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17]

며칠째 눈이 내리고 있다. 그쳤다가 내렸다가, 잠깐 그쳤다가 또 내렸다가…. 온 세상은 벌써 하얗게 뒤덮여 날씨와는 상관없이 따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눈은 차가운데 왜 이다지도 따스해 보이는 걸까? 더러운 곳이나 깨끗한 곳 가리지 않고 어디나 덮어주는 포근함 때문일까? 그 따스함을 바라보며 내 안의 매서운 추위를 부끄럽게 바라본다.

최근 들어 옆집에 사는 선동 어르신 댁과 사이가 불편해졌다. 전부터 가깝게 지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주치면 인사라도 하고 지냈는데, 이제 오고가며 마주쳐도 못 본 척 지나치게 된다. 선동 어르신 댁에서 축사를 짓겠다며 도장을 받으러 다녔는데, 마을에서 우리 집만 도장을 안 찍어 준 까닭이다.

▲ 구 신학교, 2009 ⓒ박홍기

애초에 이사할 곳을 찾을 때부터 대형 축사 없는 데를 1순위로 골라 이곳까지 왔으니 우리 입장에서는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어르신 입장에서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감히 반대 의견을 내 놓는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우리 신랑이 도장을 안 찍어주겠다고 얘기를 하자마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장을 안 찍어준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 찍었는데 이 집 한 집만 반대를 한다 이거여? 그런다고 누가 축사 못 지을 줄 알고? 두고 봐. 그런 일은 없으니께.”

그렇게 말하며 돌아서는 어르신의 싸늘한 뒷모습을 보며 내 가슴은 쿵쿵쿵 뛰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였다. 전부터 그 어르신 댁에서 축사를 크게 지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빨리 그 일이 닥칠 줄이야. 게다가 축사를 짓더라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지을 줄로 알았지, 그 댁 집 앞에 있는 논에(그러니까 마을 초입에서 백 미터 남짓 떨어져 있는 곳에) 지을 줄은 몰랐다. 대형 축사가 하나 생기면 냄새며 파리가 말도 못하는데, 또 마을 경관도 흉해지고 냇물도 더럽혀질 게 뻔한데, 마을 입구에 떡 하니 축사 지을 생각을 하다니! 게다가 마을 사람들이 너무 쉽게 도장을 찍어 주었다는 사실 또한 놀랍고 황당했다.

평소 선동 어르신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원성이 높다. 그 옛날 놀부가 친구 하자고 할 만큼 심술과 욕심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가물 때 남의 논에서 물을 빼가는 건 예사요, 함부로 사람을 부리고, 교묘하게 말을 바꾸고, 마을 소유의 통장이나 회관 앞으로 나오는 부식도 자기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눈에 보이게 사이가 안 좋은 집이 둘이나 되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그 어르신의 만행을 들추며 수군거리고는 한다. 그런데 어떻게, 군소리 없이 도장을 찍어 줄 수 있을까.

평소 선동 어르신 댁과 사이가 안 좋은 한 분에게 여쭤보았다.

“도장 찍어 주셨다면서요? 왜 찍어 주셨어요?”
“옆집 양반이 찍어 주기에 나도 찍어줬지. 이 집처럼 안 찍어줘야 하는디. 잘했어. 축사 생기믄 뭐 좋을 거 있다고. 나도 안 찍어줄 건디 그랬어.”

대부분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남이 찍어주니까, 동네 사람인데 안 찍어줄 수가 없으니까, 크게 괘념치 않고 그냥 찍어주신 것 같다. 이것도 공동체 의식인 걸까? 우리가 아직 마을 정서에 익숙하지 않아서 감히 반대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 정말 헷갈리고 답답하다.

그나저나 문제는 우리가 반대 의견을 낸 것이 축사 허가를 받는 데 별다른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 상식으로는 한 집이라도 반대를 하면 허가가 안 떨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군청에 물어봤더니 큰 상관은 없다고 하지 뭔가. 이럴 수가!

하기야 대형 축사 짓겠다고 하면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등 여러 가지로 혜택을 주며 장려를 하는 판이니 정부에 뭘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정책 자체가 대농과 거대 축산업자를 위해 존재하는데, 그 앞에서 마을 주민들의 환경권을 내세우며 목소리를 낸다 한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한 목소리를 낸다면 결과가 또 달라지겠지만, 그것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분들은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쓸쓸한 노후를 달래는 일만으로도 벅찬 분들이니까.

그와 같은 현실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기에 더욱 막막하고 외로운 심정이다. 이게 어디 우리 집과 선동 어르신 댁 사이만의 문제겠는가. 또, 단지 우리 마을에만 벌어지는 일이겠는가. 뭔가 큰일을 도모하지 않으면, 그나마 소라도 키우지 않으면 돈을 만져보기 힘든 시골 생활의 현실이 꽉 막힌 담장처럼 놓여 있는 이상, 어디에나 흔히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그늘은 이렇듯 생태계를 파괴하고, 이웃과 이웃 사이를 떨어뜨려 놓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추위보다 매서운 현실이다.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