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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마지막 일상을 묵상하다[9.11테러 11주년에 즈음해서]

   
▲ 사진 출처 /http://gigazine.net/

2001년 9월 11일. 뉴욕주 뉴욕시. 평범하게 보이는 한 부인이 점쟁이처럼 말했다. “날짜는 911 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긴급 상황인, 2001년 9월 11일은 1939년 9월의 어느 날처럼, 평화의 꿈을 깨뜨리고 말았다.

그 화요일 아침신문의 주요제목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결코 다시는 예전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세계를 마지막으로 그리고 있었다. 누가 뉴욕시의 다음 시장이 될 것이며 마이클 죠단이 다시 농구를 할 것인가 등등, 사람들의 흥미를 끌던 사건들은 갑작스런 죽음의 강타로 수천 명이 죽고 강력한 쌍둥이 번개같은 테러리즘으로 우리 모두를 마비시켰다.

재가 모두 위에 떨어졌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변했다.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악의 칼날 그 자체였고, 악마에 의해 위장된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마음속에서 달여져 나온 악, 무죄한 이들에게 본래의 모습 그대로 냉혹하게 그 힘을 마음껏 과시하는 악, 다른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자신의 세계로부터 터져 나온 악이었다.

이러한 신비는 파편의 먼지가 탑의 밑에 있던 건물들 위에 넘쳐 떨어지고 거리를 따라 굴러갔을 때, 그리고 마침내 그 순간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삶을 통째로 삼켜버렸을 때에 너무나 어두워서 꿰뚫어 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화요일 아침 달라진 것은 일상, 매일 매일의 삶이었다. 나름대로 절기에 따라 이루어지는 삶, 충분히 복잡하지만 공포의 그림자 같은 삶에 비해서는 순조롭고도 단순한 삶에 대한 느낌이 변한 것이다. 그들과는 상관없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지금쯤은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선의의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 일상의 삶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며 가톨릭 전례에서 연중시기라고 불리는 그 일상이 다시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대부분의 우리들에게, 일상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일상은 우리가 소박한 영광을 얻고, 세계와 서로간의 경이로움을 깨우칠 수 있으며, 친구를 사귀고 사랑에 빠지고, 우리를 이을 후대에 생명을 주고 격려하는 시기이다.

일상의 시기는 우리가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시기이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의 시기들을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축복으로 받고있다. 일상의 삶은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기적들의 장면이며 배경이다. 일상의 삶은 우리자신의 실패에 대해 서로를 용서하는 기적, 서로를 더 사랑하기를 배우고, 함께 상처와 의심과 좌절을 직면하는 기적, 이것이 매일 바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성찬례를 기념하는 방식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기적의 자리이다.

그 세계가 수천의 죽음으로 사라졌다. 우리와 너무나 닮은 보통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던 그 세계가 상실된 것이다. 우리는 위로 받을 수 없었던 라헬처럼 그들을 위하여 울 것이며, 화요일에 그들과 함께 살해된 일상을 위하여 울 것이다.

   
▲ 사진 출처 /http://www.princessleia.com/

최후의 심판 날은 바로 이렇다

2001년 10월 3일. 9월 11일 이후로 우리는 모두 피정을 하고 있다. 부질없이 침묵하려고 애쓰면서, 추락 후 다시 일어나기 위하여 부드러운 손이 너무나 필요하기에 조용한 시간을 원하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의 순수한 현존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벗어나 가장 멀리 떨어진 사막과 가물거리는 열기의 방패막을 찾아서 도시를 벗어날 필요가 없는 수도승들이 되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는 이 연기 나는 폐허 속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순수히 현존하시는 이 도시를 끌어안고 있다. 하느님은 이 꺼지지 않고 우뚝 솟아있는 빛의 폐허 속에, 그리고 한줌의 향냄새 속에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 쭈그러진 성작의 가장자리 안에 계신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은 그 어느 곳에도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족의 이 죽음을 애도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을 다르게 바라본다. 마치 우리 삶에서 밀과 가라지를 함께 자라게 놔두었다가, 추수 때에 이르러 좋은 곡식단은 생명으로 황금같이 빛나고 쭉정이는 죽음처럼 색깔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뉴욕의 가을 속에서 우리는 가짜 종교와 참다운 종교의 수확이 얼마나 다른가를 쉽사리 구분할 수 있다. 은총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저주하는 설교가들은 하느님이 이 나라의 성적인 퇴폐와 동성애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무역센터의 거대한 탑들을 파괴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아무 쓸모가 없는 가짜 수확이며 가려내어 불 속에 던져버려야 할 주장이다.

참다운 종교는 고통이 이미 넘치고 있는 곳에 절대로 고통을 더 덧붙이지 않는다. 참다운 종교는 이해, 용서 그리고 위로를 이삭으로 줍는다. 이제 가짜 종교와 참다운 종교의 뚜렷한 차이를 보면서 우리는 실종되고 죽은 이들의 삶을 하느님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 모두를 그렇게 보시게 될 것처럼, 그런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이 공포에 의해 모두 관상가들로 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이 거룩한 막간 속에서 어떤 종교들이 성을 유일하고도 확실하게 가장 나쁜 죄악이라고 주장하는 그 무거운 짐을 영원히 치워버린다. 우리는 성에 대해 강박관념을 지닌 설교가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고안한 최후의 심판 개념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운동장에서 초대형 화면에 당신의 비밀스러운 생각들, 욕망들, 성적인 환상들이 번쩍이며 다시 떠오르면, 그렇다, 당신의 어머니가 바로 그곳에 있고, 심판에 따라 지옥으로 사라지기 전에 당신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를 알게되는 그런 개념의 최후 심판이다.

우리는 결코 이 모든 것을 다시는 믿지 않을 것이다. 노란­집게발의 기계들이 그들의 고통과 우리의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덤프트럭들이 기억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쓸어가버릴 때에 우리는 죽은 이들의 거룩한 삶에 대하여 관상에 잠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이 느꼈던 성적인 감정들이나, 모든 인간들이 그런 것처럼 이따금씩 그들 안에서 흘러나오는 육적인 모습들이나 흐트러짐을 검사하지 않으며 그다지 많은 주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곳에서 죽은 이들은 그들이 지녔던 친밀함에 대해, 그들의 사랑과 우정, 그들의 일과 놀이에 대해, 그리고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치 않은가에 대하여 다정하게 말해준다.

전화나 이메일 그리고 친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 하나의 메시지로 섞인다. 폐허로부터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한 목소리는 마치 협곡 속의 메아리처럼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수천 가지 방식으로 외친다. 이는 이 선한 사람들의 삶이 이루어낸 풍요로운 수확이다. 좋은 곡식이 흘러 넘쳐서 그들 삶의 인간적인 그루터기 조각들을 다 덮어버린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해 말하고 삶 속에서 그들이 맺은 관계들에 대한 결단으로부터 삶과 믿음이 무엇인가도 정의해 준다. 한때의 방황이나 성적인 충동에 반대하고 그것을 씻어내야 한다고 하며, 성적인 유혹과 혼란을 비난하고 때때로 성적욕구에 지나치게 사로잡혔다고 지겹게 떠들어대는 어떤 설교가들의 주장은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런 것들은 잃어버린 이들이 그들의 배우자, 아이들,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이를 때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움직인 사랑의 파도 속에 다 씻겨버린다.

이번만은, 이 육적인 불꽃들이 그들의 삶의 역사 속에서 기껏해야 각주에 불과하며, 길고도 열매가 풍성한 그들의 인생에서 여름날 한순간의 번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자. 그들은 매일 다른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들을 잊어버리는 것을 너무나 익숙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온 것이다. 그들은 항상 그렇게 행동해 왔기에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좋은 씨와 나쁜 씨에 관한 복음의 이야기가 사실은 최후의 심판이야기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 안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자라난다. 심판 날에 하느님은 오직 우리 안에 있는 좋은 것만,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것만을 추수하시고, 시간에 속하는 잡초들을 무시하신다.

* 이 글은 <9-11, Meditations at the Center of the World> (Eugene Kennedy 저, 2002년 미국 메리놀 출판사 발행)을 <참사람되어>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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