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공포위기로 몰아넣었다. 엘리트이자 꿈의 기업에 다니는 사촌동생 재승이 그 희생양이 될 줄이야. 은행직원의 말은 달콤했다. 펀드매니저가 알아서 다 해준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똘똘한 그가 꾐에 빠져 비극의 길에 들어섰다.

유혹인즉 이러했다. 펀드 매니저가 알아서 좋은 주식을 사고 팔아주니 위험부담이 적고 3년 만기를 채우면 30퍼센트 이상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말을 쉴새 없이 내뱉었다. 지난 3년 동안의 실적표를 들이대며 증명까지 해보였다. 적금의 연이율은 4퍼센트가 고작.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결심을 굳히는 것 같자 은행직원은 월급의 반을 펀드에 넣으라고 부추겼다. ‘원금보장’이 안 된다는 함정은 ‘만약의 경우’라는 단서로 피해갔다. 재승은 적립식 펀드라는 것을 들었다.

펀드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국민 1인1펀드시대였다. 펀드를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취급을 받았다. 직장인에서 시골촌부까지 대출을 받아 빚펀드를 하는 시절이었다. 똑똑한 외아들의 등쌀에 못이겨 아버지는 퇴직금 중 1억5천만원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월급의 반과 담보대출, 아버지의 퇴직금까지 몽땅 펀드라는 공룡의 입속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꼭 3년이 되던 날, 코스피 1000선이 무너졌다. 꽁꽁 언 미국경제는 대통령을 갈아치웠고 오른다던 중국펀드는 꾸준히 내려가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졌다. 하락의 조짐이 보이던 여름만 해도 그저 지나가는 소나기려니 했다. 소나기가 폭우로 바뀌고 둑이 무너지고 대박의 꿈은 쪽박이 났다.

▲선우경식기념자활터에서 노숙인이 농부가 되었다. 

오디밭의 사나이 그 청년의 직업은 농부다. 오늘도 일찍 일어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밭으로 나간다. 아침공기가 차다. 졸음을 몰아내기 위해 가슴을 활짝 펴 어깨를 돌리며 몸을 깨운다. 저쪽 산 위로 떠오르는 해, 열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니 오늘도 맑고 푸른 하루가 되겠구나. 첫 수확을 한다고 생각하니 마냥 설렌다. 상쾌한 아침공기가 가슴에 차오른다. 오디 밭으로 향했다. 송이송이 맺은 탐스런 새카만 열매들이 흐뭇하다.

오디는 땀방울을 닮았다. 빛깔 역시 검게 그을려 반짝거리는 그의 얼굴을 닮았다. 열매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피는 그의 눈빛은 자식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열매를 따서 입에 넣어본다. 씹는 순간 달콤한 즙과 향이 입안과 코에 가득 퍼진다.

땅을 매고 거름을 만드느라 거칠어진 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없애느라 상처 투성이인 팔뚝, 햇볕에 새카맣게 탄 얼굴, 땀에 절어 닳고 빛바랜 옷, 그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3천평의 밭은 비록 빌린 땅이지만 일곱식구의 생계가 달린 직장이다.

그는 선우경식기념자활터에 사는 일곱식구의 아버지이자 보호자요 그들의 동생, 주부, 머슴이다. 그들 모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노숙인이자 알콜중독환자다.

이곳에 오기 전 그는 서울에서 잘 나가는 일류조리사였다. 오만과 객기로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남은 건 알콜중독이었다. 직장도 가족도 그를 떠났다. 노숙과 술의 낭떠러지에 서 있는 젊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자활터를 통해서 성실, 정직, 양심, 땀, 수고를 먹고 산다는 농부의 길을 발견했다.

작년에는 유난히 봄 가뭄과 홍수가 심했다. 배추모종이 말라죽을까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던가. 온종일 땡볕에서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후딱 가버린다. 다행히 풍작이었다. 그러나 배추값은 똥값이었다. 절인배추와 김치를 담가서 팔았지만 일곱 식구의 입에 풀칠도 안됐다. 식구들의 실망과 흘린 땀이 눈에 밟혀서 괴로웠다.

그러나 이제 그는 농부다. 농부는 실망하지 않는다. 농사는 사람이 짓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낳는 것은 하늘이고 기르는 것은 땅이며 키우는 것은 사람이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농심이라고 초보농부인 그가 터득한 순리다. 무릎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한다.
“나는 농부다!”

▲고창 자활터 밭에서 머루를 돌보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생계를 정직하게 돌보고 있다.

요즘 조카 재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산다. 그가 투자한 돈은 몽땅 휴지가 되었다. 퇴직금을 날린 아버지는 쓰러졌다. 답답한 마음에 펀드매니저에게 전화를 하지만 ‘기다리라’고만 한다. 그를 볼 때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앞이 캄캄하다.

오디밭의 그 사나이도 그랬다. 작년 가을 똥값이 된 휑한 배추밭에 서서 그는 낙담했다. 그러나 그를 위로한 흙과 하늘이 곁에 있었다. 무엇보다 서로 얼굴만 봐도 힘이 되는 가족이 있었다. 이제 고향을 따질 필요도 과거의 울분에 한숨 쉴 필요도 없다.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단박에 그 시름을 알고 눈물 콧물을 눈치 채는 ‘못난놈들’의 가족이다. 그들의 땅과 보금자리가 여기에 있다.

술과 담배와 후회에 절여있는 파산직전의 조카 재승이 길을 찾고 있다. 그가 묻는다면 권하고 싶다.
“길을 찾는 그대여, 오디밭 그 사나이에게 가 보라”고.

발터 베냐민이 그랬다.
“우리에게 희망이 주어지는 것은 희망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에 의해서다”라고. 재승도 ‘못난놈들’ 속에서 다시한번 미래를 상상하고 희망하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기를 간절히 빈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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