨를 맛보며

키누아는 좁쌀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주로 국을 끓일 때 넣거나 아니면 밥처럼 지어 야채와 함께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과자나 빵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곡물이 아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키누아는 단백질의 완전 공급원이라 불릴 만큼 단백질을 비롯한 다른 영양소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글루텐이 없어 음식물 섭취에 제한이 있는 사람들도 걱정 없이 그 맛도 즐기며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는 천연 건강 음식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멋진 완전식품을 하느님께 선물 받은 이 땅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그 땅에 살며 그 선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한지, 나는 날마다 감사하며 키누아를 즐겨 먹고 있다.

안데스 산지인들의 또 다른 주식은 추뇨인데 이것 역시 고산지대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음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살아내기가 녹녹치 않았던 자연 환경 속에서 원주민들이 음식을 저장하고 보존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고, 그 방법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바로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이 추뇨라는 것이다. 추뇨는 특별한 방법으로 저장 보관된 감자다. 특정한 종류의 감자를 골라, 밤에는 고산지대의 강추위 속에 얼리고, 낮에는 타들어가는 강한 태양볕 아래 건조시키기를 5일간 반복하여 감자 속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면 감자를 상하지 않게 오래 저장할 수 있게 된다. 농작물 재배가 불가능한 겨울철에 산속에 사는 원주민들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 추뇨인 것이다. 감자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의 추뇨가 있으며 그 맛도 조금씩 다르다. 물론 조리방법도 다양하다.

▲ 추뇨(왼쪽) ⓒ이윤주, 추뇨로 만든 음식(사진= 크리스티안 오르데네스, 위키미디어 커먼스)

나는 추뇨를 먹으며 이곳 볼리비아 사람들, 특히 고산지대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에 이 음식이 어떤 의미인가를 늘 생각한다. 그들에게 추뇨는 단순히 음식이 아니다. 혹독한 계절에 한 끼 음식이라도 먹느냐 못 먹느냐의 문제이며, 그것은 그 고된 계절을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음식을 통해 나는 볼리비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방식까지도 조금 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로 살면서, 내가 발을 들일 수 있도록 너그럽게 받아준 이 땅의 문화를 배우고 그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이렇게 작고 사소할지도 모르는 일상의 경험들을 통해 볼리비아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 나는 말할 수 없이 즐겁다. 그러면서 맛있는 음식까지 즐길 수 있으니 그 즐거움은 몇 배가 되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언제고 낯선 곳을 여행하며 그곳의 음식을 맛보게 될 때, 그 안에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그 의미를 기억해 보기를 바란다. 음식과 문화가 얼마나 놀랍도록 아름답게 서로 엮어져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재미있는 경험일 테니 말이다. 마침 2013은 UN이 정한 ‘세계 키누아의 해’이니 키누아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 그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이윤주 수녀 (메리놀 수녀회, 볼리비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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