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윤종빈 감독, 2월 2일 개봉

한마디로 재미와 감동이 균형 있게 실린 작품이다. <범죄와의 전쟁>은 영화를 오락거리로 보는 사람, 이를 통해 사유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모두 호소력 있는 영화다. 윤종빈 감독은 그간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보이즈>(2008)로 20대 한국 남성의 삶을 스크린에 담아 왔다. <범죄와의 전쟁>은 중장년층이 된 이들이 할아버지가 되어 아들에게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거운 바통을 넘겨주기까지의 서사를 담고 있다. 그런데 부제가 흥미롭다. ‘나쁜 놈들 전성시대’라니! 중년에서 장년, 노년으로 흘러가는 삶의 궤적은 남성 일반의 보편적 자화상이 아니던가?

‘나쁜 놈들’이라는 지시어는 전성시대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 평균적 한국인을 묘하게 타자화하면서 조폭영화의 계보를 되짚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는 <우아한 세계>(2007)에서 평범한 조폭 가장 강인구(송강호 분)를 통해 그들과 우리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동질감을 얻게 되었다. <부당거래>(2010)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센’ 검찰 조직과 조직폭력배의 유사성을 확인하면서 분노와 착잡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조폭과 검찰이 유착되면서 닮아가는 역사를 반추하는 동시에, 그들과 우리가 다르면서 또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1990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은 민생치안 확립을 목표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를 기점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이의 성과로 폭력조직의 일원인 최익현(최민식 분)이 검거되지만, 그는 자신이 깡패가 아니라 공무원 출신의 일반인임을 강조한다. 검사 조범석(곽도원 분)은 최익현과 같은 문중에 속한 상관에게 조폭의 계보와 역사를 무시하고 그를 검거했다고 질책 당한다.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 세무공무원이었던 최익현이 어떻게 폭력조직의 보스 최형배(하정우 분)와 인연을 맺고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반달’이 되어 호시절을 맞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최익현의 아래 대사는 이들이 어떠한 무기로 1980년대를 헤쳐 왔었는지 압축해서 전달한다. 최익현은 공무원 시절 익혔던 처세술로 최형배를 위기에서 구해주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먹을 들어 보이며) 니는 이거, 내는 이거(자신의 머리를 가리킨다).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배신의 경험으로 사람에게 곁을 쉽게 주지 못하던 형배는 익현을 신뢰하고 그를 대부님이라고 부르게 된다. 최형배의 조직 장악력과, 허세와 인맥을 앞세운 최익현의 로비력이 만났을 때 이들의 사업이 번창일로인 것은 당연지사.

 

 

 

 

 

 

 

 

 

최익현은 유혈 사태를 피하고 가급적이면 돈과 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인물이다. 반면 최형배는 건달은 주먹을 써야 된다는 정체성이 뚜렷한 만큼 이들의 공생관계는 오래 가지 못한다. 형배의 문제대처 방식에 익현이 불만을 표시하자 형배는 그에게 “그러면 대부님이 건달입니까?”라고 외치면서 쌓였던 감정을 분출한다. 이때 그가 던진 재떨이는 거울을 깨뜨리고, 익현은 산산조각 난 거울을 멀거니 응시한다. 하지만 거울은 금이 간 그들의 관계만을 비출 뿐, 그는 비춰지지 않는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최익현의 위상을 의식하는 것처럼 카메라는 허옇게 금이 간 거울의 표면만 보여주는 것이다.

공무원일 때도 그런 인물이었지만 검찰 수사망에 오른 반달 최익현에게 의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오로지 이기는 것이다. 그것은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승리인 동시에 출세한 자손을 통해 보장받고자 하는 인생의 승리이다. 따라서 그는 밥상머리에서 짬짬이 아들의 영어공부를 돌봐주는 등 가장의 책무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승리를 거두었는가? 범죄와의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칼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그는 “내가 이겼다”라고 중얼거린다.

이제 그가 싸워야 할 전쟁터는 가족이다.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가족애를 그가 원하는 대로 관철시키는 일이 남은 것이다. 영화 말미에서 아들이 “(아버지가 자신의 방황을 참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전쟁 역시 쉽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어쨌든 그는 주먹들과의 전쟁에서 머리 하나로 살아남았고, 아들을 출세시킴으로써 성공적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그를 끝까지 승자로 인정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부분에 균열을 가하면서 흥미로운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

최익현은 부도덕한 가면을 기꺼이 쓰더라도 ‘처자식 배 안 굶기면서’ 살아남고자 했던 우리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그가 공무원 조직에서 폭력 조직으로 부서(?) 이동을 하면서 가장으로서의 로망을 달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현실 풍자적 코미디 <투캅스>의 주인공들은 비리 경찰(공무원)이었다. 같은 시대 조폭영화들은 검찰(공무원)과 손을 잡으면서 과거를 청산하는 조폭-<넘버3>(1997)-과 조폭의 피해자인 막동이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심리적 구도-<초록물고기>(1997)-를 보여주었다.

2000년대 들어 쏟아진 조폭영화들은 이와 다른 접근법을 갖는다. 조폭이 감정이입의 우선적 대상이 된 것이다. 이들은 집안의 부족한 면을 결혼으로 보완하려는 일반인들의 소망-<가문의 영광>(2002)-을, 연기자가 되어 매력을 발산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영화는 영화다>(2008)-을 대변한다. 여기서 <가문의 영광>이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엘리트 사위의 위상이 검사 며느리로 역할 전환되는 과정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검찰과 조폭이 견제와 야합을 하면서 유착되는 서사를 본격화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예비했던 작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과거 미국의 서부극이 그러했듯 2000년대 한국의 조폭영화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탐구하는 정체성의 장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문명과 야만, 법질서와 악행처럼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 안에 국가의 영혼과 정체성을 보여준 서부영화와 한국 조폭영화의 비교는 더 많은 지면을 요하는 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조폭영화가 우리 현실에 대한 페이소스를 자아내게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겠다.

 

 
 
진수미(카타리나)
시인, 한국문학과 영화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 <시와 회화의 현대적 만남>을 썼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출신. 작은형제회 <평화의 사도>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가톨리시즘이 담긴 시를 같은 지면에 소개했다. 덧붙여, 시는 영혼이고 영화는 삶이다. 펄프 향 풍기는 ‘거기’서 먼지와 정전기 날리는 ‘여기’로 경로 이동 중. 덕분에 머리는 산발이지만 약간 더 명랑해지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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