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하는 신학 - 이미영]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두고 거듭되던 논쟁도 일단락되고 대통령 후보 등록이 완료되었으니, 본격적으로 각 후보의 정책을 비교해 살펴보며 내가 뽑아야 할 후보를 선별해야 할 때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후보 선택 도우미>라는 프로그램이 있어,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에 대해 각 후보의 정책을 명확히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박근혜-문재인 두 유력 후보의 정책만 비교할 수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응답해 보면서 나의 정치적 기대와 지향이 어떠한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도 되어 인상적이었다.

15개 사회 현안에 대한 선택 최종 결과에는 나와 잘 맞는 후보에 대한 응답 비율과 더불어, 각 후보의 지지자들이 우선으로 선택한 주제가 제시되어 있었다. 결과 그래프를 살펴보니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안보문제’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주로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 (그림 / 포털 사이트 다음 '제18대 대통령 선거 후보선택 도우미 사이트' 화면 갈무리)

문득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우선 관심 주제가 교회 내 생명정의평화 운동을 하는 이들이 가장 첨예하게 생각하는 주제들과 상당히 겹친다는 것이 눈에 띈다. 평화로운 남북 관계 지향, 사형제 폐지, 원전 건설 반대, 제주 해군기지 갈등 평화적 해결 등 교회의 생명정의평화 운동에서 주로 관심을 두는 이슈는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의 우선 관심사와 대부분 겹치는 주제이다.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에서는 첨예하게 부딪치지만 말이다.

사실 교회 밖보다 교회 안에서 생명정의평화 운동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그만큼 교회 안에 박근혜 후보의 정책 방향을 지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가늠케 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정책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교회는 정치적으로 다른 편을 든다고 여겨져 불편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에서 핵발전소의 문제가 심각하니 주요 안건으로 다뤄달라고 주교회의에 호소하고, 핵발전소로 말미암은 재난을 겪은 일본 주교들과의 교류만남을 통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었을 텐데도 주교회의가 핵발전소에 대한 공식적인 견해를 밝히는 것이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미루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거라 짐작된다.

교회 지도자들, 정치적 판단 아닌 복음적 판단 하길

사람들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정치적인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교회 안팎의 여러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오히려 종교 지도자들이 투표나 정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종교를 특별주제로 심화조사를 한 <2008년 한국종합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종교지도자들이 선거에서 사람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74.6%(매우 51.7%+약간 22.9%)가 동의했고,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도 71.2%(매우 45.0%+약간 동의 26.2%)에 달했다. 그러나 만약 자신이 믿는 종교적 원칙이나 가르침에 상충하는 법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법을 따르겠다는 응답이 35.4%(전적으로 6.9%+아마 28.5%)였던 반면에 종교적 원칙에 따르겠다는 의견은 39.6%(전적으로 11.4%+아마 28.2%)로 사회적 가치보다 종교적 신념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약간 더 많았다.

신자로서 나 역시 교회 지도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길에 대한 종교적 신념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복음적 판단이다. 그러한 복음적 판단이야말로 가장 비정치적일 수 있고, 복음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교회로서 세상 안에서 의미 있게 존재하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가 복음적 가치를 제시한다고 하여도 정치인들이 모두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가 아무리 복음적인 길을 제시해도, 신자들조차 그 가르침에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세상이 복음적 가치를 선뜻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그 지지자들이 기대하는 정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에 따라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문제를 정치인들이 먼저 챙기지 않을 테고,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자라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위의 비교표만 보더라도, 두 후보 중 누가 되더라도 교회의 생명정의평화 운동은 앞으로도 그 여정이 험난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책 방향과 교회 내 생명정의평화 운동의 지향이 뚜렷이 대척하니 격렬한 반정부 투쟁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해 보이고,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선 관심사가 아니니 다른 정책에 밀려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결국, 교회가 제시하는 복음적 가치는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기적적으로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에 따라 그에 걸맞은 정치 지도자가 선출되고 그에 따른 정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심판은 불의한 왕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왕을 세울 때의 상황을 떠올려 본다. 사무엘 상권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에게 외적의 침임을 이겨내고 강력한 국가를 이루기 위해 왕을 세워 달라 청한다. 사무엘은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세우는 일은 노예가 되기를 자초하는 길이라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결국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판관 정치 시대를 마무리한다. 새로운 왕권 체제로 더욱 강력해질 거라 믿은 이스라엘 백성의 기대와 달리, 사무엘 상권은 이스라엘 민족의 패배와 사울 왕의 자결로 끝나버린다.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몇몇 하느님 뜻에 충실한 왕 덕분에 잠시 발전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충실한 왕들 때문에 나라는 멸망하고 백성은 수탈당한다. 하느님의 심판은 불의한 왕 개인에게만 그 책임을 묻지 않고,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신앙인으로서 복음적 가치에 따라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해 보고, 좀 더 복음적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복음의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고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우리 사회 안에서 그 책임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뽑지 않은 다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고 그 책임에서 면제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교회가 온 인류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를 자신의 것으로 선포했듯(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1항), 우리 사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현실은 온전히 그리스도인 모두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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