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선 여사 영결식, 2천여명 운집 마지막 길 배웅
아들 만나러 가는 길, 이 세상 걱정말고 부디 편히 가소서...

전태일재단과 민주노총, 한국노총 주관으로 이소선 여사의 장례가 지난 9월 7일 치러졌다. 아침 8시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예배를 드린 것을 시작으로 오전 10시부터는 대학로에서 영결식을 갖고, 이어 오후 1시부터 전태일이 분신한 장소이기도 한 전태일 다리에서 노제가 벌어졌다. 오후 3시가 넘어서야 끝난 노제에 이어 이소선 여사는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되었다.

▲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유족들과 창신교회 신도 등 지인들이 참석한 이소선 여사의 발인예배에서 조헌정 목사(전태일재단 이사장, 향린교회)는 “이소선 어머니가 80년 동안 남긴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은 다 표현할 수 없다”며 “삶의 그릇이 너무나 크고 넓고 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족에게는 “예수는 죽음을 잔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예수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깨어있어야 하는데, 어머니가 그 본을 보여주었다”며 “이렇게 깨어 산 전태일과 어머니 드 분을 가족으로 둔 유족들은 오히려 기뻐할 일”이라고 전했다. 한편 가족들을 위로하며 “전태일 동지와 어머니가 가족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오히려 안으로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며 유족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깃들기를 기도했다.

이어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의 못 다한 생명을 이어받아 님의 몇배 몇십배 몇백배로 열매를 맺었다”며 “자칫 한 귀퉁이에 묻힐 수도 있었던 님의 고귀한 이웃사랑과 희생정신이 꺼지지 않고 생명의 불로 타오르도록 한 이소선 여사는 우리 모두의 영원히 살아계신 어머니”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소선 어머니는 자신이 못다 이룬 것을 우리가 이어가기를 원한다”며 “부산영도에서, 쌍용에서, 시청 앞 재능현장에서, 명동마을에서, 포이동 261번지에서, 제주 강정마을과 청계천에서 노동자들과 철거민들의 아픔 속에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 이소선 여사의 '부활도'를 함께 지고 가는 노동자들.

▲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이소선 여사의 영정을 받들었다.

▲ 소리꾼 장사익이 추모노래를 부르고 있다.

▲ 모든 참석자들이 노제에 앞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 백기완 선생은 조사를 통해 "어머니께서는 한이 복바쳐 숨결보다 더 가팔랐습니다. 하지만 속을 뒤집는 그 한으로 역사를 달궈치는 앞장이셨습니다. 또 어머니께서는 온몸이 노여움으로 조직된 한 덩어리 폭탄이었지만 그것을 다스려 해방, 평화운동의 추진력으로 일구시는 지혜의 어머니였습니다"라고 기렸다.

당신은 누워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서 있지 않았습니다.
늘 숨차오르며 걸었습니다, 내달렸습니다.
사람이 사람 아닌 때로부터
당신의 언어는
사람이 사람일 때를 위하여
반생애의 미래 다 바쳐
시퍼런 달밤의 언어였습니다.
어제는 위로였고
오늘은 독전(督戰)이었습니다.
- 고은 시인의 조시 중에서 -

발인예배가 끝난 후, 10시부터는 2천여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대학로에서 영결식과 노제가 치러졌다. 영결식에서는 상임장례위원장 배은심씨,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이옥경 故 조영래 변호사 부인, 김영훈 민주노총위원장과 이용득 한국노총위원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이소선 여사의 영전에 마지막으로 꽃을 바치고 나서, 운구행렬은 대학로에서 청계천 ‘전태일의 다리’로 향했다. 힘이 들 때마다, 아들의 모습이 사무칠 때마다 찾아와 아들의 흉상을 보듬어보던 곳이었다. 살아생전 그토록 원하던 ‘하나된 노동자’들은 그렇게 고인의 부활도와 영정 아래에서 만났다.

▲ 어머니의 영정이 아들의 가슴에 안겼다.
“오늘 이 시각, 어머니는 전태일 다리 위에 계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리해고 멈추라는 희망버스에 계십니다. 평화를 지키자며 강정마을에 계십니다. 내 조국강토 독살하지 말라며 캠프캐롤에 계십니다. 한미FTA를 거두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십니다. 이승을 떠나면서 오히려 더욱 널리 더욱 멀리 이 나라 민초의 삶을 옥죄는 모든 곳에 횃불로 계십니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의 조사)

‘전태일의 다리’에 도착한 후, 평화시장의 상인들과 행인들은 오가던 발길을 멈추고 이소선 여사의 가는 길을 지켜봤다. 아들의 품에 어머니의 영정이 놓였고, 그동안 어머니의 자식으로 살았던 이들은 저마다 노래로, 춤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다짐으로 이소선 어머니를 배웅했다. 영정앞에는 기륭전자의 빛바랜 투쟁 조끼가, 쌍용자동차의 안전모가,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의 간절한 바램과 약속이, 전북고속버스 노동자들의 투쟁 셔츠가 선물로 놓였고, 함께 절을 올렸다.

오후 2시, 이소선 여사는 ‘전태일의 다리’를 건너 아들의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수많은 아들, 딸들이 지켜보며 뒤를 따랐다. 운구차가 떠난 후에도 이어지는 헌화의 행렬, 꽃과 함께 ‘사람이 사람인 세상’을 이루겠다는 약속도 함께 쌓였다.

▲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길을 노래로 춤으로 배웅했다.

▲ 한진중공업,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이소선 여사의 영전에 선물과 함께 큰 절을 올렸다.

▲ 이 땅의 노동자들은 아직도 살기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지만, 그래도 안겨 위로받을 어머니의 품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 스스로가 서로 손붙잡고 서로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 '전태일의 다리'를 건너 어머니는 아들의 곁으로 향했다. 마지막 가는 발길을 붙잡듯, 많은 이들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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