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몇몇 선후배 동무들과 함께 소백산에 갔는데 하필이면 입산금지기간이라 산은 오르지도 못하고 산자락에 있는 황보 선생님네 과수원에서 맛난 오가피술만 잔뜩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신부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집에 돌아온 바로 그 다음 날, 신부님이 내신 책 <전각성경, 말씀을 새긴다>(햇빛출판사 간)를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무슨 기(氣) 같은 게 있기는 있나봅니다. 5년쯤 전인가, 제가 풍기에서 한 여름을 지낼 때 신부님 댁에 가서 손수 해주신 점심에 소주까지 잘 얻어먹고 얼굴 벌개져서 돌아온 후로는 전화 연락 한번 드리지 못하고 살았는데 소백산 자락에서 신부님 이야기 좀 나눴다고 금세 이렇게 책이 오다니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겉표지 날개 안쪽에 인쇄된 신부님의 환한 얼굴을 보고 칠순을 바라보는 연세인데도 근력이 좋으신가보다 생각했습니다. 책 뒷날개에 쓴 이현주 목사님의 글은 제가 하고 싶은 말 그대로더군요. “놀랍습니다. 집짓고 농사짓고 손님들 맞이하고 빨래하고 밥해 먹고 술마시고, 어느 짬에 이 많은 말씀을 나무에 새기셨던고? 꾸부정하게 앉아 나무를 파내고 있는 신부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절로 존경심이 우러납니다.” 정양모 신부님의 말씀도 딱 어울립니다. “전각성경이라. 듣도 보도 못한 일은 이 기인이 저질렀구나. 퍼뜩 떠오른 생각이었다. ..... 전각성경은 지난 이태 동안 공을 들여 펴낸 명품이다. ‘단상’에서 청량산 도인이 묵상한 신의(神意)를 엿보고 ‘전각’에선 그의 필치 신운(神韻)을 즐기기 바란다.” 목수 일을 배우셔서 지금 살고 계신 집을 손수 지으신 것까지는 저도 아는데 나무도장 새기는 방법은 또 언제 누구에게 배우셨습니까?

신부님은 책갈피에 끼워 보내주신 간단한 쪽지편지에 다음과 같이 쓰셨습니다. “‘말씀’을 정성으로 새겼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만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립니다.” ‘말씀’을 정성껏 새겼으니 제 입맛대로, 엉터리 거짓으로, 건성으로 적당히 읽고 넘기지 말고 ‘제대로’ 마음 깊이 새기라는 말씀이지요. 신부님이 둥글고 네모난 나무를 붙잡고 ‘말씀’ 하나하나를 깊고 얕게, 굵고 가늘게 새기신 마음과 모습이 고스란히 제게로 와서 새겨졌습니다. 신부님이 새기신 것을 제가 다시 새깁니다.

신부님은 또 편지 끝에 “후딱후딱 ‘디지탈’ 시대에 느릿느릿 ‘아날로그’ 인으로 살다가 갈” 것이라고 쓰셨습니다. 그렇지요. 지금 신부님이 하시는 농사일이나, 나무 깎고 흙 이겨 발라 집 지으신 일이나, 꾸부정한 자세로 성경말씀을 새기는 일들은 무엇이든 경쟁하듯 빨리빨리 이루어서 그 성과를 제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요새 사람들에게는 하릴없는 구닥다리 늙은이의 한심한 작태로 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습니까?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 말든 신부님은 예부터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하늘의 뜻을 알 나이가 지난 지 오랜데 아직도 남의 눈이 엄청 의식되거든요. 소신껏 무엇을 하기에 앞서 주변의 눈치부터 살피는 데 이골이 났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지금부터 꼭 20년 전, 6월민주항쟁 이후, 신부님이 제게 가톨릭농민회를 맡으라고 몇 번이나 찾아오셨던 생각이 납니다. 나는 농민의 아들이 아니라는 어쭙잖은 핑계를 대며 요리조리 빠질 궁리만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에 신부님은 아예 본당사목을 접고 홀로 농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스스로 농사꾼이자 목수가 되신 거지요. 댁으로 찾아뵙기 전에는 도무지 어느 곳에서도 신부님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신부님을 이 소중한 책을 통해서 오늘 다시 뵙습니다. 새해에도 거기 그렇게 강녕하십시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부개동성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07-12-27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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