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경 신부 장례미사 추도강론-권혁주 주교(안동교구장)]

 

"하느님, 당신을 뵙고 싶습니다."

2012년 4월 27일 엊그저께 저녁 7시 46분 정호경 루도비코 신부님은 개인적으로 한도 많았고 꿈도 많았던 72년간의 이승 삶을 마감하시고 저승으로 가셨습니다. 하느님 자비를 간구하며 드리는 가족들과 저희 사제들의 임종 기도를 마지막으로 들으시며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때 신부님의 얼굴은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저는 곧 바로 제 사무실로 와서 정 신부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좀 더 갖기 위하여 신부님이 손수 남기고 가신 자서전 타이핑 텍스트(A4 용지 33쪽)를 읽었습니다. 신부님이 손수 쓰신 이 자서전은 이미 몇 년 전에 인터넷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아직 출판되지는 않았습니다. 자서전은 ‘막돌(정호경 신부님의 호)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주로 해방 전후와 6.25 전후의 역사 체험 이야기로 신부님의 어릴 때 기억과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이 작은 이야기를 특히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바친다고 하면서 ‘다시는 세상에 사상싸움과 전쟁이 없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상싸움과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다름 아닌 신부님의 가족 이야기였으며 신부님 자신이 직접 겪은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사상싸움과 전쟁은 남북분단의 비극뿐만이 아니라 가족분단까지 가져와 정 신부님은 부모 잃은 고아 신세로 청소년기를 지내야 했고, 정 신부님을 포함해서 4남매(2남2녀, 여동생 정 다시아나 71세 생존)는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전개되는 이야기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고 때로는 난폭하고 처절하기까지 해서 눈물과 분노 없이는 끝까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비롭게도 이런 정 신부님을 당신의 도구로 쓰셔서 놀라운 일을 이루려 섭리하셨습니다. 정 신부님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당신의 삶을 사시다가 오늘 다시 주님의 사랑받는 사제로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생전에 당신의 장례 때 “주님,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라는 성가를 경음악으로 틀어 달라고 하셨는데, 아마 오늘 자신의 온전한 봉헌, 곧 자신의 죽음을 미리 염두에 두고 부탁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정 신부님은 당신이 손수 새긴 전각성경(<말씀을 새긴다>, 2007)에서 마태오 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심판 말씀(오늘 복음 - 마태 25,31-40)에 대한 단상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데, 함께 마음에 새겨보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우선 정 신부님이 새긴 성경 본문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 그 본문에 대한 단상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35-36.40)

단상
사람 : 하느님, 당신을 뵙고 싶습니다.
하느님 : 진정이냐!?
배고프고 외로운 이웃들, 외국인 노동자들, 전쟁 난민들, 환자들, 감옥에 갇힌 이들을 만 나 보아라. 이들을 만나는 것이 바로 나를 만나는 것이거늘!


짐작하건데 마태오 복음 25장에 나오는 이 본문과 이에 대한 단상은 정 신부님 개인에게 있어서도 평상시에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복음 말씀이며 복음 메시지로 사료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부류의 사람들이 한 부류 빠진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가난한 농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전히 제 짐작이긴 합니다만, 정 신부님이 의도적으로 이들을 드러나게 표현하시지 못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신부님 자신이 “가난한 농민”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는 것이 곧 하느님을 뵙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정 신부님의 단상에서 “가난한 농민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묻혀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정호경 신부님은 이 땅의 농민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농민들을 위해 투신하며 싸우시다가 스스로 농민이 되신 특별한 분이십니다. 농민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며 사람답게 사는 데 앞장서서 일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민주투사가 되시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정 신부님은 1970∼80년대 어려운 시기에 농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큰 버팀목 역할을 하셨습니다. 정 신부님의 이러한 정신과 소신은 모두 농민들을 위해, 농민들 편에서 농민들을 대변하며 사시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결과들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 신부님의 신앙도 특별히 ‘가난한 농민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뵙는 신앙’ 으로 영글어 갔던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죽을 고비를 여러 번(자서전에 ‘두 번’ 언급) 넘겼던 정 신부님은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애착도 많으셨고 꿈도 많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살고 싶어 하셨고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하느님을 뵙는 것으로 생각하셨고 그런 신앙을 끈질기게 간직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이러한 꿈을 펼치고 실현하는 데 있어서 때때로 ‘제도’라는 틀이 부담이 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1994년부터 안식년∼농촌사목!)

1994년부터 교구로부터 일절 생활비 보조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살아가기를 고집하셨습니다. 작년 5월 중순부터 몸이 불편하셔서 병원신세를 지면서부터 교구의 도움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정 신부님은 11개월의 투병생활을 하시면서 교구와 더 가까이 지내셨으며 사제로서 마지막 정리도 잘 하셨습니다. 만나시고 싶은 사람들도 다 만나셨고 죽음도 잘 준비하셨습니다. 신부님의 유언에 따라 각막기증도 하셨습니다. 신부님의 두 눈으로 빛을 보게 될 사람도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을 뵙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하느님의 자비에 맡김!)

권혁주 주교 (안동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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