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소도 언덕이 있어야 등을 비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빌 언덕조차 없는 가난한 이들이 인생을 살아가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고달픕니다.


종선씨는 나이가 스물여덟인 청년입니다. 훤칠하게 잘 생겼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초기부터 손님입니다. 종선씨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릅니다.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18살 때 세상으로 나와서 막노동하면서 겨우 살다가 그만 허리를 다쳐버렸습니다. 일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앵벌이를 하면서 찜질방과 만화방을 전전하면서 잠을 잤습니다. 돈이 한 푼도 없을 때는 노숙도 했습니다. 조금 도와주겠다고 해도 혼자 버틸 수 있다고 사양하다가 저를 만난 지 4년도 넘은 올 봄에야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습니다. 자기를 조금만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어봅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노숙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보증금 오십만 원에 월세 십만 원인 단칸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중고 텔레비전과 냉장고도 들였습니다. 침구는 새것으로 마련했습니다. 조그만 가방 하나들고 종선 씨가 왔습니다. 조그만 가방이 이삿짐입니다.

허리 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동인천 길병원의 강미숙 선생님의 배려로 허리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주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구부려서 머리를 감을 수도 있다고 자랑합니다.

종선 씨는 스무 살 때 신체검사를 받고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는데 노숙하고 앵벌이를 하면서 공익근무를 했다가는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주민등록도 말소하고 지금껏 숨어서 살았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공소시효가 40세까지라면서 그때까지 숨어서 살겠다고 합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자수를 권유했습니다. 교도소에 들어가게 될 경우에는 뒷바라지를 해 주겠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런 후에 변호사를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천주교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변호사께서 경찰에 기소중지가 되었는지 알아본 후에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녀님께서 신부님을 통해서 알아봐 주셨습니다. 기소중지된 것도 없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몇 년을 그저 헛고생을 한 셈입니다. 비빌 언덕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의 슬픔입니다.

말소된 종선씨의 주민등록을 살렸습니다. 고용안정센터에 찾아가서 일자리를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제는 주민등록도 살렸고, 병원 치료도 해서 허리도 나았고, 몸 누일 따뜻한 집도 있고, 이제 일자리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답니다.

종선씨에게 이력서 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찾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면접 보는 방법도 가르쳤습니다. 신포동에 있는 호프 가게에 이력서를 들려서 면접하러 보냈습니다. 성공입니다. 토요일부터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한 달을 했습니다. 그 동안 종선씨에게는 민방위 훈련 통지서가 나왔습니다. 또 건강보험료 고지서도 나왔습니다. 첫 월급도 받았습니다. 겨우 60여만원이지만 평생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보았다고 합니다. 민들레 식구들에게 한 턱을 내겠다고 합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 몇 명과 함께 '인현 통닭'에 가서 삼계탕을 먹었습니다. 종선씨가 생전 처음 삼계탕을 먹어본다고 합니다. 한 그릇에 만 원이나 내고 삼계탕을 먹을 꿈도 못 꿨다고 합니다.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국물 한 방울도 남지 않았습니다. 종선씨가 한 턱 내려고 했는데 고맙게도 착하신 ‘인현 통닭’ 사장님께서 삼계탕 값을 받지 않으십니다. 고맙습니다. 

/서영남 200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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