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과 주변이 지닌 흔적과 역사성, 끝까지 지켜야 할 가치다
명동성당 개발을 통해 한국 천주교회와 우리의 의식, 문화의 한계 드러나

모두가 같은 가치를 지향할 수 없다. 저마다의 가치와 그것을 지킬 명분은 다 다르다. 하지만 어떤 정체성은 수많은 가치판단의 기준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명확히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반 회사원과 공직자에게 같은 직업윤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역할과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명동성당 개발이 빚고 있는 논란 중 하나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다.

‘가톨릭 교회’로서 우선적으로 추구해서는 안되는 가치와 반대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지만, 현재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명동성당 개발은 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는 공간, 건물, 문화로서 명동성당이 지녀온 모든 시간과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법규정, 건축 기술의 가능성을 넘어 명동성당이 한국사회와 지역에서 드러내는 가치와 사회적 위상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 서울 명동성당 본당보다 먼저 지어진 경내 사도회관(옛 주교관) 정면(왼쪽)과 19세기 말 본당 건립 전의 모습(위). 1977년 문화재위에서 사적으로 지정됐다가 아홉달 뒤 정부 관보 사적 목록에서 이유 없이 빠진 사실이 최근 확인돼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사진/명동대성당. 한겨레 2011년 4월 5일자 참고)

예를 들면 1890년 완공된 구 주교관(사도회관)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 중 하나다. 영국풍 르네상스 양식으로 특히 지붕쪽을 받치는 목조 부재는 중세 유럽양식을 살짝 변형시킨 색다른 얼개는 건축사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러한 구 주교관은 1977년 2월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명동성당 사적 지정을 의결할 당시, 명동성당과 함께 지정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명동성당만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서울대교구는 2010년 1월 29일 서울시에 제출한 국가지정문화재(명동성당) 주변 현상변경 허가 신청에서 구 주교관을 웨딩채플로 리모델링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고, 문화재위원회는 이를 계획안에서 제외시켰다. 구 주교관과 가톨릭회관 등을 문화재로 등재하지 않은 것은 개발을 염두에 둔 탓이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코모모코리아 측이 구 주교관을 사적으로든, 등록문화재로든 문화재화 해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가 아니라, 구 주교관이 가진 종교적, 건축적, 도시적 역사성과 가치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자는 제안인 것이다.

명동성당은 국가적, 교회사적으로 공공의 가치를 지닌 공적 영역
명동성당 개발을 통해 교회의 정신 실천해야

명동성당이 갖는 더 큰 의미는 명동성당이 교회만의 것이 아닌 공적 영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 건물로서 서울대교구가 관리하고 있지만, 국가 사적인 명동성당은 공동체성과 공공성 안에서 개발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명동성당 개발을 지켜보는 이들은, 개발의 과정에 공공성이 결여되어 있고, 교회적으로도 복음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개발 진행 방법과 개발 내용안에 가톨릭적 질서와 가치가 아닌, 극대화된 상업적 가치, 세속적 효율성만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명동성당은 이미 한국 근현대사속에 존재합니다. 교회건물이라고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명동성당은 모든 국민의 것입니다. 욕심을 줄이고, 더 많은 이들이 성지를 보고, 신앙을 느끼고, 가톨릭의 정신과 민주화 운동의 역사성을 공유하도록 해야 합니다.”

보다 겸손하게 성당이 가진 장소성, 역사성, 문화재적 가치에 철학을 부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사꾼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교구와 건축가 모두에게 평생의 치욕이 될 일입니다.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건강한 제안을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명동성당 개발 반대에 대한 큰 틀은 가치와 상식입니다. 이런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교회가 용기를 내기를 바랍니다.”

도코모모코리아 소속 한 건축가의 말이다. 그는 “개발도 필요하고, 계획하면서 욕심도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명동성당 개발이 속세의 개발 논리와 같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명동성당이 가진 의미와 상반된 개발 과정을 통해서, 시대의 한계, 한국 천주교의 한계, 우리 사회의 문화에 대한 의식의 한계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또 월간 건축지 <공간>의 이주연 이사는 “모든 생각은 가치와 명분이 있고, 그것을 존중한다. 그러나 여러 가치 중에서 교회가 선택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고 힘주어 말하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 가톨릭 교회가 지혜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무수한 전문가들의 제안과 제언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결정’을 한 셈이 된 서울대교구. 일각에서는 오랫동안 추진과 무산이 반복된 개발과정에서 쌓인 피로감이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명동성당과 그 일대가 가진 시대의 흔적, 한국사회 안에 새겨넣은 커다란 무늬, 무엇보다 명동성당 건물 자체의 안전성 등을 외면하는 것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업무 공간과 경제적 필요에 대해 공감한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효율성’만을 강조할 때, 무엇을 잃게 되는지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더욱이 교회가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효율성 때문에 짓밟히는 역사성, 환경과 생태적 가치, 문화적 가치, 그리고 반대 목소리도 기꺼이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과 포용력이다.

모쪼록,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이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어로 또다른 역사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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