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 간곡한 부탁의 글을 드리는 것이 참으로 송구합니다.

민족의 명절 설 연휴를 잘 보내셨나요?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밀린 이야기와 따뜻한 정도 나누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설날 밥상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셨는지 궁금합니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 이야기도 많이 나누셨겠지요. 선거나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해 본 적은 없지만 잘못된 법과 제도를 바꾸거나 제대로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한 우리의 일이고, 국회의 구성비율이나, 정부의 입장이나 국정운영방향이 인권을 현저히 후퇴시키기도 하니 선거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용산참사를 일으킨 직접적인 장본인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경주에 출마한다니 다른 곳은 몰라도 경주에 가서 그 사람은 꼭 떨어뜨리고 싶은 심정도 듭니다.

오늘 메일을 드리는 것은 3년전 용산참사 때 구속되고, 장애를 가지게 된 10명의 철거민들에게 작은 온기를 나누자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인 1월 20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꼭 3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영화제도 열고, 추모대회도 하고, 북 콘서트도 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용산 철거민 다섯분의 제사를 잘 모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또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강제퇴거금지법’을 국회에 발의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아직도 이행되지 않은 합의이행의 약속도 확인했고 마석 모란공원 묘역을 찾아 눈물의 성묘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싶었을 10명은 결국 오지 못했습니다.

안양교도소 수번 2944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 
전주교도소 수번 1261 김대원 용산4구역 철거민 
공주교도소 수번 1305 김재호 용산4구역 철거민
여주교도소 수번 333 김성환 용산4구역 철거민 
춘천교도소 2004 김주환 신계동 철거민 
대구교도소 수번 30 천주석 상도4동 철거민 
순천교도소 수번 1110 김창수 성남 단대동 철거민 
대전교도소 수번 3100 남경남 전 전국철거민연합 의장


이충연은 징역 5년 4개월 중 3년을 복역하고 2년 4개월이 남았고, 김주환은 징역 5년 중 3년을 목역하고 2년이 남았고, 남경남은 징역 5년 중 2년을 살아 3년이 남았고 , 김대원, 김재호, 김대원은 징역 4년 중 3년을 복역하고 1년이 남았고, 천주석과 김창수는 징역 4년 중 징역 2년 3개월을 복역하고 1년 9개월이 남았습니다. 지난 설전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특별사면에서도 이들 8명은 아무도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이들만큼 답답한 현실을 마주한 두 사람이 또 있습니다. 서울 순화동 철거민 지석준과 지금동 철거민 김영근입니다. 이 두사람은 검찰이 처음부터 구속을 시키고자 했지만 두 사람의 부상이 너무 심해 구속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미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계속되는 수술과 입원치료 탓에 항소심은 중단되어 있습니다. 어제고 항소심이 개시되어 형이 확정되면 이 사람들은 이제 4년의 징역을 살기위해 감옥에 가야 합니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수술비와 치료비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주점을 열고, 모금을 하여 지금까지 충당해 왔습니다. 치료 때문에 일도 못해서 생계도 가까스로 이어가고 있고, 이 차가운 겨울에 난방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알고 계시는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2009년 1년 동안 용산참사 현장에서 살면서 용산범대위의 살림살이와 유가족지원을 담당했습니다. 유가족들과 용산4구역 철거민들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법적대리인으로 서울시를 비롯한 정부와 60여 차례의 협상을 진행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당신 용산범대위 식구들과 유가족들, 구속자들과 구속자 가족들, 그리고 아직도 곳곳에서 비닐천막을 짓거나 마음속에 망루를 쌓는 철거민들에게는 용산참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용삼참사는 잊혀져가고 있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구속된 이들이 다 세상 밖으로 나오고 2009년 1월 20일 용산에서 있었던 그 ‘죽음’과 ‘죽임’의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용산참사는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 싸움을 버텨온 힘은 이 땅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양심과 눈물이었습니다. 전국에서 정말 대단하고 끊이지 않는 후원과 응원을 보내주셨었습니다. 시골의 작은 성당, 교회, 사찰은 물론 아이들 공부방, 장기투쟁 중인 파업현장에서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보내주셨습니다. 당시 모금함을 정리하면서 하얀 봉투에 씌여진 ‘쌍용차 가대위’라는 글씨를 보고 봉투도 열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또 다른 망루를 짓고 옥쇄 파업 중이던 쌍용자동차 해고자 노동자들의 가족들은 남일당에 올 때 마다 그렇게 조용히 모금함에 봉투를 넣고 갔습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돼지 저금통을 들고 온 초등학생 남매, 전교생이 동참한 모금함을 보내 온 광주의 한 여고 학생들, 대기업 노동조합이나 대규모 산별노동조합 보다 훨씬 많은 모금을 해 주셨던 건설일용노조 동지들... 당신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길고 먹먹했던 1년을 버텨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2월 초 전국에 흩어져 있는 8명의 구속자들과 2명의 부상자들을 만나러 갈 계획입니다. 그때까지 모인 후원금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1만원이든 10만원이든 ‘한국 천주교’ 이름으로 이 분들께 전달할 생각입니다. 작은 액수도 상관없습니다. 5천원, 1만원을 모아 이분들께 아직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음을, 우리가 여전히 당신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이분들이 이 차가운 겨울의 막바지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저부터 이번 설에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해 주시는 한 신부님께서 ‘설빔’ 사 입으라고 주신 봉투를 그대로 모금함에 넣었습니다. 작은 정성이 모여 반드시 큰 울림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 메일을 다른 천주교 사제, 수도자, 자매, 형제들께 전달해 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이겠습니다. 

국민은행 375301-04-080769 김덕진(용산진상규명위)

2009년 1월 20일 오후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여 다섯시간 넘게 시신 확인을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시신을, 아들이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겠다는 것도 막아선 공권력이었습니다. 유가족들과 함께 새까맣게 타버린 다섯 구의 시신을 확인하던 순간, 오열하는 가족들을 부축하며 저는 시신 사진을 찍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릅니다.

정부가 몇 개월동안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용산을 계속 억압할 때, 그 시신 사진을 공개해서 이 정부와 공권력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보여주자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들과 같은 방식으로 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처참한 사진들은 지금도 제 USB 메모리에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그 참혹한 장면이 남아있는 한, 용산참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마음이시리라 믿습니다. 길었습니다. 새해에도 무탈하시길 기원합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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