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박춘식]

▲ 십자가형,1400년, 독일

십자가 길 2

- 박춘식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말하는 (요한복음18:36)
예수님을 의아하게 바라보면서 로마 총독이 명령한다

예수를 저 세상 왕으로 등극시켜라 ‥‥
새 왕국 깃발을 올릴 십자가 깃대를 짊어지신 예수님
너무 무거운 깃대 때문에 넘어지신다
어머니는 치솟는 눈물로 아들 얼굴 닦아주시고
행차를 구경하던 시몬이 깃대 십자가를 잠시 지고 간다
수건에 찍힌 핏자국 가시왕관을 껴안고 통곡하는 베로니카
깃대가 등극 길을 짓눌러 사랑의 왕이 또 넘어지고
슬피 우는 여인들에게 자식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다
세 번째 넘어지는 십자가는 지진을 일으키고
흙 옷을 벗고 하늘 옷을 입는 피투성이 예수님
망치 소리 따라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이면서
등극하는 왕은 별빛을 딛고 하늘 왕좌에 오르신다
가슴 뻥 뚫린 아들을 품에 껴안은 어머니의 마지막 눈물
대관식 마친 왕이 잠시 쉬려고 돌 침상에 누우신다

사랑 임금으로 드디어 생명 임금으로 일어나시어
하늘 빛살로 우주를 둥글게 둥글게 축복하신다

<출처> 반시인 박춘식 미발표 신작 시 (2012년 3월)


십자가 길은,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중요한 과정으로 여겨집니다. 세상과 하늘나라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의 놀라운 계획은 세상과 하늘을 분리하거나 대립시키지 않고, 세상 안에 하늘을 심어, 세상을 하늘로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빌라도는 골치 아픈 청년을 간단하게 처리하였다고 생각하였지만, 십자가 길이 세상을 하늘로 바꾸는 신비의 길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야고보 박춘식 반(半)시인 경북 칠곡 출생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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