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7]

"이모! 저 왔어요." "다울아! 형아 왔다."

아침 여섯 시가 조금 넘었으려나? 범수가 큰 소리로 부르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순간, 피곤이 몰려오고 짜증이 일었다.

"범수야, 다울이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상태가 좀 안 좋거든. 아침밥 먹고 나서 이따가 놀러와. 알았지?"

나는 다울이 핑계를 대며 억지로 범수 등을 떠밀어 집으로 보냈다. 범수는 집에 돌아가기 싫은 건지, 아니면 우리집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건지 문밖으로 나간 뒤에도 한참이나 우리 마당에서 맴돌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너무했나 싶기도 했지만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범수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말이다.

범수는 뒷집 아저씨의 늦둥이 아들로, 올해로 여섯 살이다. 아저씨가 두 번의 상처(喪妻)를 하고 쉰 가까운 나이에 여자를 만나 범수를 낳았는데, 범수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또 헤어지게 되었단다. 범수 엄마가 결혼 전에 진 카드 빚 8천 5백만 원이 날아왔던 것이다. 화물차 운전 기사였던 아저씨는 범수 엄마에게 범수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빚을 갚아 주고, 6개월 된 아기를 차에 싣고 다니며 돌보았단다.

나로서는 전혀 상상이 안 되는 일이다. 6개월 된 아기가 어떻게 온 하루를 차에서 보냈을까? 엄마 혼자서도 키우기 벅찬 시기에, 늙은 아빠가 어떻게 아기를 감당했을까? 분명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저씨는 스트레스를 술로 풀다가 간암이 와서 수술을 하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태로 우리 마을로 오게 된다. 공기 좋은 곳을 찾아서.

그때부터 범수는 아저씨의 여동생, 그러니까 고모 집에서 고모와 고모부를 엄마, 아빠라 부르며 사는데, 두 주일에 한 번 정도(때로는 느닷없이 갑자기) 화순 아빠 집에 온다. 뒷집 아저씨 표현으로는 "보고 잡아서 미칠 것 같아서"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범수도 눈치로 친아빠가 누군지 아는지라 화순 아빠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아들을 데려와서는 아빠가 아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범수에게 "아빠 산에 갔다 올 테니까 다울이 집에 가서 놀아." 하면 끝이다. 우리 집에 무슨 사정이 있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범수를 데려오면 무조건 우리 집으로 보낸다. 마치 제가 낳은 알을 뻔뻔스럽게 다른 새 둥지에 넣어 놓고는 그 새가 품어 주길 바라는 뻐꾸기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자랑스럽게 말씀하신다.

"자식은 송아지처럼 키우는 것이여라. 풀밭에 송아지를 풀어놔보쇼. 송아지가 지 엄마한테 가나. 다른 송아지들이랑 어울려서 놀다가 배고프면 풀 뜯어 먹다가 지 알아서 놀아라우."

이른바 '송아지 양육법'인가 본데, 내가 보기엔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아저씨가 뭘 몰라서 그렇지 지 알아서 그냥 노는 것이 아니다. 범수가 오면 우리 집이 얼마나 시끄러워지는지 모른다. 범수는 끊임없이 이것저것 요구한다.

"이모, 색종이 있어요? 테이프는요? 장난감 더 없어요?"

게다가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에 목말라 있어서인지 다울이보다 더 많은 관심과 인정, 칭찬을 바란다.

"이모, 이것 좀 보세요. 내가 만들었어요. 이모, 난 이것도 할 수 있어요!"

▲ 범수가 그린 그림. 정성껏 그리고 가위로 오려 선물로 남겨 주고 갔다. 범수를 보내고 난 뒤에는 '있을 때 더 잘해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청라
나도 하는 데까지는 열심히 반응을 해 주지만, 그러다 보면 금세 지쳐버린다. 다울이도 아직 어린지라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범수까지 더해지면 내가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특히나 다울이는 마음이 여리고 예민한 성격이라면, 범수는 거칠고 씩씩한 편이라 둘이 함께 있으면 불안 불안하다. 범수는 다울이의 작은 행동에도 무섭게 화를 내지, 다울이는 범수의 작은 말 한마디에도 울어버리지, 둘 사이를 조율하다 보면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 내가 범수가 오는 것을 반가워할 수가 있나. '품어주자, 품어주자' 마음속으로 되뇌지만, 그게 잘 안 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범수가 자꾸 다울이 머리를 때려서 내가 화가 났다. 범수를 혼내려고 "범수야, 이리와 봐!" 했더니 대꾸도 없이 그냥 휙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이리 안 올래? 너 이렇게 가 버리면 이모 집에 다시는 못 오게 한다."
"이제 안 올 거야! 다시는 안 와!"

녀석은 소리를 빽 지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 마주쳤는데 하도 괘씸해서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녀석도 그냥 휙 지나갔다. 범수 아빠도 평소 같으면 인사를 하고 지나가실 텐데, 못 본 체하고 가시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 했던 말이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차라리 잘 됐다. 범수가 안 오니까 편하다' 싶으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시끄러워서 어떻게든 풀기는 풀어야 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범수 집에 찾아가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범수를 불렀다.

"범수야, 이모는 네가 대꾸도 없이 그냥 가버려서 그게 화가 났어. 이모가 어른이긴 하지만, 어른도 화가 날 때가 있단다."

이렇게 말을 꺼냈는데 녀석이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몰라! 안 들려! 안 들려!" 하는 게 아닌가. 나도 화가 치밀어서 "안 들려? 안 들리면 듣지 마!" 하고 나와 버렸다. 그러고 나서 조금 뒤에 범수가 우리집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문을 꽉 닫고 못 본 체하고 싶어 하는 나에게 다울이가 말했다.

"엄마, 범수 형아 왔네? 형아가 우리 집에 오고 싶은가 봐. 엄마, 나 형아랑 사이좋게 놀게요."

그 말에 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렸다. 내가 뭘 하려고 하기보다 그냥 다울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다울이가 문을 열고 "형아, 놀자!" 하고 범수를 부르자, 범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리 집에 들어와 놀았다.

이러면 되는 것을, 잘잘못을 가리고 따지기보다 그냥 이렇게 이름 부르면 되는 것을……. 이것이 뻐꾸기와 함께 사는 비법인 것일까? 뻐꾸기 아빠가 가까운 이웃인 덕분에 나는 아주 힘겹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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