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연중 제23주일: 마르 7,31-37

"예수님께서 다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교육방송에서 평일 저녁에 하는 <달라졌어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참 기적 같은 일이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프로그램은 부부, 가족, 직장상사 등 일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어그러지고 삐거덕거리는 상황이 된 관계를 회복하도록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실제 갈등을 겪는 관계 당사자가 출연해 갈등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전문가들과 대화하고 상담하며 관계개선 프로그램을 8주 동안 진행한다. 여기서 저 사람들은 차라리 그냥 헤어지거나 안 보는 것이 서로에게 낫겠다 싶었던 관계도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번 놀란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나와 주위의 여러 관계를 자주 떠올린다. 정도의 차이나 구체적인 사건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부부관계나 부모관계, 고부관계, 상사와의 관계 등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갈등이라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내가 당사자인 듯 감정이입을 하며, 저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새삼스레 깨달은 게 있다면, 사람의 갈등 관계에서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는 없다는 게 아닐까 싶다.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 남편 얼굴만 보면 욕설을 쏟아 놓는 아내를 보면서 당연히 저 관계의 갈등은 그런 문제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상담과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실 그 사람은 너무나 약한 존재이고 과거에 상대에게서 깊은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정작 과거에 상처를 준 사람들은 기억하지도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건이 빌미가 되어, 한 사람의 영혼은 병들기 시작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상처를 준 사람도, 상처를 받은 사람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던 그 실마리를 찾아 헤집고 들어가면서 비로소 사람들은 원래 서로가 지닌 본디의 선한 마음, 서로에게 품었던 따스함의 기대를 기억한다. 거기서부터 기적이 시작된다.

자신은 오로지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상대를 비난하던 가족들이 그 사람의 상처를 보아주고 무의식중에 그 가족에게 고통을 준 일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순간, 난폭하고 싸늘하기만 하던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자기가 상처받았으니 술 마시고 욕설을 퍼붓는 식으로 표현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자기 자신에 대해 변명하고 회피하던 그 사람들이, 기적처럼 자신을 돌이켜보고 자기로 말미암은 상대의 고통도 보게 되면서 자기 삶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한다. 그리고 가족들도 그 사람에게 비난이나 변화해야 한다는 강요가 아니라 자신이 상대를 어떻게 대했는가를 돌이켜보며 함께 변화하고 관계를 바꿔 나간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행하시던 치유 기적의 과정도 바로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상처 입고 고통당하는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보아주고 따스한 위로를 건네시는 모습, 분노와 고통에 눈과 귀가 가려져 제대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사람들에게 연민의 눈길과 열린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주시어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하게 해 주시는 모습, 그래서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던 사람들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게 하신 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시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모습이 인상 깊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복음서 주석가들은 이런 치유 행동이 당시 사회의 기적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예수님께서 취하시는 행동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은 귀먹은 그 사람의 문제인 귀, 그 가장 핵심을 건드리시고, 자신의 침을 그의 혀에 대는 것으로 가장 친밀한 위로와 치유의 행동을 보이신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는 것은 그 사람과 온전히 일치되어 말 못하는 그의 탄식을 대신하고, 곧이어 모든 장애물을 걷어 내는 치유와 해방의 말씀을 건네신 것은 아닐는지…….

예수님의 기적은 그분만 행하실 수 있는 특별하고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파견하셨던 건(루카 9,1 참조), 그런 기적을 우리도 행하라 하신 분부일 것이다. 내 삶에서, 내가 맺은 관계에서 그런 기적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사람마다 깊은 내면 안에 품고 있는 착한 마음을 보는 연민의 눈을 갖는 것,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그 선한 마음을 보고 믿는다는 것을 표현해 주는 것으로 관계는 분명 달라질 것 같다. 그렇게 내 삶에, 우리의 모든 관계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조금씩 변하고자 노력해 본다.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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