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로어의 ‘급진적 은총’(Radical Grace)-6]

▲ <Thun with symmetric mirroring>, Ferdinand Hodler(1909)

선사(禪師)들은 말한다.
거울은 에고도 없고 마음도 없다고.
거울은 얼굴이 자기 앞에 나타나면 얼굴을 비춘다.
테이블이 나타나면 테이블을 비춘다.
굽은 것은 굽게, 곧은 것은 곧게 보여준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분별심도, 자의식(self-consciousness)도 거울한테는 없다.

무엇이 다가오면 받아들이고 떠나가면 떠나보낸다.
거울은 언제나 자기를 비워놓는다.
그래서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무엇이 제 속으로 드나드는 데 아무 전제조건도 달지 않는다.
자기 앞에 있는 것을, 보태지도 않고 덜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되비쳐준다.
거울은 완벽한 연인이고 완벽한 명상가다.
상대의 가치를 판단하여 심판하지 않는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충고 “생각 말고 그냥 보라.”에 백 퍼센트 충실하다.

하느님이 보시듯이 세상을 보려면, 먼저 거울이 되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이 되어서 ‘어떤 것’(some-thing)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참 사랑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길이 여기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의식의 완전한 전환(a complete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
인류가 사랑을 말하기 시작한 이래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 성인들, 신비주의자들, 구루들이 궁극의 목표로 설정한
의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가 우리한테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이것이 전환된 의식이다.
진실로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판단, 견해, 느낌,
T. S. 엘리엇이 자기 시에서 비판한 “막돼먹은 풋내기 감정들”로부터,
그것들의 독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의 영혼을 포함하여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들을 객체로 만드는
우리의 가짜 주체를 더 이상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영혼을 분석되고 판단되고 보충되는 객체로 여긴다.
어쩌면 오늘 서구 개인주의자들이 자기를 미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from 'Image and Likeness: The Restoration of the Divine Image.')

* 이 글은 '드림'에서 발행하는 <풍경소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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