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8]

도시 사람들에게 휴가철이 이곳에서는 손님맞이 철이다. 마을은 휴가를 보내러 온 도시 사람들로 오랜만에 북적거린다.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밤새 마을 정자에 붉을 밝히고 노는 어른들…, 그야말로 한바탕 잔치가 열렸다.

우리 집에도 7월 초부터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손님이 이어졌다. 사촌 동생, 시댁 식구들, 친정 식구들에 뜬금없이 연락을 해온 지인들까지, 할 수 없이 다음에 놀러 오라 약속을 미루기도 하였으니 그야말로 손님맞이 대풍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손님을 맞으면서 한결 같이 느껴지는 건, 사람들이 휴가를 너무 특별하게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긴 시간 승용차를 타고 우리 집에 왔으니 차 타는 게 지겨울 법도 한데, 또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집 가까이에 있는 냇가와 저수지, 시원한 숲을 두고 특별히 좋은 데를 찾아 또 차를 타는 것이다.

그리고 시골에 왔으면 단 며칠이라도 시골집 음식을 먹었으면 하는데, 집에서 한두 끼 먹고 나면 라면이나 빵, 과자를 찾는다. 그러다가 결국은 뭐 맛있는 게 있을까 하고 맛집을 찾아 차를 타고 나선다. 갓 딴 호박으로 볶은 호박나물, 날 것 그대로 된장에 찍어 먹는 싱싱한 오이와 고추, 그런 것들로 내 딴에는 정성껏 밥상을 차려내지만 다른 특별한 것을 바라는 마음을 채워주기엔 역부족인가 보다.

하긴 애타게 기다렸던 휴가이니 만큼 좀 더 잘 먹고 좀 더 잘 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잘 먹는다는 게 뭘까? 잘 논다는 게 뭘까? 값비싼 돈을 치르고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게 잘 먹는 것일까?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에 가서 사진 몇 장 찍는 게 잘 노는 걸까? 아님,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잘 갖춰진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잘 노는 걸까? 휴가를 보내러 온 손님들을 치르며 나는 휴가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 집에 머물고 있는 손님은 서울에서 내려온 여동생이다. 제부 휴가가 생각보다 늦게 잡혀서 여동생이 아들 둘을 데리고 먼저 내려와 있다. 만약 제부와 함께 내려왔다면 벌써 여기저기 차를 타고 누비며 휴가를 보냈을 테지만 제부가 없으니 꼼짝없이 집에 머물고 있다. 나는 ‘옳거니, 지금이 기회다!’ 싶어서 더욱 독한 마음을 먹고 밖에 나갈 일을 만들지 않았다. 동생이 “언니, 우리 뭐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가면 안 돼?”하며 간절한 눈빛을 보내도 “네 신랑 오면 맛있는 거 실컷 먹으러 다니렴.”하고 약을 올리며 집 밥을 먹이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며칠 사이에 조카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어떤 음식을 주더라도 남기지 않고 잘 먹는다. 또, 마을 안에서 놀이터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차 타고 어딜 가야지만 노는 줄 알던 아이들이 마당에서 흙장난을 하고, 마을 정자에서 춤을 추며 논다. 뿐만 아니라 풀숲을 헤치며 멀리 걸어가야 하는 물놀이터(저수지)도 꺼려하지 않는다. 전에는 신발에 흙이 조금만 들어가도 걷지 않던 조카아이가 좁은 논둑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걸 보면 어찌나 대견스러운지!

그저께는 여동생과 조카아이들, 그리고 마을에 있는 아이들 셋까지 데리고 함께 저수지에 갔는데, 두 살부터 열네 살까지 한데 어울려 노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 자체로 커다란 ‘쉼’이 되었다. 나이 어린 아이는 좀 더 큰 아이가 돌봐주니 모처럼 엄마를 쉬고 그냥 지켜볼 수 있었던 것.

아이들과 함께 밥을 나눠 먹다가 방학을 맞아 할머니집에 온 여자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정민아, 엄마 아빠 안 보고 싶어? 집에 가고 싶지 않아?”
“네, 저는 여기가 좋아요.”
“왜?”
“여기서는 돈 안 내고도 물놀이를 실컷 할 수 있잖아요. 서울에서는 어딜 가더라도 다 돈을 내야 해요.”

정민이 말이 정확했다.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여유롭게 휴가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값진 휴가, 특별하게 보내기보다 돈 좀 덜 쓰며 보내 보자.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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