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 읽기]

야훼여, 어찌하여 멀리 계십니까? 이토록 곤경에 빠졌는데 모르는 체하십니까?
악한 자들이 으스대며 미약한 자를 박해합니다. 저들이 던진 올가미로 저들을 덮치소서.
악한 욕망 품고도 자랑스레 뽐내고 탐욕으로 악담하며 야훼께조차 코웃음 칩니다.
악한 자 우쭐대며 하는 말, "벌은 무슨 벌이냐?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이것이 그의 생각 전부입니다.
당신의 심판은 아랑곳없이 날이면 날마다 그의 생활 흥청거리고 반대자를 비웃으며,

"내가 망하는가 두고 보아라. 나에게 불행이란 없으리라." 하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내뱉으면 저주요, 입 안에 찬 것은 거짓과 폭언, 혀 밑에는 욕설과 악담뿐입니다.
마을의 길목을 지켰다가 죄없는 자 쳐죽이고 두 눈을 부릅뜨고 가엾은 사람을 노립니다.
숲속에 숨은 사자처럼 불쌍한 놈 덮치려 불쌍한 놈 기다리다가 그물 씌워 끌고 가서
죄없는 자를 치고 때리며 가엾게도 거꾸러뜨리고는 하는 말이,

"하느님은 상관없지. 영영 보지 않으려고 얼굴마저 돌렸다."
일어나소서. 야훼 나의 하느님, 저들을 내리치소서. 가련한 자들을 잊지 마소서.
악인들이 어찌 감히 당신을 깔보며 "벌받지 않는다."고 뇌까릴 수 있사오리까?
이 서러움, 이 억울함을 당신은 보셨습니다.
손수 그들을 붙들어주시니 당신은 가엾은 자들의 의지시며 고아들의 도움이시옵니다.
저 악하고 못된 자들의 팔을 꺾으소서. 저들의 죄 사정없이 물으소서. 깨끗이 벌하소서.

야훼께서는 영원무궁토록 왕이시오니 뭇 나라가 주의 땅에서 사라지리이다.
야훼여! 당신은 미약한 사람들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 마음 든든하게 해주시옵니다. 귀를 기울이시어
억눌린 자 고아들은 권리를 찾게 하시고 다시는 이 땅에 겁주는 자 없게 하소서.

(시편 10장)

ⓒ임의진
축축하고 끈적한 미역, 장마는 물비린내 진동하는 미역 같다. 날이 환히 개고 미역이 빳빳하게 마를 때면 다시 뜨거운 물에 풀어지기 전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비린내를 거두고 보송보송해 있겠지. 아주 가끔 비구름 속에서 얼굴을 비치는, 한줄기 햇빛이 너무 반갑구나. 평소엔 모르고 살지만 '비가 새는 천막 집'에 살게 된다면 화창한 날이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 줄 뼛속까지 알아차리게 되겠지.

고난 속에서야 우리는 감사를 배운다. 악인에게 참을 수 없는 괴롭힘을 당하고서야 의인들, 선량한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우둔하고 아둔한 우리들…….

고난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은 이미 부활 신앙의 준행이렷다. 성서에서 부활은 두개의 그리스어 낱말로 쓰였는데, '에게이로오'와 '아나스타시스'가 그것이다. '비분강개하여 일어서다', '타개책을 찾아 나서다'란 뜻을 포함하고 있는 낱말이다. 부활은 압제에 맞선 민중 봉기요 우중에도 꺼지지 않는 촛불 기도다.

억눌린 자, 고아들이 권리를 되찾는 것, 겁주는 자가 오히려 꼬리를 내리는 것, 그러한 세상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핏물 흐르는 폭력 진압과 교묘하게 빼앗기는 가난과 배신이나 외면이라는 씁쓸한 고난의 여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시편에는 악인을 가리키는 말로 오옙(정치적 원수), 초롈(선한 길의 반대자), 소네(미움이 가득한 자)란 세 가지 낱말이 각각 등장한다.

의롭다는 ‘찻딕’은 주님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 약자를 돌보는 연민의 가슴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찻딕의 반대편엔 ‘라샤’가 검은 그림자를 하고 서있다. ‘악하다, 거짓되다’라는 뜻으로, 라샤는 “꾸기만 하고 갚지 않는”(시편 37,21) 염치없는 욕심꾸러기들을 가리킨다.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나 악인이란 나누지 않는 부자들, 욕심쟁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윤리 도덕의 가장 높은 곳에는 경제 윤리, 경제 도덕이 있다. 이른바 마음공부, 마음 닦기, 정체 모를 명상과 영성을 찾아 맞춰 입은 옷처럼 개량 한복을 입고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경제 윤리, 경제 도덕에 일찍이 심한 상처를 입었거나 그쪽으로 여태껏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한편 경제적 욕심은 많고, 그만큼 채우고 채워도 허기지고 목마르자 혼란스러운 나머지 영적인 평안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거나 그렇더라. 문제의 요지는 경제다.

경제라는 이름 속에 성 문제, 가정 문제, 직장 문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의로운 사람은 자기를 위하여 쓰는 돈보다 이웃을 위하여 쓰는 돈이 더 많다.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욕심 부리고 세입자를 못살게 굴며 세금을 속이고 부당 이익에 눈이 벌건 사람이 바로 악인이요 공중에 떠도는 악령이다.

무슨 빗자루 타고 날아다니는 마귀할망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구약성서를 대표하는 악마, 우상의 이름 '바알'이란 무엇인가. 직역하면 '땅에 물댄 자', 경제 윤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악한 지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욕심 많고 인정머리 없는 건물주들, 과도하게 세를 올려 받는 집주인들, 도처에 목 좋은 땅을 사 놓고 투기에 몸 달아 돌아댕기는 땅주인, 복부인들이다.

악인들은 무엇보다 하느님이 없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 지구별과 우주엔 사실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더 많다. 하느님이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나은 쪽은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악인들은 차라리 하느님이 없는 편이 더 나을 것은 자명한 사실……. 그러나 그건 네 생각이고! "주님은 고아들을 보살피시는 분! 야톰 앗타 하이타 오제르!" 고아들 곁에 가보라. 하느님은 분명히 그들 곁에 같이 길동무 하며 살아 계신다.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 계신가? 하느님을 뜬금없이 우주 공간에서 찾지 말 일이다. 하느님은 가난한 골목, 약자들 곁에 눈물 흘리며 같이 계신다.

하느님은 사람으로 몸 입으시고 우리들 곁에 시방도 살아 계신다. 명실상부 갈릴리 예수는 하느님이 송두리째 사람이 된 케이스. 코 위에 난 뾰루지 하나만으로도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던데, 하느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난뱅이 목수의 아들로 세상에 부끄럼 없이 나타나셨다. 김밥이 없는 소풍이 무슨 맛이겠는가. 주님 없는 세상은 진짜로 재미없고 심심하고, 암울 암담, 캄캄한 어둠과 슬픔일 터. 신음하고 허우적거리는 우리들 곁에서 영생을 얻는 수영법을 가르쳐주시는 수영 강사! 우리 주님은 어디에서든 누구 곁에든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 우리를 함박웃음 짓게 만드시는 분…….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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