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한상봉 기자

노숙인 진료소에 들어서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 시간이면 형님, 아우 하며 현관에서 수다떨 봉 형님과 안 수사님인데, 봉 형님은 안 보이고 안 수사님의 도끼눈만 이글거린다. 노숙인 박 씨에게 빌려준 돈이 문제였다. 일주일 후에 꼭 갚겠다고 해 놓고 박 씨가 먹고 튄 것이다.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절대 내보내지 않는 짠돌이 안 수사님이 봉 형님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선뜻 박 씨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피 같은 돈을 사기 당했으니 안 수사님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럴 땐 말보다 주먹이 효과적이라는 걸 안다. 봉 형님도 힘이라면 한 가닥 하지만 안 수사님 앞에서는 새발의 피다. 영등포역 일대의 악명 높은 '주폭'(酒暴; 만취 상태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 노숙인조차 안 수사님 앞에서는 단번에 '차렷, 열중쉬엇' 모드로 돌변하니까. 다행히 눈치 빠른 봉 형님은 상황을 읽고 이미 잠수를 탔다.

58년 개띠 노총각. 직업은 노숙인 무료진료소의 문지기. '안 수사님'은 그의 별명이다. 제발 술 끊고 주먹질 그만하고 수도자처럼 살라고 진료소 직원들이 지어준 애칭이다. 굵은 팔뚝 위로 울퉁불퉁 튀어난 수많은 칼자국이 그의 인생 역정을 말해 준다. 한때 신림동 시장 일대의 '어깨'였다. 떡 벌어진 어깨 하며 우락부락한 얼굴에다 황소라도 때려잡을 듯한 무쇠주먹이 고아원에서 자란 그가 세상을 사는데 사용한 유일한 무기다.

그가 이 가게, 저 가게 어슬렁거리면서 매눈을 부라리면 상인들은 꼼짝없이 그의 행패가 무서워 돈과 술을 상납했다. 게다가 술만 들어가면 개차반이 되는 바람에 시장통에서는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술김에 내지른 주먹 한 방에 사람이 죽었다. 살인죄로 감방에서 7년을 보내고 출소한 후 다시 신림동으로 돌아왔다. 깡패에다 살인자라는 꼬리표까지 붙인 그를 모두들 피했다. 그럴수록 술과 폭력은 그의 일상이 되었고 무전취식하는 부랑인이 되었다.

안 수사님과 봉 형님이 형과 아우의 인연을 맺은 것은 그 즈음이었다. 억수 같은 장맛비로 물난리가 나던 날, 시장이 물에 잠기고 신림천 다리가 떠내려 가니 대피하라는 방송이 온종일 이어졌다. 저녁쯤에 시장통은 상인들이 철수를 끝내고 텅텅 비었다. 인근 학교에 대피해서 양동이로 퍼붓는 비를 보던 봉 형님의 머리에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안 수사님이었다.

청각 장애인인 봉 형님은 아버지의 구타를 피해 열다섯 살에 고향인 부안에서 가출했다. 넝마주이, 막노동,중국집 배달 일을 전전하다가 술에 빠져 번 돈 다 까먹고 신림동 시장통에 들어왔다. 시장통 입구에 자리를 펴고 앉아 동냥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터였다. 동병상련이라고 남들은 안 수사님을 인간 말종이라고 욕했지만 봉 형님의 눈에는 왠지 안 수사님이 불쌍하게 보였다.

봉 형님은 장대비를 뚫고 신림천 다리를 향해 냅다 달렸다. 밤 10시였다. 칠흑 같은 어둠에 불어난 하천 물은 콸콸거리는 굉음을 내며 목 아래까지 와서 생명을 위협했다. 다리는 거의 물에 잠겼다. 안 수사님이 있을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한 손으로는 다리 난간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태산 같은 급류에 저항하며 하천을 건넜다.

건너편 기슭에 시커먼 물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 수사님이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그를 들쳐업었다. 어릴 때 고향에서 지겹게 지고 나르던 쌀가마 무게도 안 수사님의 몸무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따 이놈 겁나게 무겁네잉~"

"개자식!" 사흘만에 봉 형님이 진료소에 모습을 드러내자 안 수사님의 욕설이 담긴 주먹이 작렬한다. 봉 형님은 살짝 피했다. 주위에서 말릴 틈도 없이 다음 주먹이 봉 형님의 얼굴을 향해 돌진한다. 봉 형님, 비록 주먹은 아우보다 한 수 아래지만 머리로는 절대 안 진다. 이 위기를 넘길 비장의 무기가 있다. 손 하나 까딱 하지 않고도 지난 20년 동안 안 수사님의 주먹질을 제압해온 카드다.

"썩을 놈, 너 신림천에서 뒈질 뻔할 때 누가 구해줬냐!" 폭풍 같은 봉 형님의 꾸지람에 안 수사님은 그만 급소를 찔려 버렸다. 이쯤 되면 게임 끝이다. 고양이 앞에 쥐가 되어 봉 형님에게 백기 투항한 안 수사님은 다시 봉 형님의 사랑스런 아우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흘 동안 진료소에 내린 비상계엄은 막을 내렸고 다시 평화를 찾았다.

그렇다. 못난 놈들은 이렇게 산다. 서로 얼굴만 봐도 단박에 그 시름을 알고 가슴속 불덩이를 느끼고 억지로 삼키는 눈물, 콧물을 눈치챈다. 고향을 따질 필요도, 출신 성분을 가릴 필요도 없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흥겨우니 남 탓할 겨를이 없다. 거짓말로 선동할 일도 없고 남 돈 버는데 배 아파할 이유도 없다. 소주에 오징어, 막걸리에 참외, 그리고 따뜻한 햇볕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못난 놈들의 눈물에는 화약 성분이 있다. 그 눈물이 모이면 태풍도 되고 쓰나미도 된다. 태풍도 나비의 작은 날갯짓 같은 작은 떨림에서 시작하니까 못난 놈들이 물이 되어 만나면 죽은 나무뿌리까지 적시며 흐른다.

아, 결국 착한 봉 형님이 도망간 박 씨 대신 안 수사님에게 삼만 원을 갚았다. "에잇, 징한 놈,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면서.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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