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와 국민이 나서 죽음과 반목의 행진 막아야
기도와 행진, 대화순례를 통해 다각적인 노력 펼치겠다

5대 종단 대표자들이 9월 17일 오후 1시 30분 서울 경운동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원탁회의를 열고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1백일 국민실천'에 나서기로 했다.

'종교계 33인 원탁회의'는 지난 5월 1일 사회적 갈등 해결과 생명평화세상을 위한 범종교 6인회 회의로부터 이어진 실천단이며, 제도권, NGO,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5대 종단별 5~6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현재 종단별로 진행되는 활동을 종합하고, 연말까지 '1백일 국민실천'을 진행할 것을 결의했다.

▲ 대국민 종교계 호소.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 이날 원탁회의에는 박정우 신부(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황상근 신부(인천교구 원로 사제), 양 비안네 수녀(서울 포교 베네딕토 수녀회)가 참석했다. ©정현진 기자

이들은 "죽음의 행렬을 멈추고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것, 사회적 제도와 정책 개선, 쌍용차 문제 해결을 통한 국민통합 방향의 제시" 등을 목표로 종교계와 국민들이 각각 구체적인 실천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우선 종교계는 이번 '종교계 33인 원탁회의'를 통해 오피니언 대화순례와 노 · 사 · 정치권 · 종교계가 함께 참여하는 중재의 장을 마련하기로 했으며, 현재 진행 중인 대한문 앞에서의 미사와 예배, 불교 측의 100일간 10만배 정진과 생명평화 100배 프로그램 등 기도와 모금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소통의 부재, 당사자들 만나 소통의 장 마련할 것
죽음의 행렬 막기 위한 상생의 국민대행진 참여 호소

무엇보다 종교계 33인 원탁회의가 진행하는 '오피니언 대화순례'는 정치계, 경제계, 정부와 쌍용자동차 사측, 그리고 언론과 학계, 시민사회의 의견집단 등을 만나 대화를 통한 상생의 지혜를 도출하겠다는 목적으로 계획됐다. 방문할 대상은 각 당 대선주자, 국회의장, 국회 환경노동위원, 전경련 회장, 중소기업중앙회장, 이명박 대통령, 홍석우 지경부 장관, 이채필 노동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김선기 평택시장, 그리고 쌍용자동차 사측과 노조 대표, 관련 학계와 정관계, 시민사회단체 등 쌍용자동차 사태의 책임자와 관련 당사자들이다.

‘종교계 33인 원탁회의’에 참석한 종교계 대표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국민들의 아들, 딸, 아내와 남편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진영 논리에 갇혀 있어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면서 "그동안 종교계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반성과 함께, 이 죽음이 구체적이고 절박한 문제임을 알리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먼저 나설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도법 스님(불교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의 모색이 필요하며,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을 사회통합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첫 걸음으로 쌍용자동차 문제부터 접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윤태원 위원장(천도교 청년회 생명평화위원회)은 "그동안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노동 문제는 단지 노동자들과 공권력의 사소한 충돌로 인식되어 왔다. 국민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서는 각 종단의 내부로부터 심각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종단 내의 대화, 종단 지도자들과의 대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종교계 33인 원탁회의'는 기자회견에 앞서, 첫 회의를 열고 1백일 국민실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현진 기자

'죽음'이 제대로 애도 받지 못하는 야만의 사회에 경종을..
사람을 '생명'이 아닌 '생산수단'으로 취급한 댓가

무엇보다 참가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가 무게감을 잃는 현실을 우려하면서, 쌍용차 자살로 상징되는 이 죽음의 행진은 '생명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황상근 신부(천주교 인천교구 원로사목자)는 하루 평균 40명이 넘게 자살을 하고,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이 죽어가는가. 개별적인 죽음의 의미를 묻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전했다.

또 윤여준 원장(평화재단 교육원)은 "젊은이들, 어린이들이 잇달아 생명을 끊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을 보며, 우리 삶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는 그동안 물질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달려왔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2배로 성장하는 만큼, 자살율도 똑같이 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제일주의를 섬기며 인간을 '생명'이 아닌 생산수단으로 봐 왔던 것에 있다. '사회적 죽음'을 남의 일로 치부하며 동정만 하는 이런 사회는 야만의 사회"라고 사회적 각성을 촉구했다.

'종교계 33인 원탁회의'는 구체적인 요구와 타협점 제시를 통해 쌍용차 문제를 비롯한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로 했으며, 무엇보다 '생명의 가치'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대국민 호소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10월 13일부터 국민 대행진 이어가..
종교계 33인과 1백인 국민 원탁회의, 상생과 사회통합 위한 대국민 캠페인 시작

'종교계 33인 원탁회의'는 앞으로 5대 종단 대표단을 꾸려 9월 셋째 주부터 정계와 경제계를 시작으로 대화순례를 이어가기로 했으며, 동시에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을 만나 공감과 중재의 장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10월 13일부터 격주 토요일에는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생명살림 국민행진'을 열고 서울광장부터 국회의사당까지 침묵 행진을 연다. 국민행진 참가자들은 이날 점심 식비를 기부하는 캠페인도 진행한다.

종교계 33인 원탁회의와 사회통합에 공감하는 1백인으로 구성될 '1백인 국민 원탁회의'는 오는 11월 19일 첫 회의와 기자회견을 열고 릴레이 기고와 국민행진, 대화순례 등 주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밖에 연말까지 1백일 동안 전개될 국민 캠페인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는 죽음의 행진을 멈추기 위한 국민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웃을 위한 기원문과 행동지침을 배포하는 한편, '1주 한 끼 굶기'로 모금운동을 진행하고, 사회적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온라인 서명운동(www.avaz.com/다음 포털 등)을 시작한다. 

▲ '종교계 33인 원탁회의'는 이날 대국민 호소문을 채택해 "개인적 성찰에만 머무리지 않고 사회제도와 정책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각계의 당사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호소하고 청할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국민들이 나서서 삶에 지치고 고단한 이웃들에게 말을 건네며 손을 잡아주고, 우리 모두의 바람인 사회통합의 진정한 길을 삶의 현장에서 열어달라"고 호소했다. ©정현진 기자

종교인 33인 원탁회의 대국민 호소문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
-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1백일 국민 실천을 시작하며 -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는 불신과 대립, 두려움과 분노가 빚어낸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노인들이,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고통과 절망을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던지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쟁이 필요하다고 여겼고, 대립과 갈등이 때론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우리의 이웃들이 죽어갔습니까?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죽음의 행렬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죽어간 이들 모두는 국민의 사랑하는 아들 딸이요, 아내이자 남편들이기에, 죽음의 행렬을 그들만의 일이라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종교인들 또한 그러했습니다. 그들이 생명을 던져서라도 벗고자 했던 삶의 무게를 나눠지지 못한 것이 죄스럽고 미안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의지하여 존재하는지, 왜 함께 살아야 하는지를 알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손 내밀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염치없고 송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습니다. 지난 6월 5대종교 수장들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자고 국민들께 호소한바 있습니다. 이제 그 길을 본격적으로 열어보고자 합니다. 우리 종교인들부터 이웃들의 고통을 귀 기울여 듣고, 보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있는 곳에 뛰어들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상대를 배제하고 이기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고 소통하는 건강한 씨앗이 뿌려질 수 있도록 앞장서겠습니다.

이곳 탑골공원은 1백여년전 33인의 종교계 인사들이 조선 독립을 위해 떨쳐 일어나, 전세계 비폭력 평화운동의 새 장을 열었던 곳입니다. 우리는 그 때만큼이나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부터 1백일 동안 함께 걷고, 대화하며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공동체의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게는 종교계가 함께 마음을 모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스물 두 분의 고귀한 목숨이 희생된 쌍용자동차에서 먼저 죽음의 행렬이 멈추어질 수 있도록 온 정성을 기울이겠습니다.

개인적인 성찰과 나눔에만 머무르지 않겠습니다. 사회제도와 정책이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각계의 당사자들에게 정성을 다해 호소하고 청하겠습니다. 생명의 존엄이 정파의 이익이나 이념보다 존중되도록 개인 과제와 사회 과제를 잘 가려내고 뽑아내어 공동체와 개인이 함께 노력하는 흐름을 만들어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국민들이 나서 주십시오. 삶에 지치고 고단한 이웃들에게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라고 따뜻이 말 건네며, 손을 붙잡아 주십시오. 우리 모두의 바람인 사회통합의 진정한 길을 삶의 현장에서 열어 주십시오. 갈등과 대립이 없는 세상은 만들기 어렵겠지만, 갈등과 대립이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 세상은 만들 수 있습니다. 경쟁이 없는 세상은 만들기 어렵겠지만, 공존의 숲에서 평화롭게 경쟁하는 세상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국민의 뜻만 모아진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죽음의 행렬을 멈춥시다!
사랑합니다, 함께 삽시다!
국민여러분이 희망입니다!

2012년 9월 17일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종교계 33인 원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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