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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악마들을 가두고 처벌하면 끝나는 걸까[최재훈의 경계를 넘어]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들기가 겁이 난다는 말이 정말 가슴에 와 닿을 정도로 요즘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범죄가 줄을 잇고 있다. 바닥에 침 뱉는 걸 나무랐다고, 예전에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지하철이나 도심 한복판에서 날카로운 흉기가 광란의 춤을 쳐대는가 하면, 멀쩡히 집에서 잠을 자던 주부와 어린 소녀가 무자비하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들의 불안감과 분노는 끓어오르기 직전까지 치달을 수밖에 없고, 점잖은 사람들의 입에서조차 하루에도 몇 번 씩 “저런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란 욕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시민들의 그런 분노에 편승해 정부와 여당에서는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를 확대하고 2년 만에 길거리 불심검문을 부활시키는 한편, 끊임없는 인권침해와 이중처벌 논란 속에 가까스로 폐지시켰던 보호감호제를 ‘보호수용제’라고 간판만 바꿔서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장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의 인권조차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사회’라는 대원칙은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쯤으로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당장 온라인상에서는 악마에게 무슨 인권이냐며 그들의 얼굴에 씌워진 마스크를 벗기고 15년 가까이 중단됐던 사형집행을 재개하라고 아우성들이다. 그러나 인간 이하의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당연한 분노와는 별개로, 결국 이 시점에서 우리는 중요한 몇 가지 질문들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가해자들을 영원히 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거나 생명을 빼앗아버림으로써 죄를 저지른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처벌의 강화가 이 사회를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일까? 과연 어디까지가 사회의 책임이고 어디까지가 가해자 개인의 책임일까? 우리가 그 ‘악마들’을 다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안고 참회의 기회를 줄 수 있는 한계선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그 어떤 고차 방정식보다 어려운 이러한 질문들은 때마침 저 멀리 유럽의 벨기에에서도 한창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범죄자의 석방

지난 8월 말, 벨기에 대법원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한 뒤 강간, 살해한 남편을 도운 혐의로 30년형을 선고받고 16년 동안 수감생활을 해온 미셸 마르탱(52세)이라는 여성의 가석방을 허용한 지방법원의 결정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벨기에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미움 받는 여인”으로 대중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마르탱은 감옥 문을 걸어 나올 수 있게 되었다.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벨기에 사회 전체는 한바탕 큰 충격과 논쟁으로 들끓었다. 그 이유는 마르탱과 그 남편 마르크 뒤트루(55세)가 저지른 범죄의 잔인함과 악마성이 영화적 상상력을 뛰어넘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남편 뒤트루는 1986년에도 5명의 소녀들을 성폭행했던 중범죄자였다. 당시 그는 체포돼 법정에서 14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모범적으로 수감생활을 했다는 점이 참작돼 3년 만에 풀려났다. 그리고 1995년 6월, 그는 다시 8살짜리 동갑내기 친구인 줄리와 멜리사라는 소녀를 납치해서 지하실에 가두고 수시로 성폭행했다. 두 달 뒤에는 해변에서 방학을 즐기던 이프제와 안이라는, 각각 17살과 19살짜리 소녀들을 똑같이 납치해서 헛간 아래에 산 채로 매장했다.

그러던 12월 어느 날, 뒤트루는 자동차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고 부인에게는 자신이 없는 동안 갇혀있던 줄리와 멜리사에게 밥을 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마르탱은 한 번도 밥을 주지 않았고 결국 두 소녀는 어두운 지하실에서 고통 속에 굶어 죽었다. 부부의 이런 엽기적인 범죄행각은 이듬해 봄에 또 다른 두 명의 소녀를 납치했다가 이웃 주민의 신고로 두 사람이 경찰에 체포되고 나서야 비로소 끔찍한 막을 내리게 된다.

당시 이 사건은 경찰이 뒤트루 어머니의 제보로 두 차례나 부부의 집을 방문하고도 형식적인 수색에 그침으로써 결국 소녀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부와 사법당국의 무능에 대한 시민들의 질타로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뒤트루가 고위 정치인과 판검사, 경찰관이 포함된 대규모 아동 성도착자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음모론이 퍼지면서 한 때 정부가 붕괴되기 직전까지 이르게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말 그대로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그런 범죄자가 겨우 16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풀려나게 된 것이다. 당연히 살아남은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분노했다. 살해된 소녀 줄리의 아버지는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는 꼬박꼬박 밥을 주면서도 경찰에 신고는커녕 소녀들을 그대로 굶어죽게 한 마르탱이 남편보다 더 악랄하다며 법원의 결정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해소녀 라에티샤 델헤즈는 변호사로부터 마르탱이 석방됐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고 한다. 물론 그 누가 당사자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있을까만, 그래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마르탱의 석방 소식에 받았을 충격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탱이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형기의 3분의 1을 복역하면 누구나 가석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벨기에 행형법 조항 때문이었다. 그 요건을 채운 뒤로 네 차례에 걸쳐 가석방을 신청했다가 기각됐던 마르탱은 작년 말에 몬스 시 지방법원으로부터 드디어 가석방 결정을 받아내게 된다. 그러나 가석방돼도 그녀가 갈 곳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어디에 머물든 간에 지금도 그녀의 악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시민들에게 맞아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기 때문이다.

“NO, NO, M. M”..그러나 절대악의 화신을 받아들인 수녀원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참회의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나선 곳이 바로 왈로니아 지방의 말론 마을에 있는 성 글라라회(Les Soeurs Clarisses de Malonne) 수녀원이었다. 그 곳에 모여 살던 12명의 수녀들은 몇 달에 걸친 내부 논의 끝에 마르탱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 자체가 “너무나도 길고도 힘든” 과정이었다고 토로한 원장 수녀 크리스틴은 현지 신문에 보낸 편지를 통해 “지옥을 경험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끔찍한 고통에 우리도 똑같이 분노했기에 (이번 결정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도전이었다”면서도 “그 누구도 원치 않는 사람을 품어주는 것이 크리스챤으로서 우리가 할 의무”라고 밝혔다.

수녀들이 내린 결정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엇갈렸다. 전국 일간지 <라 리브레 벨지크(La Libre Belgique)>는 마르탱은 ‘절대악의 화신(l’incarnation du mal absolu)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그런 사람에게서조차 사회로 다시 편입해 자신의 죄를 참회할 수 있는 기회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수녀원의 결정을 지지했다. 반면 <수드프레세(Sudpresse)>라는 신문은 사설을 통해 “벨기에 사법부가 가톨릭교회와 공모해서 국민들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시민들 다수가 마르탱과 수녀원에게 보내는 눈길도 아주 싸늘하다. 수도 브뤼셀에서는 마르탱의 석방을 규탄하고 성범죄자들에 대한 가석방을 일체 불허하는 법 개정을 요구하는 거리시위가 벌어졌다. 수녀원의 붉은 벽돌 담벼락과 정문에는 누군가 스프레이로 휘갈긴 “NO, NO, M. M.(Ms. 마르탱의 약자)”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칠해져 있다. 안전 문제 때문에 아직 교도소에 머물고 있는 마르탱이 수녀원에 들어오는 걸 막겠다며 시민들이 정문 앞에 24시간 진을 치고 있고, 그 광경을 취재하려는 기자들로 인해 평소 쥐죽은 듯 고요하던 수녀원 앞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지금 이 순간 신문 사회면을 채우고 있는 그 숱한 범죄 가해자들은 상당수가 언젠가는 다시 이 사회로 되돌아올 사람들이다. 그들의 발목에 전자발찌를 채운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게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많은 가해자들이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고 겉돌다가 자포자기식으로 2차, 3차 범죄의 길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과 분노를 어루만지면서도 그 가해자들을 다시 이 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은 아무래도 세속의 법과 제도보다는 종교의 역할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최재훈 (안토니오)
국제연대단체 '경계를넘어'의 회원으로 활동. 2008년에 노엄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개정판, 이후출판사)을 번역했으며, 2011년 7월에는 여행기 <괜찮아, 여긴 쿠바야>를 공동집필해 출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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