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그리스도인의 길-82

 

 

 

 

매일 아침 6시45분 경 나는 작은 가르멜 수녀원에 가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하고 묵상한다.
“매일아침”이라고 말하지만 예외도 있다.
피곤함, 바쁨, 그리고 선입견들이 나에게 가지 않아야 한다는 논쟁들을 자주 일으킨다.
그러나 하루에 한 시간 하느님과 지내지 않는다면,
나의 삶은 일관성을 잃고
나날을 마치도 우연적인 사건과 일들의 연속으로 경험하기 시작하게 된다.

가르멜 경당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 이상의 더 중요한 때이다.

그 시간은 깊은 기도의 시간도 아니며
하느님께 대한 특별한 가까움을 경험하는 시간도 아니다.
그것은 거룩한 신비들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때도 아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반대로 그 시간은 혼란, 내적인 불안, 졸음, 혼동,
그리고 지루함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거의 내 느낌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주님의 현존 안에 단지 한 시간을 마주하며 있다는 사실
그리고 아무것도 숨기려고 하지 않으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감지하며
경험하는 모든 것을 보여 드린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떻든, 어느곳에서든 나는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다.
내가 인간적 포옹을 느낄 수 있는 만큼 그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해도,
인간적인 위로의 말을 들을 수 있는 만큼
그분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해도,
인간의 얼굴에서 웃음을 볼 수 있는 만큼
그분의 웃음을 보지 못한다 해도
그분은 나를 사랑하고 있다.

여전히 주님은 나에게 말씀하고,
나를 바라보며,
내가 아직도 알아차릴 수 없는 바로 그 곳에서도
나를 포옹하고 있다.

내가 그분의 현존을 깨닫게 되는 유일한 길은
그 고요한 경당으로 되돌아가 아무런 실제적인 만족 없이
그곳에 있고 싶은 놀라운 갈망 속에 있다.

그렇다, 나는 깨닫는다, 아마도 오직 소급해서만 알아듣는다.
나의 나날과 주간들이 이러한 정규적인 “쓸모없는 시간들”에 의해 함께 있을 때에
비로소 새로운 나날과 주간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하느님은 나의 감각보다 더 크고,
나의 생각보다 더 크며,
나의 마음보다 더 크다.

나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자리에서
하느님이 나를 만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자리들을 거의 지적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숨겨진 기도의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내적인 충동을 느낄 때
나는 너무나 깊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물이 안전하게 흐르고 넓은 바다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하상(河床)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헨리 나웬 <감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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