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우연히 개봉 직후 보게 되었다. 낮 시간이라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흥행해 하나의 ‘현상’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었다. 예고된 흥행대작 <브레이킹 던>을 꺾고 신기록을 수립 중인 영화 <늑대소년> 얘기다. 워낙 예쁜 작품이라 보는 동안 즐거웠으며, 극장을 나선 후 자꾸 송중기와 박보영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는 했다. 순정(純情) 그 자체였던 소년과 소녀의 한 시절, 그들은 참 아름다웠다. 눈사람이 된 그 소년은 어떤 영원성마저 간직한 ‘진심’을 보여주었다.

 
진지하게 다시 생각 중이다. 지금 <늑대소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을 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작진도 미처 다 예상 못했을 어떤 매력이 이 겨울 사람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여자들이 좋아할 순애보라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이런 식의 (뻔한) 멜로가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운지는 숱한 역대 참패작들이 증명하고도 남는다.

순정이란 무엇일까. 끝끝내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은 늑대소년 철수(송중기 분)의 영원한 젊음은, 그 만화 같은 설정에도 불구하고 왜 관객을 울릴까. 세상과 시류와 타협하며 살아온 ‘나이 든’ 순이(이영란 분)의 눈물은 그래서 이 소년의 청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자기만의 언어를 지켜낸 늑대소년

소년은 인간의 말을 배우지 못했다. 어쩌면 유전자의 상당 부분이 인간이 아닐지도 모를 그의 행태는 늑대에 더 가까웠다. 뒤늦게 인간의 언어를 배우긴 했으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구사할 수 있는 단어도 대체로 세 음절을 넘지 못한다. 기다려, 가지 마, 등등이 명대사인 이유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 언어의 세계를 철수만큼 곧이곧대로 체득한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글자 그대로의 뜻대로 반응했다. 철저히, 온 힘을 다해. 기다리라면 기다리고, 가라면 갔다. 아무리 참기 어려워도 배운 대로 했다. 사랑하는 마음이 견디게 했다. 순이도 관객도 말미에 아연실색했던 그 오랜 기다림의 힘은 실상 늑대소년 철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인간들의 말은 속뜻과 겉뜻이 달랐다. 그러나 늑대소년은 거기에 물들지 않았다. 글자 그대로를 믿고 행한 그의 믿음은 결국 세월을 이기고 넘어섰다. 본인에게는 그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일과를 살아낸 평범한 하루였을 것이다, 우리가 2012년 겨울 그를 발견하고 경악하고 감동한 그 날도.

언어가 본뜻대로 쓰이지 못할 때, 세상은 혼돈 그 자체가 된다. 그래서 언어의 세계는 투명해야 한다. 몇몇 사람의 이익을 위해 절대다수를 속이는 일에 쓰여서는 안 된다. 넘치는 말들이 혼란을 부추기는 요즘, 자신만의 언어에 충실한 자를 보는 일은 그래서 낯설기까지 한 감동을 준다.

진심이 그대로 투영되는 눈빛, 굴절 없는 오롯한 언어,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발적 복종의 몸짓, 아마 사람에게서 나온 것 중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찾기 어렵지 않을까.

 
 
김원 (로사, 문화평론가)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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