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억압받는 민중들의 고통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압제자의 편입니까?"

▲안나 캐리건(Ana Carrigan)과 줄리엣 웨버(Juliet Weber) 감독의 DVD 다큐멘터리 <몬시뇰>(Monseñor: The Last Journey of Oscar Romero)
엘살바도르(El Salvador)에서 암살당한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의 마지막 여정이 안나 캐리건(Ana Carrigan)과 줄리엣 웨버(Juliet Weber)에 의해 DVD 다큐멘터리 <몬시뇰>(Monseñor)로 제작, 발표되었다.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된 지 32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이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은 없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민들 사이에서 걷고, 탄식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강론대에서 불의를 고발하는 로메로 대주교를 본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가?

나는 이 영감 가득한 DVD 다큐멘터리를 여러분이 구매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 다큐멘터리는 강의실, 교회 단체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더없이 좋은 자료이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교회의 실상과 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전쟁에 실망하고, 예언자적 화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제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도서관에도 이 다큐멘터리를 권하며, 이 다큐멘터리가 모든 교회에서 상영되기를 희망한다.

간디가 대주교로 돌아온 듯 보였던 오스카 로메로

엘살바도르 폭력의 뒷배였던, 어리석은 미국이라는 최악의 세상에 대항하여 교회 가운데 가장 교회다운, 그리고 용감하면서도 예언자였던 로메로 대주교. 그는 부드럽고 겸손했지만 도덕적으로 강직했고, 진실을 증언하는데 항상 선봉에 서 있었다. 그것은 흡사 간디가 한 명의 대주교로 돌아온 듯 보였다.

매일 저녁, 로메로 대주교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녹음기로 기록을 남겼다. 캐리건과 웨버는 로메로가 1977년 대주교로 임명되었던 당시, 한 벗의 죽음, 그 죽음에 항의해 대교구에서 오직 미사 한 대만 거행하겠다는 충격적인 결정을 하기까지의 고뇌 등을 다루었다. 또한 로메로 대주교가 엘살바도르의 군사정권에 맞서 예언자로 성장한 이야기부터 그의 운명적인 마지막 강론과 암살까지 로메로 대주교의 음성일기와 희귀 영상을 함께 풀어낸다. 다큐멘터리 <몬시뇰>은 교회 활동가, 인권변호사, 농민 게릴라 병사, 사제, 정치인, 소작농, 그리고 그의 친구들과의 인터뷰도 담아냈다.

다큐멘터리는 로메로 대주교가 살았던 초라한 주교관에서 시작해 그가 저녁 전례를 집전하던 중 총격으로 살해당한 성당으로 이어진다. 녹음된 그의 육성 연설이 흐르는 가운데, 가난한 마을에 들어서는 로메로 대주교, 그리고 그를 맞이하는 수많은 군중의 환호가 영상으로 이어진다.

다큐멘터리 초반부에 등장한 한 농부는 “로메로 대주교는 ‘저는 누구의 목자입니까?’라고 물은 뒤, ‘나는 억압받는 민중들의 고통에 속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압제자의 편입니까? 나의 사명은 권력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억눌린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대로 행했으며, 군사정권은 그분을 죽였습니다” 하고 증언한다.

 ‘정의’, ‘인권’, ‘살인의 종식’ 외치는 강론, 엘살바도르 전국에 중계

이야기는 로메로 대주교의 친구였던 루틸리오 그란데(Rutilio Grande) 신부의 암살로부터 시작한다. 진보적 예수회원이었던 루틸리오 신부는 새로 임명된 보수적인 대주교와 교류했던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참혹한 죽음은 로메로 대주교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 죽음으로 로메로 대주교는 공개적으로 살인자를 비난하고, 그 주말에 전국에서 오로지 단 한 대의 미사만이 거행될 것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와 같은 결정은 아마 교회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자들을 고무시키고, 미국을 등에 업은 정부 즉 우파 정당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미사의 장면을 본다.

이 미사의 강론을 마칠 즈음, 갑자기 사제들과 수녀들 그리고 신자들이 ‘정의’, ‘인권’ 그리고 ‘살인의 종식’을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매 주일 로메로 대주교는 장황한 강론을 통해 그 주(週)의 살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의 강론은 전국으로 중계되었다. 전국이 한 명의 가톨릭 대주교 강론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만면에 웃음을 띤 한 여성은 “그것은 열린 천국과 같았고, 우리는 지상에서 천국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하고 증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엘살바도르 군사정권, 통곡하는 어머니들과 아내들, 그리고 전국을 휩쓸고 간 폭력의 광풍에 대한 화면을 마주하기란 몹시 고통스럽기도 하다. 이런 모든 것들의 중심에, 신자들로 꽉 들어찬 성당에서 여전히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연설하고 있는 로메로 대주교가 있다. 그것은 흡사 마르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연설을 보는 것과도 같았다. 로메로 대주교는 전쟁과 불의에 대해 공격하면서 담대했고, 힘찼으며 또한 거침이 없었다. 오늘날 토마스 검블레튼(Thomas John Gumbleton) 주교를 제외하면, 그런 존재는 전혀 없다.

한 장면에서, 우리는 정부에 맞선 혁명세력과 회동한 날에 대한 로메로 대주교의 설명을 듣는다.

“나는 그들 안에 그리스도교의 비폭력 이상을 심어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의 힘이 아닌 오로지 무장폭력만이 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에 언론과의 대담에서 “나는 이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믿습니다” 하고 밝힌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비판하고 살인명령에 불복종할 것 역설한 예언자

▲로메로 대주교
<몬시뇰>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왜냐하면, 내가 엘살바도르에 살았던 1985년과 그 후 1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그곳을 찾았던 시절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1985년, 나는 ‘칼레 레알’(Calle Real) 난민 캠프에서 일하기 전, 이른바 ‘엘 데스페르타르’(El Despertar, 자각하는 사람)라고 불리는 ‘산 안토니오 아바드’(San Antonio Abad)의 스페인 사람들 거주지에 있는 작은 성당과 시설의 재단장을 도왔다.

엘 데스페르타르는 엘살바도르에서 예수회가 운영하는 난민 봉사단체의 새로운 본부가 되었다. 우리는 좀처럼 그곳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은 6년여 동안 문을 닫아야만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당시 29세였던 옥타비오 오르티스(Octavio Ortiz) 신부와 젊은이 4명이 암살부대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당을 청소했고, 사무실을 꾸렸으며, 전국에서 추방된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을 도와줄 몇 가족을 이주시켰다.

나는 옥타비오 신부의 영상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군인들이 캠프에 쳐들어와 그와 젊은이들을 쏴 죽일 당시, 그는 종일피정을 지도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젊은이들의 시체를 얇은 판잣집 지붕에 걸쳐놓고 옥타비오 신부와 젊은이들이 군인들에게 총을 쏜 것처럼 자동소총을 그들의 손에 쥐어놓고 위장했다. 옥타비오 신부의 엄숙한 장례식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그들의 죽음을 왜곡하는 거짓 발표를 맹렬히 비판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을 몰아세우고 진실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누군가를 본다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 안 좋아졌고, 로메로 대주교는 ‘모든 살바도르 군인들은 살인명령에 불복종할 것’을 역설했던 그의 운명적인 미사 때까지 이전과 다른 강력한 발언을 이어갔다. 다음날 밤, 로메로 대주교는 미사를 집전하는 도중에 암살당했다. 우리는 그 위대한 강론 영상을 보고, 그날 밤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녹음을 통해 듣는다. 그리고 며칠 후에 있었던 그의 장례미사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을 본다. 갑자기 살바도르 군인들이 군중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고 수십 명이 죽었다. 그렇게 그의 끝나지 않은 장례식은 그 후에 촉발된 악몽 같은 10여 차례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민중을 위한 목자가 되기가 이 얼마나 쉬운가!"

다큐멘터리는 증언으로 막을 내린다. 한 여성은 로메로 대주교가 그들의 교회를 방문해 잔치에 참여했던 것을 증언했다. 살바도르 전통 복장과 음식,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왔다. 농부들은 로메로 대주교에게 같이 춤추자고 요청했고, 놀랍게도 대주교는 그들의 춤판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는 “민중을 위한 목자가 되기가 이 얼마나 쉬운가!” 하고 외쳤다.

“맙소사” 그 여인은 웃으면서 말한다. “그처럼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로메로 대주교가 암살된 지 32년 후, 엘살바도르는 극도로 빈곤하고, 전례 없던 도둑의 창궐, 멕시코 마약 집단이 자행하는 범죄와 살인의 도시로 남아있다. 이처럼 위험한 상황은 지금까지 없었으며 엘살바도르는 현재 평균적으로 매일 12명이 살해되고, 올해에는 하루에 살해되는 사람 수가 18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14일 토요일은 최근 3년 동안 처음으로 엘살바도르에서 단 한 명도 살해되지 않았다. 그것은 지난달, 경쟁관계에 있는 폭력조직들이 평화협정을 맺은 탓인데, 폭력조직에 의한 폭력은 곧 멈출 것이라는 희망도 있다.

만약 로메로 대주교가 살아있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가정할지도 모른다. ‘만약 로메로 대주교가 살아있다면, 그는 오직 가난과 질병을 종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폭력조직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 무기 판매로 야기된 미국식 총기문화, 그리고 사회문제의 중심에 있는 미국의 마약 문제 해결에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을 것이다.’ 나는 로메로 대주교가 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마약 반대 활동을 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는 전쟁을 유발하고 불의한 정권에 협력하는 미국을 비난했을 것이다.

“나는 종종 죽음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1980년 3월 24일 암살되기 2주 전, 로메로 대주교가 한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만약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살바도르 민중 가운데 부활할 것입니다. 만약 살해 위협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그 순간 나는 엘살바도르의 구원과 부활을 위해 내 피를 하느님께 기꺼이 봉헌할 것입니다. 내 피를 희망이 곧 현실이 되는 표지이자 자유의 씨앗이 되게 하소서.”

우리 북미 사람들은 아직도 로메로 대주교와 살바도르 교회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어떻게 우리의 두려움과 무관심을 넘어설 수 있는지, 어떻게 일어서고 어떻게 외쳐야 하는지, 그리고 전쟁과 가난과 살인의 종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평화의 길에 계시는 비폭력의 예수를 따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다큐멘터리 <몬시뇰>과 여전히 실현 가능한 이 아름다운 실천의 모범은 정의와 평화를 위한 우리 활동의 아주 중요한 원천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로메로 대주교는 다시 모든 것을 넘어 우리에게 살아 돌아왔다. 그의 그리스도교 비폭력주의 이상에 유념하기 위해, 그의 예언자적 진리 설파에 이르기 위해, 그리고 그와 같이 부활의 사람이 되기 위해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영감을 불어넣기를 희망한다.

▲ 다큐멘터리 <몬시뇰>의 발췌 동영상

존 디어(John Dear, SJ) 신부 
예수회 사제이자 평화 활동가다.
또한 <지속적인 평화>, <당신의 칼을 내려 놓으십시오>,
<살아있는 평화> 등 20여 권을 저술한 작가다.


번역 : 김홍락 신부 (필리핀 빈민사목, 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기사 원문 출처/ NCR ‘Oscar Romero shines in documentary 'Monseñor'’ 2012.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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