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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의 상념

   


가을을 타는가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아침저녁으로 갑자기 쌀쌀해져서 이불을 바꿔 덮은 게 엊그제고 낙엽은 아직도 먼데 올해는 왜 이렇게 벌써부터 사방이 텅 빈 듯 고요하고 쓸쓸할까? 걷기를 좋아해서 논길을 따라 두어 시간씩 걸으면 가을바람에 논은 어느덧 황금빛으로 출렁이고 농수로 옆으로 갈대와 억새풀들이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게 춤을 춘다. 마구 떠오르는 갖가지 상념. 보고 싶은 얼굴들. 내 방에는 온종일 첼로곡만 흐른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지? 이 나라는 온통 먹고 살기 힘들어 아우성이고 문규현과 수경은 오늘도 목숨을 내놓고 땅바닥을 기고 있는데... 이거 아무래도 배부른 사치병인가보다.

지난 달 본당의 모든 봉사자 임원들 연석회의에 성지순례 건이 상정되었다. 어느 신부 때부터 2년에 한번씩은 가을에 전 신자 성지순례를 했는데 그것을 다들 좋아하니 올해도 하자는 것이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물론 일치와 화합에도 큰 도움이 된단다. 정말 그런가?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도처에 산재해 있는 많은 성지들은 저 나름의 특색 없이 모두 천편일률적이다. 개발이란 미명 하에 경쟁하듯 하나 같이 땅을 늘리고 그 위에 큼직한 성당이나 기념관, 또는 피정집을 짓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니 성지에 대한 안내나 강론은 거의가 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순례 방식도 도시나 시골의 본당들이 다 비슷하다. 관광버스로 목적지에 도착해서 미사참례하고 돈 내고 서둘러 밥 먹고 야외에 조성해놓은 ‘십자가의 길’을 한 바퀴 돌고나면 순례 끝이다. 조용히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저녁에 돌아오는 버스는 차라리 시끄러운 노래방이다. 비싼 돈 내고 대절한 버스(요즘엔 일인당 버스비가 그 사람이 내는 주일 헌금의 몇 배가 넘는다.) 안의 분위기만 봐서는 놀러온 사람인지 순례자인지 분간이 안 된다. 주말 귀경차량으로 붐비는 길에 일조를 할뿐이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고생스런 순례는 아예 노땡큐다. 이런 성지순례를 올해 이 본당에서도 되풀이해야 하나? 사제생활 30년이 넘도록 아직 선뜻 결정하기 어려우니 나도 참 한심스런 놈이다.

올 가을엔 본당 사목회에서 한 부모 가정을 돕기 위한 바자회를 한단다. 이왕에 성당 근처의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빌려 크게 한 판 벌이는 것, 돈도 돈이지만 우리 동네 사람들의 즐거운 잔치가 되도록 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자는 게 주최 측의 노림수다. 좋은 생각인데 슬며시 걱정도 된다. 여기저기 갖가지 명목의 바자회가 너무 많다. 티켓이 무더기로 돌아다니는 것은 언제 봐도 마땅찮다. 다 식상하다. 게다가 여기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동네다. 자그마치 천만 원을 벌자고 계획을 세웠으니 거기에 온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겁게 먹고 마시며 놀 수 있을까? 보아하니 준비하는 분들이 입으로는 즐거운 놀이판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천만 원 목표달성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다. 이거 까딱하면 그럴싸하게 간판을 걸고 손님 뒤통수나 치는 장터의 약장수 꼴이 되지 않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옳지! 이참에 내 옷장이나 청소하자. 독신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큰 내 방 옷장에는 전부터 교우들이 철철이 갖다 준 옷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수북이 쌓여 있다. 이사할 적마다 구경꾼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산더미 같은 이삿짐이 못내 부끄러웠지만 선물한 사람을 생각해서 없애지 못한다고 변명만 해왔다. 그러나 기실 속마음은 남 주기에 아깝다는 욕심으로 가득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번 바자회에 그거 다 내놓고 나면 참 가볍고 홀가분해지겠다. 공개적으로 약속을 해야 할 대단한 일도 아니면서 미리 생색내며 나팔을 불어대는 이유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나 스스로에게 비록 체면 때문에라도 꼼짝 못하도록 못박아두자는 의도에서다. 이 가을에 옷장을 비우고 가벼운 몸과 맘으로 문규현 신부 얼굴 한번 보러 가야지.

호인수 2008.10.8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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