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에 쓴 "삶의 의지를 불태운 사나이"라는 글의 후속편입니다. -필자


2003년 12월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갈비탕을 끓였는데 젊은 친구가 (그 당시 스물네 살) 생전 처음 먹어보는 갈비탕이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었는지요. 그 젊은 친구는 고아원 출신이었습니다. 막노동을 다니다가 허리를 다쳐서 겨우 앵벌이로 연명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좋은 분의 도움으로 허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치료 할 동안 노숙하지 않고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서 지내면서 치료받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 서울의 어떤 피씨 방에 취직해서 숙식제공을 받고 월 80-90만원은 받아서 지내다가 문을 닫는 바람에 다시 인천으로 와서 국수집 손님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굶었는지

민들레 식구가 되라고 해도 혼자 버틸 수 있다고 사양하다가 몇 달 만에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방을 하나 마련해서 살림살이를 마련해주고 반찬과 쌀 10킬로 한 포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불편한 종선씨의 허리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착하신 의사 선생님의 배려로 허리를 다친 스물두 살 이후 처음으로 병원 치료를 받아보는 것입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종선씨는 해산물 중에는 오로지 꽃게만 먹을 줄 압니다. 다른 생선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납니다. 고아원에 있을 때 꽃게무침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이 먹는다고 원장님께 혼이 났었답니다. 그런 다음부터는 꽃게 외에 다른 생선은 먹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종선씨는 오랜 가난한 생활로 밥을 먹을 때면 목까지 차오를 때까지 먹어야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야 밤중에 고픈 배를 끌어안고 뒹굴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덜 먹었다가는 밤중에 배가 아프도록 쓰리다고 합니다. 종선씨는 배만 부르면 감지덕지라고 합니다. 얼마나 많이 굶었는지 모른답니다.

종선씨가 자수하겠다고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는 스무 살 때 신체검사를 받고 공익 근무 판정을 받았는데 노숙하는 형편에 공익근무를 했다가는 굶어죽을 것 같아서 주민등록도 말소하고 지금껏 숨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공소시효가 40세까지라면서 그때까지 버티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종선씨, 내가 감옥 갇혀 있는 사람들 옥바라지가 전문이니까 자수하자. 베로니카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종선씨가 자수하겠다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먼저 인천교구 사회복지회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변호사께서 경찰에 기소중지가 되었는지 알아본 후에 판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녀님께서 신부님을 통해서 알아봐 주셨습니다. 기소중지된 것도 없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오랜 세월을 그저 헛고생을 한 셈입니다. 비빌 언덕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의 슬픔입니다.

고용안정센터에 찾아가서 일자리를 알아보도록 했습니다. 중졸 학력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산직인데 임금이 너무 박합니다. 급한대로 호프집에 아르바이트로 취직을 했습니다.

종선씨에게 민방위 훈련 통지서가 나왔습니다. 병역문제는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두려움으로 몇 년을 숨어서 지낸 생각을 하면 약이 오릅니다. 또 건강보험료도 나왔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인데도 만 사천 몇 백 원이나 나왔습니다.

좀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운전학원에 등록시켰습니다. 일산에서 조그만 택배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가 종선씨가 운전면허만 취득하면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필기도 합격했고, 코스도 합격했습니다. 도로주행도 합격했습니다. 일산에 가서 몇 달을 일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혼자 지내니까 너무 외로웠던 모양입니다. 8개월을 일하다가 밀린 월급 받는 것도 포기하고 그만 사라졌습니다.

제주도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니

그러다가 2008년 9월말에 종선씨가 민들레국수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산에서 일은 견딜 수 있었는데 외로워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제주도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니 살 것 같았다고 합니다.

베로니카가 동인천역 주변에 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고시원입니다. 이불과 살림살이를 챙겨주었습니다. 곧바로 식당에 취직을 했습니다. 음식 배달인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하기로 했습니다. 월급은 125만원이라고 합니다. 한 달 후부터는 매달 8만 5천 원씩 월급을 올리기로 했답니다. 본래 12시간 근무인데 종선씨는 돈이 적더라도 근무 시간을 좀 줄였으면 해서 10시간 근무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입영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3월말에 4주간 훈련을 시작으로 공익요원으로 근무해야 합니다. 앞으로 이년 동안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합니다. 공익요원에게 한 달에 이십여 만 원 주는 급료로는 살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노숙하기에는 너무 억울합니다. 고시원 월세가 비싸니까 민들레국수집 근처로 오라고 했습니다. 마침 민들레국수집에 오백만원 전셋집이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 어르신께서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오백만원 전세계약서와 전세집의 열쇠입니다. 방 한 칸뿐이지만 아주 작은 독채입니다. 관리운영권을 넘겨주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써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이 종선씨 방을 깨끗하게 도배해 주었습니다. 앞으로는 옆집에 있는 민들레 식구들과 화목하게 어울려 살면서 공익근무를 무사히 마쳤으면 참 좋겠습니다.

서영남/ 인천에 있는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면서 노숙자 등 가난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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