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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깃발 휘날리며, 성소수자로 연대하다[인터뷰]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정욜

‘인권재단 사람’ 활동가 정욜 씨는 동성애자인권연대(이하 동인련) 대표로 10년을 지냈다. 학창시절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기는 했지만 당시 TV에 비춰진 게이들의 모습은 너무 특별하기만 해서 ‘나는 저들과는 다른 무엇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1997년 11월 학교 안에 붙은 대자보를 보고 ‘대학동성애자인권연합’에 문을 두드린 것이 시작이었다. 2002년 가을 단체가 어려웠던 시절 대표를 맡아 2011년까지 장기 집권했다. ‘내가 좋아하는 단체가 잘돼야 하는데’라는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다행히 회원들이 좋아해줘서’ 쭉 대표직을 맡아왔다고.

정욜 씨는 빵 만드는 것을 좋아해 대학 졸업 후 도제식 제과점에서 빵 만드는 일을 했고 6년간 유명 도넛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회사 동료들에게 노출될까 걱정하면서 활동을 병행해오던 그는 작년 2월 회사를 그만두고 인권재단 사람에서 1년 6개월 여간 인권센터 건립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정욜 씨가 마포구 성산동에 들어설 인권센터 그림을 보며 이야기 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저는 인복이 많나 봐요. 이름도 특이하지, 동인련이 연대 활동 한다고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발언하지, 소문이 날만도 한데 어찌어찌 눈치 챈 직장 동료들도 본인들만 알고 있었던 거예요. 영화 <종로의 기적>이 개봉한 다음에야 회사에서도 다 알게 됐는데 대부분 거리를 두거나 하지도 않았죠. 퇴사할 때 인권재단 후원도 많이 받아 왔어요.”

정욜 씨는 게이 4명의 삶과 사랑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의 주인공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또 지난해에는 <브라보 게이 라이프>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출판하기도 했다. 직장 생활과 병행했던 동인련 활동 10년, 그는 밖으로 느껴지는 가시적인 변화도 물론이지만 동인련 내부에서 느껴지는 나름의 변화들이 무척 고맙고 기쁘다.

“이제는 사회에서 성 소수자 문제가 덜 불편하게 다가가는 듯해요. 제도적으로 완성도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공적 공간 안에서 그런 변화들이 감지되니 기쁘죠. 하지만 무엇보다 동인련의 회원 수가 늘어나고 연령이 젊어지고 있다는 게 소중한 자산이에요. 더 젊고 다양한 시선이 생기는 거니까요. 희망이죠.”

그는 “동인련 내의 이슈가 구체화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우리는 비정상이 아니다’, ‘우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와 같이 추상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을 만났다면 지금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의 구체적인 이슈가 모임 안에서 직접적으로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긍심’이 모든 것의 기초다

그간 동인련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쳐왔다. 정욜 씨는 “동인련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에게 빚이 있는 단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육우당 때문이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 였던 육우당은 십자가와 성모상, 그리고 유서 한 장을 남긴 채 2003년 동인련 사무실에서 세상을 등졌다. 그를 처음 발견한 것이 그였다.

“일요일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너무 사무실에 가보고 싶은 거예요. 도착해서 사무실 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아차 싶었죠. 아마, 갈 곳이 없었던 육우당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 거예요. 동인련 사무실은.”

그는 육우당의 장례식을 치른 후 동인련이 청소년 동성애자들에게 마음 기댈 수 있는 고향 같은 공간으로 존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육우당의 어머니는 ‘동인련을 후원해달라’는 육우당의 유서대로 1년에 한 번 후원을 해주셨다. 그런 힘으로 단체 안에서 지금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을 보다 용기 있고 활기차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빚진 마음이 조금 덜어지기도 한다고. 정욜 씨는 회원 모두가 인권 활동가가 될 수는 없어도 좋은 공동체에서 삶의 한 부분을 나눴던 경험이 성소수자로 살아가는데 든든한 힘이 되리라 믿는다. 그는 여러 세대가 섞여 나누는 다양한 삶의 경험들이 ‘자긍심’을 높이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긍심은 모든 것의 기초가 돼요. 기초가 튼튼해야 살아가면서 부딪힐 여러 가지 문제들을 뚫고 가든 비켜 가든 쉬었다 가든 할 수 있어요. 방법은 여러 가지고 자기가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기초가 없으면 수많은 갈등과 도전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죠.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예요.”

무지개 깃발 들고 집회 현장에 나서는 동인련 ... 가장 중요한 가치는 ‘연대’

이름에서 보듯이 동인련은 ‘연대’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단체가 만들어진 초반부터 무지개 깃발을 들고 여러 집회에 참석했다. 집회에 참석할 뿐 아니라 동인련 회원들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우리가 왜 노동자들과 연대할까’, ‘우리가 왜 반전 집회에 나갈까’, ‘우리나 왜 안기부법 개악 반대 집회에 나갈까’ 등의 물음을 통해 연대의 의미가 깊어지고 사회를 향한 더 넓은 시선을 갖게 되길 원한다.

“처음 발언했을 때가 잊혀 지지도 않아요. 2002년 9월 27일, 세상에, 10년 전인데 날짜도 기억해요. 대학로에서 있었던 반전 집회였는데 사람들이 저희들의 발언을 두고 말이 많았어요. ‘왜 저 사람들한테 발언의 기회를 주느냐?’ 이런 거였죠. 결국 끝부분에 발언을 했어요.”

   
▲ 인권센터 모금을 위한 저금통을 들고 있는 정욜 씨. ⓒ문양효숙 기자

이후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전에는 집회 공간 한 구석에서 ‘그들끼리’ 있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현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기도 한다. 정욜 씨는 “알게 모르게 서로 배워왔던 시간들”이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거다. 현장에서 만났던 많은 분들이 무지개(동인련의 상징)가 어렵고 힘들 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11월 30일까지 인권센터 건립을 위한 잔금 3억 원
“인권을 위해 무이자 대출 해주세요”

현재 그는 인권센터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다. 인권재단 사람이 준비하는 인권센터는 2010년 10월부터 시작해 약 5억 원의 기금을 조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9월 15일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2층 규모의 단독주택을 계약했다. 현재 3억 원 정도의 잔금이 남아있고 이를 위해 11월 30일까지 36개월 무이자 대출형식으로 마지막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욜 씨는 인권 센터는 그저 공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처음 시작은 인권 활동의 기반을 만들고 새로운 활동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사업을 구상한 것이지만, 이 공간 하나하나를 구성해 나가며 인권 감수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를 논의하면서 다시 다양한 고민들을 하고 있죠. 예를 들면 화장실 앞에 빨간색 여자아이 파란색 남자아이 스티커를 붙이는 게 과연 맞는 일 인지부터 시작해서 1인용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다목적홀이 만들어지면 어떤 활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등등 지금은 좀 더 구체적으로 나가고 있죠.”

정욜 씨는 개인적으로 ‘어린이 인권 도서관’에도 관심이 많다. 단순히 책을 비치하고 대여해주는 차원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고 더 활발한 논의를 펼치기 위해서다. 그는 좋은 결과보다도 이런 과정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 ‘경계에서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놀이할 때 누가 금을 밟았네, 안 밟았네 하면서 다투잖아요. 인권을 생각한다는 건 끊임없이 그런 경계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와 관련된 문제가 아닐지라도 그 사건,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태도에 있어서 열린 마음으로 바꿔나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죠.”

그에게 일상 안에서의 변화를 위한 스스로의 노력은 차별적인 법제도나 사회적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사람들 사이에 차이의 지점이 생기면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배제나 외면이 아닌 포용을 통해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정욜 씨에게는 인권이다. 그런 탓인지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는 수용성과 부드러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지향해 온 동인련에서 오랜 시간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의 이런 인품 탓일 듯하다. 그는 ‘끊임없는 물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완벽한 무언가, 정확한 해답을 가진 사람들 보다 그 낯선 것들에 대한 긴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하는 게 더 좋아요.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구요. 누군가 문제제기를 했을 때 ‘쟤 왜 저래?’, ‘뭐 저런 거 가지고 그래?’, ‘쟤는 왜 저렇게 모났어?’가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죠. 늘 고여 있지 않고 흐르려는 용기와 자유로움이 인권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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