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파노라마 -3]

막막한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며 북회귀선(北回歸線)이 지나가는 하늘 위로, 그 어느 곳에서도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처럼 불쑥 솟구쳐 오른 정오의 태양이 나세르 호수의 심장부위를 향해 정확히 돌격하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목소리가 있었다.

“어떤 시간에는 들판이 햇빛 때문에 캄캄해진다. 두 눈으로 그 무언가를 보려고 애쓰지만 눈에 잡히는 것이란, 속눈썹 가에 매달려 떨리는 빛과 색채의 작은 덩어리일 뿐이다. 엄청난 열기 속에서 향초들의 육감적인 냄새가 목을 긁고 숨을 컥컥 막는다.”

누구의 목소리였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바로 알베르 카뮈의 음성이었다. 알제리에서의 추억을 담은 카뮈의 산문집에 나오는 글이, 갑자기 왜 이 낯선 곳에서 연상되는 것일까. 수면 위로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는 직사광선은, 카뮈가 들려주는 알제리 풍경처럼 너무나도 강렬한 햇빛 때문에 오히려 주변을 캄캄하게 만드는, 기묘한 역설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눈이 부시다 못해, 눈까풀을 제대로 치켜뜰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인가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보았으나, 작열하는 태양아래 전라(全裸)의 모습을 고스란히 노출하고 있는 거대한 신전의 모습은, 그다지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래서 미니버스를 함께 타고 온 일행들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말하고는, 철조망이 견고하게 둘러쳐진 페리 호 선착장 옆의 모랫더미에 털썩 주저앉아, 아예 방금 시야에 들어왔던 무미건조한 신전의 이미지를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눈을 감고 앉아 명상을 하노라니, 이윽고 내 마음의 수평선 저 너머로부터 서서히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그것은, 어제 오후 아스완 누비아 박물관(Nubia Museum)에서 잠시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온 아부심벨 신전의 이전(移轉) 모형이었다. 마치 클로드 드뷔시의 피아노곡에 등장하는 달빛선율이 은은히 들려오는 것만 같은 희미한 조명등 아래서 마주친 모형 신전의 모습은, 사물의 실제풍경보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이미지를 더욱 중요시하는 나의 글쓰기 작업에는, 오히려 압권이었다.

▲ 측면에서 바라본 아부심벨 대신전 전경. ⓒ수해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280㎞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아부심벨은, 수단과의 국경에 자리하고 있는 이집트 최남단 도시이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 3대 왕이었던 람세스 2세(Ramses Ⅱ, BC 1279년 ~ BC 1213년 재위)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은, 주로 소수민족인 누비아인들이 살고 있다. 누비아라는 지명의 어원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 지방 사람들의 얼굴이 검다고 해서 놉(Nob, 노예)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한다.

일반적으로 람세스 2세가 나일 강 상류 서쪽에 천연 사암층(沙岩層)을 뚫어서 건립한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은, 람세스 2세가 태양신 라 호르아크티(Re-Horakhty)와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Hathor)에게 바치기 위해 건립한 신전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자기현시욕이 유난히 강했던 람세스 2세가 자기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건축한 신전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파라오(Pharaoh, 고대 이집트 최고 통치자)로 평가받는 람세스 2세는 여러 차례의 해외원정을 통해, 이집트 영토를 누비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시리아까지 확장시켜나갔다. 전통적으로 이집트인들은 아스완까지를 이집트의 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람세스 2세는 수차례의 정복전쟁을 통해 이 곳 누비아 땅까지 장악함으로써, 이집트의 영향이 이곳까지 미치고 있음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여기에 이런 거대한 신전을 건립해 놓았다. 당시 누비아는 이집트 금(金)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때문에 람세스 2세는 기회만 있으면 이집트 영토를 침범하거나 이집트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누비아인들에게 이집트의 막강한 힘을 과시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아부심벨 대신전 외벽기단에 누비아인으로 보이는 전쟁 포로들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새겨놓았다.

▲ 아부심벨 대신전 외벽기단을 장식하고 있는 전쟁포로들의 부조(浮彫). ⓒ수해

태양신을 숭배했던 람세스 2세는 해가 떠오르는 정 동쪽을 향해 신전을 지었는데, 신비하게도 1년에 두 차례 람세스 2세의 생일날인 2월 22일과 대관식날인 10월 22일(혹은 춘분과 추분이라는 설도 있음)이 되면, 떠오르는 태양빛이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지성소(至聖所) 제단까지 비춰들도록 설계해 놓았다. 지성소 안에는 신격화된 람세스 2세의 석상과 함께 테베(Thebes)의 태양신 아몬-라(Amon-Ra),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태양신 라-호르아크티, 멤피스(Memphis)의 어둠과 창조의 신 프타(Ptah)상이 나란히 앉아있는데, 묘하게도 어둠의 신상에만은 태양빛이 전혀 비치지 않는다.

작열하며 내리쬐는 태양의 시위가 한풀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한동안 선착장 주변의 모랫더미에 앉아 명상을 하다가 일어나보니, 신전을 찾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조금씩 뜸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신전 내부에 들어가서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시도하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지진으로 파괴된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두(石頭)와 모가지가 처참하게 떨어져나간 호루스(Horus, 고대 이집트신화에 등장하는 매의 머리를 가진 태양신)와 하토르 여신상들이 도열해 있는 대신전을 지나 소신전 쪽으로 걸어 나갔다.

▲ 상처입은 호루스신과 하토르여신상. ⓒ수해

대신전에서 약 50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소신전은, 생전에 람세스 2세로부터 극진한 총애를 받았던 왕비 네페르타리를 기리기 위해 세운 신전인데, 가까이 다가가 보자 당장 절벽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올 것만 같은 여섯 개의 입상(立像)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통적으로 고대 이집트 건축에서 왕비의 석상은 파라오의 무릎아래 크기로 세워졌으나, 이 신전에서는 일반적인 통념을 깨고 4기의 람세스 2세 석상과 2기의 네페르타리 석상이 똑같은 크기로 제작되어 있었다.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에게 헌정함으로써, 그가 사랑했던 여인 네페르타리가 이집트 백성들의 뇌리 속에서 영원히 하토르 여신처럼 추앙받기를 염원했던 람세스 2세의 마음이 구석구석 세심하게 담겨있는 신전 내부의 벽화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자, 아까부터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넣고 망연히 나세르 호수를 바라보고 서 있던 어느 화공의 뒷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소신전 오른쪽으로 나 있는 비탈길섶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잠시 붓놀림을 멈추고, 나세르 호수 너머로 점점이 떠 있는 수단의 작은 섬들을 하염없이 응시하고 있던 누비아 화공은, 이윽고 나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아부심벨 대신전 내부를 관람하고 난 소감이 어떠냐고. 그래서 “아직 신전 내부에 들어가 보지 않았다”라고 대답하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느냐고 재차 물어왔다.

“실은 대신전 내부의 카데시(Kadesh)전투 장면이 그려진 벽화 시리즈와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는 4기의 신상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곳곳에서 사진촬영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감시요원들을 설득하려면 아무래도 사람들의 발길이 좀 뜸해진 시간이 좋을 것 같아서, 적당한 시간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그러자, 때때로 머리에 두르고 있던 낡은 수건자락으로 발갛게 충혈 된 동공(瞳孔) 가득히 고인 눈물을 훔치면서, 누비아의 화공은 나에게 말했다. 잠시 후, 신전내부를 관리하고 있는 그의 친구에게 부탁해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노라고.

▲ 누비아 화공이 그린 람세스 2세 초상과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 ⓒ수해

이집트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고대유적의 상징물인 아부심벨 신전은, 한때 아스완 하이댐 건설에 따라 수몰위기에 놓이게 되었으나,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헌신적인 노력과 현대공학의 혜택으로, 신전을 구성하는 바위를 20∼30톤 무게의 블록으로 톱질하여, 절단한 조각의 각 면을 교묘하게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원래의 위치보다 65m 높은 곳으로 이전하여 영구히 보존하게 되었다.

군데군데, 신전을 이전할 때 생긴 절단면들을 교묘하게 연결하고 있는 이음선 자국이 육안(肉眼)으로도 선명하게 감지되는 인공암산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대신전 내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들려주는 누비아 화공의 사연은 슬펐다. 현재 나일 강 북부 연안에 자리하고 있는 고도(古都) 멤피스(Memphis)에 살고 있다고 하는 누비아 화공은, 아스완 하이 댐 건설로 인하여 이 지역 일대가 광범위하게 침수 되었을 때, 누비아 사막 남쪽 끝 아트바라 강변의 에티오피아 국경에 가까운 농경지로 집단이주해간 그의 가족들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었는데, 지금까지도 서로의 행방을 확인할 길이 묘연하다고 말했다.

 
 
수해 (기행문학가)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명상사원과 문화유적지를 순례하다가, 동국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지은 책으로 시집《산 두고 가는 산》과 동아시아 기행 에세이《예정된 우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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