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휴머니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이두부 옮김, 이후, 2007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아주 사랑스러운 아이처럼 꼭 껴안고 말았다. 그때까지 내가 생각하던 가난이란, 처참하고, 굴욕적이고, 웃음보다 눈물이 많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는 이 책 <가난한 휴머니즘>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게 깃든 희망과 존엄, 신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 우리는 너무나 가난하다. 그것도 다른 이들에 의해서 ……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찾아 딛고 일어설 것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가난함은 더이상 그들에게 굴욕적이지도, 모욕을 주지도 못할 것이라는 외침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가난'이 피상적이거나,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님을 배웠다. 가난한 이들은 함께 손잡고 걸어가야 할 연대의 대상임을, 스스로 굴종을 선택하는 순간 누구나 그 즉시 가난한 이가 될 수 있음을, 때로는 가난의 존엄함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흙 쿠키로 상징되는 절대 가난과 2010년 대지진으로 알려진 나라, 아이티. 그러나 스페인, 프랑스 식민시대를 거쳐 19세기 서반구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

그리고 그들의 대통령이었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식민과 독재에 맞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싸운 가톨릭 사제이며, 1990년 첫 자유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 7개월 뒤 군부 쿠데타로 망명길에 올랐지만 2000년 다시 92%의 지지로 재선됐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 세력은 2003년 "당신이 물러나지 않으면 아이티는 피로 물들 것"이라는 위협으로 한밤중에 그를 중앙아프리카로 쫓아냈다. 부시 정부는 아리스티드를 아이티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악화시킨 주범이라고 몰아갔지만, 아이스티드는 명실상부 아이티 민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아리스티드재단', '라팡미 셀라비' 등을 통해 아이티 민중, 특히 거리의 아이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가난한 휴머니즘>, 존엄한 가난을 살기 위해..

아이티 민중이 대통령에게 보내 온 수백 통의 편지. 그 속에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글을 몰라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편지지 살 돈을 빌려야 함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그들을 위해 편지를 띄운다.

이 책은 글조차 쓸 수 없는 아이티 형제, 자매들을 대신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보낸 아홉 통의 편지다. 그것은 이 아홉 통의 편지를 읽을 우리들을 향해 하나의 창문을 내는 것이며, 우리 각자와 아이티라는 세계가 만나, 새로운 제3의 희망을 볼 수 있는 그런 창문을 잇는 일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에서 도대체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무런 길이 없는 곳에서 그들은 어떻게 길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무런 길도 없는 곳에서 이 가난한 민중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소위 말하는 제3의 길입니다."

▲ 출처 : MBC 시사 프로그램 'W' 2008년 9월 12일 방송 갈무리
시장에 곡식이 있음에도 돈이 없어서 먹을 수 없고, 진흙에 소금과 버터를 넣어 말린 진흙 쿠키로 연명하며, 아이들은 집을 떠나 노동에 혹사 당해야 하는 현실을 말하면서도 아리스티드는 아이티 국민들의 존엄함과 자랑스러운 역사를 말한다. 그리고 동시에 아이티를 둘러싼 세계 열강들과 다국적기업의 횡포를 나직하게 고발하며, 스스로 모색하는 존엄함의 길에 우리를 초대한다.

아홉 통의 편지는 또한 아이티의 절망적 상황과 함께 아리스티드가 그의 형제, 자매들을 통해 바라본 여전한 희망에 관한 간곡한 메시지다.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자족할 수 있었던 아이티. 그 나라가 어떻게 서구 열강과 국제기구, 다국적기업에 짓밟혔는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고군분투하는지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진정한 가난함을 성찰하고, 영혼의 배고픔을 돌아보도록 이끈다. 이 모든 것이 사무치도록 호소력을 갖는 것은 애끓는 안타까움을 넘어 그 가운데에 현재와 잠재적 미래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모색하는 제3의 길

"죽음과 죽음 사이의 선택,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딜레마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압니다. 우리가 지구적 경제로 들어가든, 지구적 경제화를 거부해서 서서히 굶어 죽든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의 길을 찾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시급합니다."

아리스티드는 끊임없이 제3의 길을 이야기한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적인 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날마다 죽음과 맞닿아 있음에도 여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수백 년 동안 제3의 길을 창조해 왔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른 나라의 원조나 도움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거대한 생존 능력, 그로부터 빚어진 창조적 삶의 역사는 결집된 풍부한 경험, 지식, 기술과 에너지, 힘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아이티 정부가 국제 기구의 지시를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프로그램에 따라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맴돌 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면 민중들에게 전략을 구하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아이티의 조직들을 본다는 것은 한밤중에 촛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리는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 이끌 것이라고 봅니다."

배고픈 영혼을 치유하는 길, 사랑의 공동체

아리스티드는 우리가 자주 말하는 '신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사랑의 원천, 정의의 원천이라는 신을 만나는 길은 우리 앞의 '당신'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통해 신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신념, 신학, 도의, 사랑이나 정의로 불리는 초월적인 존재와의 접속……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면 이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념이 없었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 우리 모두는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우리에게 위대한 힘을 가져다줍니다."

아리스티드는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민중의 채워지지 않는 기대를 마주하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티의 처지에 절망하는 그에게 민중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존중과 존엄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필요한 집과 일자리, 학교 등록금을 대줄 만큼의 돈은 없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응당 받아야만 할 존경과 존엄으로 서로를 대할 만큼의 인간다움은 우리에게 충분히 있습니다. …… 저마다의 진리를 공유하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힘으로 어려운 시대를 가로지를 수 있습니다."

'아이티'로의 특별한 초대

마지막 편지를 통해 아리스티드는 빈곤을 없애는 도전에 우리를 초대하면서, 기괴할 정도로 뒤틀린 이 세상에서 빈곤 없는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더 인간답고, 더 안정적이고, 더 정의로운 세계를 창조할 시간이 왔다. 모든 곳에서 빈곤을 없애는 것은 인류 연대의 참여나 도덕적 책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이것은 실제로도 가능한다. 빈곤을 없애는 데 드는 비용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크지 않다. 세계 경제 전체 수입의 1%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는 이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이 있으며, 그 위험을 떠안기 위해서 '신념'이 필요하다고 이른다. "미지의 세계에 이르기 위해 지금 보이는 것들을 가로질러 간다는 것은 회의, 비관주의, 패배주의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신념만이 우리를 무장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저는 지금도 일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티의 모든 어린이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될 날이 올 거에요."

한 어린이의 말을 전하면서, 아리스티드는 이 신념을 나눠 갖기 위한 초대장을 보낸다. 물론, 초대에 응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이 책을 읽는 당신께 우리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도 우리는 아이티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땀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념 덕에 도전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신념, 이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전세계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신념을 나눠 가지도록 당신께도 초대장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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