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기획실장 이창근 씨]

쌍용차의 스물두 번째 죽음에 대한 기자회견이 있던 날, 경찰과의 대치로 아수라장이 된 대한문 앞에서 그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건드리지 마!”
경찰이 분향소 물품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었고 꽉 쥔 그의 손에는 죽어나간 쌍용차 노동자들의 얼굴 없는 영정사진이 들려있었다.

▲ 분향소 설치를 저지하는 경찰과 맞서는 이씨


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기획실장 이창근 씨, 그는 여러 가지 직함을 가지고 있다. 심리 치유 공간 와락 센터 기획팀장, 한겨레 21 ‘해고 일기’의 필자, 희망버스와 희망 뚜벅이 공동기획자,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

파란 잔디 위에 5000명이 모여서 다 같이 삼성의 문제들에 대한 책들을 읽는 ‘조용한 집회’를 해보고 싶다던 그를, 4월 12일 늦은 밤, 분향소 앞에서 만났다.

한겨레21에 연재하고 계신 ‘해고 일기’ 잘 읽고 있습니다. 매일 저녁 다양한 종교의식을 하고 계시군요.

네. 참 감사하지요. 일단은 지금 집회로 공간 열기가 쉽지 않은데 매일 종교인 분들이 오셔서 함께 해 주시니까.

또, ‘죽음’을 이야기해야 하네요.

그러네요...지금은, 좀 담담해 졌나 봐요.
열다섯 번째 죽음 즈음에서 해프닝이 있었어요. 작년 6월 정도에 쌍용차 해고자가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소문이 쫙 퍼진 날이 있었거든요. 저는 와락 센터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계속 전화가 와서 프로그램 중에 나와 미친 듯이 병원으로 경찰서로 뛰어다녔어요. 결국 아닌 걸로 확인됐죠. 그렇게 마음을 졸인 경험이 뭐랄까, 사람을 둔감하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번에 자살한 친구는 내용을 알아가면서 점점 마음이 복잡해져요. 본격적으로 해고자로 불이 옮겨 붙은 느낌이 확 든다고나 할까요. 그간 돌아가신 분들은 희망퇴직자 였는데 이 동지는 해고자 159명 가운데 한 명이거든요. 가속도가 붙는 거 같아요. 그게 두렵네요.

조심스럽지만,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과는 달리 쌍용차는 유난히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어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해고 과정도 매우 탄압적이었지요.  보통 정리해고 싸움이라는 것이 사측과의 싸움 정도인데 이건 국가 공권력이 동원된 ‘작전’수준의 진압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해고 이후에는 더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렸어요. 낙인이 찍혔지요. 이놈들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예요. 회사, 지자체, 정부 등에서 어떤 류의 조치, 사회적 선언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겨지는데 전혀 움직임이 없어요. 해고자들의 취업이 막히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구요.  극심한 좌절을 불러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건, 실제로...잘 모르겠는 면이 있는 거지요.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지 저로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어요. 

와락 센터는 성과가 보이나요?
(* 와락 센터는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료 센터로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선생의 제안으로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2011년 10월 30일 평택에 문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저는 참 좋았어요. 부채감, 미안함 이런 것들에서 좀 벗어난 것 같아요. 여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감정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라 힘들었거든요. 프로그램 후에 객관화 시키는 힘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센터에는 많이들 오세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리가 부러진 건 수술하면 고쳐지는 게 눈에 보이는 데 이건 마음의 병이니까요. 바로 알 수가 없지요. 괜찮은 것 같다가도 또 안 좋아지는 것도 같고. 지금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 상당히 넓고 수도 많은데 인력이 충분하지 못해서 다 못 안고 있어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요.

노조에서 최대 1000명 정도 연락이 닿는데 연이 닿지 않는 사람 중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평택을 떠난 분들도 많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와락에서 연락을 돌려서 사람 찾는 작업을 해볼까해요. 혼자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도록. 

▲ 12일 밤 대한문 앞에서. 그는 늘 아이패드를 끼고 다니며 트위터 등을 통해 현장 상황을 발빠르게 전달한다.


싸움이 길어지고 있어요.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경제적인 문제는 기본 일테고, 요즘  특별히 더 어렵다고 느끼시는 건 어떤 건가요?

“아직도 그거 하니?” 이런 거요.
저야  이제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 안 듣는데, 다른 조합원들은 주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많이 듣죠. 자기 딴에는 ‘정리하고 다른 일 했으면 좋겠다’라는 의미일 텐데 그게 상당히 큰 좌절감 이예요.

게다가 지역사회 여론도 좋지 않아요. 애들 학교, 학원 보내는 문제만 해도 갈등이 생겨요. 쌍용차 노동자가 한 아파트에 사는데 해고자와 비해고자로 나뉘어 있어요. 애들끼리도 같이 놀지 않고 부모들끼리도 부딪히고요. 일상의 분위기가 그러면 버티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그래서 공동체에 대한 필요성을 더 느끼셨나요? 희망 텐트를 하실 때 ‘공동체에 대한 또 다른 실험의 시작’이라고도 이야기 하셨는데요.

해고 되고 난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구나 하고 뼈져리게 느꼈어요. 노동자들이 오로지 회사에서 일하고 돈 버는 것만 알았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5년 뒤 내 삶은 어떤 것일지, 지역 사회에서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거죠. 그것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없었구요. 만약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지금처럼 상처가 깊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공동체가 밑바닥부터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현실적, 감정적 어려움을 함께 해쳐나가고 다른 삶의 방식들이 가능하다는 걸 우리가 알았다면.

그런 문화가 생겨나야 우리가 싸워온 과정, 그리고 정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당장 내일 쌍용자동차 해고자 전원 복귀 이렇게 된다면 해고 되었던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회사 편을 들 수 밖에 없거든요.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을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단순히 의지만으로는 안돼요. 우리 삶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느냐를 알아야죠.

지난 1월 13일간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사업장을 걸었던 희망 뚜벅이 행사 때 한 인터뷰에서 ‘이 작은 걸음에서  희망을 본다’고 말씀하셨어요. 의지적 희망인가요?

의지적인 부분도 물론 있습니다. ‘희망을 보고 싶다’는. 그런데 ‘희망이 없다’라고 생각한 적도  특별히 없어요. 싸움의 이유와 근거가 분명하잖아요. 끝까지 가면, 갈 수 있다면 이건 이기는 거잖아요. 누가 먼저 지칠 거냐 하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자본이 너무 잘, 강력하게 버텨서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전 당연히 우리의 요구 사항이 이뤄지고, 쌍용차의 진실의 문제가 밝혀질 거라는 생각해요. 지금 과정 중에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사람한테서 받는 힘이 정말 커요. 희망 뚜벅이를 하건, 희망 텐트를 하건 함께 하는 사람들을 볼 때 ‘아! 이런 거지. 이런 게 사는 거지!’싶어요. 즐겁고, 고맙고. 그 속에서 희망을 봐요. 그걸 발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복직이 더 가까이 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싸움의 끝’은 복직인가요?

형식적으로는 그래요. 그런데, 이건 제 생각입니다만, 우리가 정말 승리하는 것은 “쌍용차 복직을 하지 않겠다” 선언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물론, 생계, 그러니까 생존권의 문제는 중요하지요. 하지만 더 큰 것을 보고 싸우면 더 좋겠습니다.
우리의 복직이 단순히 고용관계가 회복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니까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승리하면 저희가 주장하는 여러 가지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소되면서 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해고자, 희망퇴직자 들도 우리를 통해서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조직 되지 않은, 혹은 투쟁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바라는 게 있으시다면요?

저를 포함해서 지금 투쟁하는 쌍용 노동자들은 기구한 운명에 있는 게 아니고 '운명적인 기회'에 놓여 있는 거라고 봐요. 계속 공장 다니고 돈 벌고 했으면 그런 삶을 살았을지 모르는데 그렇지 않은 삶, 새로운 세계에 와 있는 거죠.

이 세계를 잘 가꿨으면 좋겠다. 싸우는 과정에서 좀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보고 배우고, 그런 과정에 새로운 노동자들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바램이 있어요현실적인 어려움이 많기는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하면 인생 살면서 이런 기간이 다시 오지는 않을 거니까요.
여기서 더 최악이 어디 있겠어요.

먼저 간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많이 느껴집니다. 지금의 주동력인가요?

죽어나간 동지들에 대한 부채감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울 것 같아요.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어요.
우리가 해결 해야 하는 문제로, 의무감으로 다가오기도 하구요. 제가 특별히 감성적이라서가 아니라 파업 당시 집행 간부를 했기 때문일 거예요.
주동력이라.. 체크를 안 해봤네요. 관성화 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닌가, 이미 이 공간이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된 거다 라는 생각도 들고, ‘분노’ ‘가족’ ‘운동에 대한 당위’ 그런 것 있을 수 있는데 주동력은 뭐지 모르겠네. 지금은, 전진하기도 바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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