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신부의 복음과 세상 이야기]

고자론의 두 가지 형태

▲ 2세기 호교교부 유스티누스
예수께서 세 부류의 고자들을 거론하신 단구(短句)가 마태오 복음서 19장 11~12절과 유스티누스의 <호교론> 1권 15장 4절에 수록되어 있다. 두 가지 기록의 표현은 약간 다르지만, 그 내용은 같다. 마태오 복음서에 실린 단구보다 유스티누스 교부의 호교론에 실린 단구가 예수님의 발설에 더 가까우리라는 설이 있다(요아킴 그닐카). 고자론의 두 가지 형태를 차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이 말을 누구나 파악하지는 못하고 오직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파악합니다. 사실 모태에서부터 그렇게 태어난 고자들도 있고 사람들에 의해 고자가 된 고자들도 있으며 하늘나라 때문에 자신을 고자로 만든 고자들도 있습니다.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파악하시오”(마태 19,11-12).

“사람들에 의해 고자가 된 이들도 있고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으며 하늘나라 때문에 자신을 고자로 만든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누구나 파악하지는 못합니다”(유스티누스, <호교론>, 1권 15장 4절).

고자론의 발설 배경

예수께선 왜 고자론을 전개하셨을까? 지금의 문맥을 보면 예수께서 이혼논쟁을 하면서(마태 19,1-9) 이혼을 반대하는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이 예수께 “아내에 대한 남편의 처지가 그렇다면 결혼하는 것이 이로울 게 없겠습니다.”(10절)라고 한다. 이에 답하여 예수께선 고자론을 말씀하신다(11~12절).

이런 구성은 마태오가 마르코 복음서에서 이혼논쟁(마르 10,1-12=마태 19,1-9)을 베끼고, 자기 교회에 구전으로 전해 온 고자론(마태 19,11-12)을 덧붙인 결과이다. 고자론은 본디 앞 문맥과 상관없이 구전된 단구이므로, 우리는 앞 문맥을 고려하지 말고 예수께서 고자론을 발설하신 배경을 대충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셨다. 그분을 따르던 제자들도 적어도 그분 생시에는 독신이었거나 결혼한 경우에도 일시적으로 아내와 떨어져 살았다. 그러니 결혼과 가정을 중시하던 당대 이스라엘인들이 보기에 예수 일행은 별종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헐뜯기 좋아하던 적수들이 예수 일행을 두고 고자들이라고 놀렸을 것이다.

험구에 대한 답변으로 예수께서 고자론을 거론하셨을 것이다(요셉 블린즐러). 언젠가 적수들이 예수더러 “먹보요 술꾼이며 세관원들과 죄인들의 친구로구나”(마태 11,19=루카 7,34)라고 욕설을 퍼부은 사실을 상기하라.

세 부류의 고자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을 '배냇내시'라고 한다. 생식기가 잘려 궁중 같은 데서 일하는 내관을 '깐내시'라고 한다. 이 두 부류의 고자들은 숙명적으로 또는 강압적으로 생식능력을 잃은 가련한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아주 달리 “하늘나라 때문에 자신을 고자로 만든 이들이 있다.” 하늘나라, 일명 하느님의 나라는 쉽게 말해서 하느님의 사랑이다. 이 말씀의 뜻인즉 하느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아니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1요한 4,8.16) 매료되어 독신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그렇고 제자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물의 비유와 진주 장사꾼의 비유를 상기하라.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자 숨겨 두고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그 밭을 삽니다. 또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꾼과 비슷합니다. 그는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자 물러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습니다”(마태 13,44-46).

▲ <Feast in the House of Simon>, El Greco(1610)
예수 일행은 하늘나라에 매료된 까닭에 오로지 그 나라를 알리는데 헌신코자 스스로 독신생활을 택하노라는 것이 앞에서 소개한 신국 고자론의 기본 의미이다. 아울러 예수께서는 종말신국도 염두에 두셨으리라 생각된다. 종말신국에선 “장가들지도 시집가지도 않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마르 12,25)고 하셨으니 저 독신생활은 종말신국생활을 예시하는 삶이라는 생각도 예수께서는 품으셨으리라. 그리고 당대 사람들이 거의 다 그랬듯이 예수님도 종말신국이 임박해 있다고 여기신 나머지 굳이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셨으리라(1코린 7,29 참조).

신국 고자론은 예나 이제나 은사(카리스마)를 받은 소수만이 이해한다. “이 말을 누구나 파악하지는 못하고 오직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파악합니다. ……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파악하시오”(마태 19,11-12).

동·서방교회에는 독신은사를 받은 이들이 수도원에 모여 사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 또한, 동·서방교회는 독신은사와 성직제도를 결부시키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서방교회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치세(527~565년) 때부터 부제급 이상의 성직자들은 독신으로 살도록 했다. 동방교회는 692년 콘스탄티노플 황궁의 돔 홀(trullos)에서 열린 트룰로 교회회의(Concilium in Trullo)에서, 일반 부제들과 사제들은 결혼하고 주교들은 독신으로 살도록 결정했다. 그 결과 동방교회에선 예나 이제나 독신자들이 모여 사는 수도원에서 주교가 배출된다. 그리고 예나 이제나 개신교회들은 독신은사를 매우 소홀히 한다.

독신은사 및 독신제도의 순기능과 역기능

열애와 결혼, 자녀와 가정이라는 가치를 포기하는 게 뜻이 있으려면 포기한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체현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그 가치를 일컬어 하늘나라라고 한다. 예수님의 정신에 따라서 거기다가 폭넓은 이웃사랑을 덧붙이는 게 도리이다.

모름지기 독신자는 한 사람의 남편이나 한 사람의 아내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그 대신 자유롭고 홀가분한 마음가짐, 몸가짐으로 만민의 벗이 되어야겠다. 언제 어디서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일에 흔쾌히 투신할 수 있는 게 독신의 큰 장점이다. 가톨릭 성직자들이나 수도자들이 독신인 까닭에 인사이동이 매우 용이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독신은사의 순기능을 살린 평범한 사례를 하나만 든다. 지난 몇 해 동안 서강대학교 교목실에서 학생들과 신 나게 어울리다가 홀연히 필리핀으로 떠난 소 스텔라 수녀 같은 분이 만인의 벗이 아닌가 한다. 서강대 학생들은 스텔라(라틴어로 별이란 뜻) 수녀를 별님이라 부르면서 무척 따랐는데 김재옹이란 학생은 별님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1991년부터 하던 성서반에서 별님이 정리해 주시던 마지막 몇 분은 늘 내겐 가장 귀한 시간이었다. ‘얘들아, 이성 못지 않게 감성도 중요해. 난 감정을 억지로 죽이려고 했었어. 근데 아니야. 감정은 살려야 해. 내가 마흔 살에 얻은 깨달음이니까, 너희에게 20년은 앞당겨 주는 거다’ ……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이 사랑이야. 사랑의 열매는 기쁨이야. 진실할 때 사랑이 오고 가’”(서강주보 1995. 10. 22).

현행 성직자 독신제도에는 순기능 못지 않게 역기능도 많다. 독신 성직자가 만인의 벗이 되기는커녕 대인관계가 일그러지고, 특히 여자들과의 관계가 비뚤어질 수 있다. 네덜란드 님베겐 대학에서 교의신학과 여성신학을 가르치는 리베 트로흐(Lieve Troch) 교수가 1995년 10월 20일 수유리 크리스챤 아카데미에서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란 주제로 강연하면서 “여자를 제대로 평가한 종교는 인류 역사상 단 하나도 없었다. 온 세상 모든 문화권에서 여성을 악의 화신으로 본 나머지 멸시하고 경계하고 두려워했다”고 단정했다. 동감이다. 여성에 대한 몰이해는 가톨릭 성직자 양성기관에서 심심찮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독신은사’가 불러온 웃지 못할 일들

이탈리아 어느 소신학교에서는 성직 지망 어린이들을 밀폐된 기숙사에서 교육하면서 여자는 마귀라고 거듭 강조했다고 한다. 이렇게 자라난 어린 소신학생들이 어쩌다 단체로 외출하게 되었는데 도처에 여자 마귀들이 우글거리는 것도 놀라웠거니와, 무엇보다도 여자 마귀들이 뿔도 없을뿐더러 흉측하기는커녕 매우 아름다운 까닭에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오래전에 들은 우스갯소리다.

나는 1950년대에 혜화동 가톨릭대학에서 기숙하고 공부했는데,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면 대학 뒤편 가르멜 수녀원 사제관에 기거하시던 고 선종완 신부님의 방을 두 해 동안 청소해 드렸다. 그런데 선 신부님은 도무지 여자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가르멜 외부 수녀가 심부름 와서 용건을 말씀드리려고 하면 선 신부님은 반드시 등을 돌렸다. 그러니 두 분은 뺑뺑이를 돌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꼴이 되었다. 어쩌다 선 신부님의 어머니가 찾아와도 신부님은 어머니 얼굴조차 쳐다보는 법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1989년에 우리나라 어느 가톨릭 신학대학에서 학장신부가 전교생을 모아 놓고 훈화하던 중에 경험이랍시고 들려준 말이 가관이다. “내가 소신학교 다닐 적에는 방학 때 집에 가서도 어머니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약간 섭섭해하시더라”(빛두레 1994. 6. 19).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교육을 받으면, 일단 사제가 된 다음 개인 생활에 있어서나 사목활동에서 탈이 나기 십상이다. 개인 생활에서 탈이 난 세계교회사적 사건 하나를 꼽는다면 파리의 석학사제 피에르 아벨라르(1079~1142)와 재색을 겸비한 소녀 엘로이즈(1101~1164) 사이의 밀애와 밀혼, 그리고 소녀의 숙부 사제가 석학사제를 거세시킨 불상사와 애인들의 생이별을 들겠다. 39세 석학과 17세 소녀가 시작한 불장난이 마침내 석학은 수도원장이 되고 소녀는 아들을 낳은 다음에 수녀원장이 됨으로써 살아생전에는 끝장나는가 했더니, 둘이 죽은 다음에는 묘하게 한 무덤에 합장되었다. 둘은 지금도 파리 제20구 페르라셰즈 공동묘지에 합장되어 뭇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계속해서 여러 문인에게 작품 소재를 제공한다.

끝으로 내가 겪은 망측한 일을 적어 본다. 나는 1974년 2월 광주 가톨릭대학 교수직을 사직하고 경북 청송본당 신부로 부임했다. 여러 해 동안 비어 있던 그 성당에 부임하니까 회장이라는 분이 이르기를, 기관장들과 유지들에게 인사하는 게 도리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마지막으로 청송경로당에 가서 노인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식솔들도 함께 이사 왔느냐고 노인들이 묻기에 “천주교 신부는 독신이라 딸린 가족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 대번에 경로당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한 노인이 벽을 바라보면서 “굼벵이도 짝이 있는 법인데” 하니까 다른 노인은 한 술 더 떠 천장을 쳐다보면서 “헌 짚신도 짝이 있는 법인데”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민망스러워서 서둘러 촌지를 내어놓고 물러나면서, 나라는 인간은 흉물 굼벵이만도 못하구나, 다 떨어진 헌 짚신짝만도 못하구나, 하면서 먼 하늘을 쳐다보고 헛웃음을 쳤다. 예수께서 고자 소리를 들었는데 나라고 별수 있나, 욕 얻어먹어도 싸지. 암 그렇고말고. 이럴 줄 미리 아시고 대사(大師)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제자가 제 스승처럼 되고 종이 제 주인처럼 되면 넉넉합니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 했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하겠습니까?”(마태 10,25)

정양모 신부

   
1935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성신대학(지금의 가톨릭 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60년부터 1970년까지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에서 유학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1970년부터 2002년까지 광주 가톨릭대학교, 서강대학교, 성공회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지냈다. 2005년부터는 다석학회 회장을 맡아 다석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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