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변진흥]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 드디어 지난 10월15일 ‘전 세계 행동의 날’ 오후 2시에는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앞에서, 오후 6시에 서울광장에서도 분노를 표출했다. 외신들은 “이날 전 세계 82개국 1500여 개 도시에서 유사한 시위가 벌어졌다.”며 “시위가 발생한 곳은 뉴욕 워싱턴 런던 브뤼셀 로마 베를린 도쿄 서울 시드니 등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었다.”고 전했다.

무엇이 이들을 분노케 하는가?

이들의 구호는 간명하다. 그러나 내용은 풍부하다. 그리고 긴박하다. 지난 5월 스페인 마드리드 광장에서 텐트 3채로 시작된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의 시위가 5개월 만에 미국 워싱턴에서 “우리는 99%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벌이는 시위로 되었고, 이제는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이슈도 “그럼 나머지 1%는?”으로 구체화되면서, ‘분노의 실체, 그 1%란 의문’의 모습을 벗기는 분노의 불길로 점점 더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미국 국세청(IRS)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가 대략 전체 소득의 21%, 재산의 35.6%, 금융자산의 42.4%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위기는 바로 미국 금융자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상위 1%에 놀아난 결과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 엄연한 현실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면서 시위는 불붙는 장작에 기름 부은 격이 되었다.

실제로 이 1%는 “돈으로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현대사회의 신화를 입증해 보인 것이다. 이 1%는 돈의 힘으로 정치인, 관료, 언론, 학자 등을 모두 매수, 이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금융위기 속의 긴급수혈마저 제 혈관 속에 빨아들였다. 마치 흡혈귀처럼.

“최고경영자 리처드 풀드 등 리먼 브러더스의 고위 임원 5명이 2000~07년 번 돈은 10억 달러 이상. 2008년 회사 파산에도 불구하고 이 돈은 고스란히 챙겨갔다. 2008년 10월 수십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은 메릴린치의 최고경영자 존 테인은 2개월 뒤 임직원들에게 36억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고 자기도 수백만 달러를 받아갔다. 전임자 스탠 오닐은 퇴직금으로만 1억6100만 달러를 가져갔다. 실업률이 최고조에 올랐던 2009년 모건 스탠리는 140억 달러, 골드만 삭스는 160억 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한겨레 10월20일자)

이처럼 ‘불편한 진실’이 밝혀진 후 99% ‘분노의 포도’는 1% ‘포도 씨’를 향해 포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포도 씨’의 명패가 바로 ‘신자유주의’, 아니 신자유주의가 곱게 쌓아올린 ‘1%란 이름의 바벨탑’이 아닐까?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0월24일자 연합뉴스가 밝힌 ‘금융권 비리백화점’ 기사는 ‘한국판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금융감독원의 통계를 인용한 이 기사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횡령․사기․배임 등 부패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 이들 비리백화점의 주요 메뉴는 ‘부당대출․신용정보 무단 열람 극성’, ‘계열사 부당 지원․이사회 회의록 조작 예사’, ‘가공 거래에다 분식회계 지원’ 등 다양한 것으로 소개 되었다. 과연 미국보다 더 미국다운 모습으로.....

▲ 미국 월가 점령 시위가 전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행동의 날인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위원회에서 WE ARE THE 99% 여의도를 점령할 사람들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금융자본의 탐욕 공격 시위를 갖고 있다. 세계 80여개국 900여개의 도시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민중의 소리

정말 불편한 진실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월가 점령’ 신화의 신속한 전 세계 보급에 놀라고 즐거워하지만, 나처럼 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은 뭔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의문 속에 빠져든다. 어떻게 오바마가 이 ‘월가 점령 시위’에 대해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손을 들어주게 되었을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금융강국으로 나갔다”는데 어떻게 금융 핵기지를 융단폭격하는 월가 점령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보통 알기로는 월가를 대표하는 그 1%는 유대인 손에, 그리고 군수산업 재벌들의 손에 있을 것인데 과연 오바마가 그러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재선은커녕 월가의 쿠데타에 쓰러지는 것은 아닐까? 결국 노무현처럼 되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도 비슷한 모양새가 없지는 않은 듯하다. MB정권이 등장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기치아래 ‘친(親)기업’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대기업을 위한 온갖 규제 완화, 금융 특혜 등 모든 특혜를 베풀었다.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의 그림자를 어느 선진국보다 먼저 지우면서 경제안정(?)을 되찾았다고 자랑하고,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마치 G3나 되는 것처럼 경제강국으로 떠오르는 듯 ‘세계 속의 한국’ 모습으로 ‘한류의 아이돌’처럼 ‘폼’을 잡았다. 그런 MB정권도 드디어 말기에 접어들자 온갖 은전을 베풀었던 대기업에 본격적으로 서운한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기름값 인하도 그렇고, 반값 등록금 해결도 그렇고, 카드사 수수료 인하문제에 이르기까지 1%의 뱃살을 빼는 작업이 결코 순조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1%가 0.001%라도 양보하면서 청년실업문제 해결, 반값 등록금 해결, 부자세 수용 등 선심을 써야 MB정권의 출구전략이 빛을 볼 수 있는데.... 오바마는 재선의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MB는 곧바로 출구전략을 짜야 하는데 그 1%는 냉혈한처럼 외면만 하고 있고..... 그런 진퇴유곡 속에서 퇴임후 사저문제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할만큼 홀로 고립되는 모습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나 싶다. 그런 MB에게 일말의 구원의 손길도 내밀지 않는 ‘한국의 1%’, 그들은 ‘워싱턴의 1%’에 조금도 못하지 않다. 아니 더 위대해 보인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 워싱턴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도시를 연결하는 ‘제2의 촛불시위’를 가능케 한 것은 아닐까? 그 해답을 혹시 위키리크스는 알고 있지 않을까?

고르바쵸프와 오바마

이번 월가 점령 시위의 세계 확산을 용인한 오바마를 구 소련의 개혁 개방을 주도한 고르바쵸프와 비교하는 것이 쌩뚱 맞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둘 다 의외의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체제 개혁의 전도사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고르바쵸프는 구 소련의 체제 내외적 모순을 정확히 간파했다. 동서진영 싸움에서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군비경쟁이 결국 ‘폭탄 돌리기’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폭탄은 자유진영보다 공산진영에서 아니 모스크바에서 먼저 터지게 된다는 점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폭탄 돌리기’ 게임 포기를 선언했다.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을 중단하고,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게된 고르바쵸프는 소련사회가 중증 동맥경화에 걸려있음을 느꼈고, 그 해법을 ‘1% 노멘끌라뚜라(새 특권귀족층)’로부터의 해방에서 찾았다. 또한 1%의 소련이 세계공산진영 전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의무감으로부터의 해방을 시도했다. 그 결과 아프간 철군과 독일통일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1%의 반발은 쿠데타를 가져왔고, 옐친에 의해 쿠데타에서는 구출되었지만, 다시 옐친에 의해 버림받으면서 고르바쵸프는 3라운드까지 뛰어보지 못하고 링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는 푸틴에 의해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가 월가 1%에 맞서는 것은 고르바쵸프의 운명을 예감케 한다. 그래서 오바마는 자유진영의 잠재력인 ‘99%의 평화시위’에 배팅을 한 것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오바마 재선 가도에는 그 1%의 쿠데타 힘이 작용할 것이다. 그래도 오바마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토록 무기력해 보였던 노무현의 그림자가 결코 무의미하지 않게 드러나는 오늘의 한국현실을 보면 더 더욱 그렇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99%는 또 다시 제로로 돌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끝까지 신자유주의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아마도 인류사회는 ‘미국에서의 푸틴 등장’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될지도 모르겠다.

탐욕을 점령하라!

해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촛불시위처럼 번지는 ‘월가 점령 시위’가 끝까지 해결의 주체일 수는 없다. 그것은 대안을 내놓으라는 충격일 뿐이다. 1%에 가해지는 충격이 1%를 제어할 수 있는 정치력을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한 정치력을 이루어 놓지 못한다면, 1%는 납작 엎드렸다가 다시 기지개를 펼 것이다. 그 정치력은 오바마도 고르바쵸프도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곱씹어볼 때다.

그 힘은 99%가 1%를 닮지 않고 건강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가 점령 시위’는 99%가 모방했던 ‘탐욕의 길’을 포기하고, ‘탐욕의 기지’를 점령하여, ‘탐욕의 문화’를 해체하는 것이다. 정치가 1%의 뱃살을 줄이지 못하더라도, 99%가 1%에 등대고 돌아서며 서로의 손을 잡고, 탐욕을 넘어선 진정한 협력의 길을 찾는 것이다. 99%가 선거를 통해 1%의 대변자를 거부하고, 99%의 대변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무엇인가. 바로 ‘나’다. 400억 원이 넘는 로또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내 모습, 뉴타운 건설 미끼에 소중한 한 표를 던져버리는 내 마음 속의 탐욕을 점령하기 전에는 월가 점령 시위 역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머물거나 한 때 열병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현실에 밀려 ‘승자독식의 사회’를 예찬하고 마는 자신의 모습을 통절하게 되돌아보지 않고는, “신자유주의시대 ‘잉여’ 청년이 겪는 삶의 위기”(한예종 총학생회장의 애도문)를 극복할 힘이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오로지 해답은 ‘내 안의 1%, 그 탐욕을 먼저 점령’하는 것. 그 모퉁이 돌에 있다.

변진흥 (가톨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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